낮이 끝나고 밤이 되어가는 대지.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자욱해야 할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것이 있었다.
 자연재해?
 아니 자연재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그것은 도저히 자연적으로 발생할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지상을 불 태울 태양이 거기에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지상의 눈은 이미 전부 녹아버렸고, 건물과 아스팔트들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쌔신은 그것을 보자마자 자신의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이로군, 하며 자신의 마스터에게 대피하라 전하고 자신은 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마스터로부터 돌아오는 말은 이상했다.

 '알겠다. 나는 지금부터 전장으로부터 이탈하겠다. 그대도 가능하다면 빠져나오도록'

 분명히 알린 포기선언, 그것을 들었음에도 살아남아라, 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죽을 때 죽더라도 최대한 발버둥을 쳐보는 수 밖에--.
 

 ◇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미스 카라코우지"

 쓰러진 오리에를 바라본다.
 피범벅이 되어 어떤 명의라도 치료하지 못할듯한 상처투성이의 몸.
 그 앞에 주저앉아 그녀의 바지주머니에서 아주 작아진 현자의 돌을 꺼낸다.
 그리고 자신의 양복 윗주머니에서도 돌을 꺼낸다.
 아무래도 아처의 보구에 어마어마한 마력량이 필요한 모양인지 이쪽도 크기가 절반가량 줄어들어었있다.

 "정말 바보로군요. 오리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나오는 말과 함께 문득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낸다.
 소환되자마자 클래스와 진명을 묻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녀.
 그리고는, 이렇게 된 이상 성배를 못 얻어도 그거뿐, 어떻게든 살아남는게 목적이니까, 라며 성배를 못 얻게 되어도 후회하지 말라고 했었던 그녀.
 그때까지 그녀의 미래에 분명히 죽음은 없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변해버렸다.
 버서커의 마스터가 전장에 나타난 순간, 그 이후로 보이는 미래에서 그녀가 살아남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스스로 움직여 그녀의 첫 목적을 이루어 그 끝에는 살아남도록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이다.
 도저히 손 쓸 방법이 없다.
 여태까지 모은 마력을 현자의 돌로 만들어놨다면 그녀는 여기서 죽었겠지.

 "이후에 저에게 감사해하는게 좋을거에요, 미스 카라코우지"

 허나, 지금까지 마력을 모은 것은 이 때를 위해.
 죽음을 알고 있다면, 그 죽을 때를 위해 생명을 준비하면 되는 간단한 이야기다.
 건물이 흔들린다.
 결계를 쳐놨음에도 불구하고, 아처의 보구에 영향을 받은 듯 하다.
 그런 진동에 아랑곳 않고 캐스터는 주머니를 뒤적인다.

 "뭐, 예상과는 달리 마력량이 적지만 저의 분까지 합치면 어떻게든 되겠죠"

 주머니에서 꺼내는 하나의 작은 병.
 그 안에는 붉은 색의 액체가 들어있었다.
 거기에 남은 현자의 돌을 집어넣는다.
 이걸로 또 아처의 마스터는 부재가 되지만, 그에겐 단독행동이 있으니 잠시 동안은 문제가 되지않겠지.
 더욱 선명해지는 액체를 오리에의 입에 갖다대 붓는다.
 몸이 서서히 사라지는게 느껴진다.
 이 순간 자신에게 묻는다.
 후회하지 않는가?
 답은 정해져있다.
 후회따위는 하지않는다.
 애초에 소환 되었을 때부터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녀와 나의 목표였으니까.
 아처라면, 미련하군요, 하고 말하겠지.
 확실히 틀리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 마스터는 그저 마력을 보충해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겠지.
 뭐, 나도 별 다를건 없지만.
 그저 궁금해졌을 뿐이다.
 죽었어야 했을 그녀가 살아나 이어나갈 미래가.
 눈을 뜬 후, 그녀라면 상황을 금방 파악하겠지.
 자, 그럼.
 그녀가 깨어나는건 지금으로부터 약 10분 후.
 깨어나는걸 보지 못하는건 안타깝지만 이걸로 쓸모없었던 마술사는 먼저 퇴장하도록 하자.
 오리에, 부디 좋은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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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Archer
마스터        --
진명        예 羿
성별        남성
신장/체중    187cm/72kg
속성        질서 중용
스테이터스    근력 B 내구 C 민첩 C 마력 A++ 행운 D 보구 EX
클래스별 능력    단독행동 A+ / 대마력 A+
보유 스킬    신성 A / 심안(偽) B / 천리안 B

보구

활과 화살 A+   
-천제 제준으로부터 하사받은 붉은 활과 끈이 달린 하얀 화살로 이름은 없지만 신의 무기이기에 높은 랭크를 지닌다.
  
아홉 태양을 쏘아 죽이는 신의 화살 EX 대계보구
예가 지닌 활과 화살의 진명개방으로 마력을 담아 상공에 쏘아올리면 그 자리에서 유사태양이 떨어져내린다.
소환된 후부터 아홉개의 유사태양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한번 사용시에 제한된 수는 없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한번에 아홉개의 유사태양을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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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Caster
마스터        카라코우지 오리에 空小路織衣
진명        생 제르맹 Saint Germain
성별        남성
신장/체중    180cm/72kg
성향        중립 중용
스테이터스    근력 E 내구 E 민첩 D 마력 A+ 행운 A 보구 A++
클래스별 능력    진지작성 A / 도구작성 A++
보유 스킬    황금률 A / 예술심미 A / 미래예지 C
                                                
보구                                                     

불로불사의 약 / Elixir of life A
죽어있는 사람도 살리는 것이 가능한 약.   
단 한번 사용하면 사라지나 재료만 있으면 다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만이 있었던 탓인지 소환 당시에는 소유하고 있지 않다.

현자의 돌 / The philosopher's stone A+
마법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응축된 돌.
사용할수록 돌 내부의 마력이 줄어든다.
재료만 있으면 다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지구상의 모든 현상을 받아들이는 뇌 / Akashic Records A++ 대인보구
뇌가 근원에 닿아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받아들여,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것 또한 가능하게 되나 미래예지의 경우 확실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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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토의 번화가 근처에서 사역마로 아처와 어쌔신의 전투를 보고 있던 소우는 경악했다.
 아처의 엄청난 양의 마력이 담긴 화살이 공중으로 쏘아내지자 그곳에 태양에 필적할 정도의 열덩어리를 가진 마력덩어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그 곳은 지옥이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소우를 밀치고 달려나간다.
 방금까지 하늘에 있던 태양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급한 상황에서 소우는 세이버에게 명했다.

 '세이버, 저것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라'

 '다인슬라이프의 사용은?'

 '허가한다'

 버서커의 공격을 막기 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마검.
 파멸을 부르는 그것은 사용할수록 세이버의 마력과 신체를 좀먹어간다.
 그렇기에 소우는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이 도시를 지키려면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소우는 태양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


 소우의 명령을 받은 세이버는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그곳에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구만"

 입 밖으로 나온 감상은 단순했다.
 무지막지하다, 그것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저것이 이대로 떨어진다면 신토의 땅은 수십년간은 인간이 살아가지 못할 정도로 불타오르겠지.
 그 정도로 마력을 꾹꾹 눌러담은 구 덩어리였다.

 "이런걸 막아내라는거냐, 소우"

 EX랭크의 규격 외의 보구를 막아내라는 자신의 마스터의 말을 떠올리며 웃는다.
 자신의 마력을 갉아먹어 저주하고 그것을 힘으로 삼아, 적의 마력을 휘감아 저주로 바꾸어 되돌려주는 마검, 다인슬라이프.
 본래 이 검을 사용했던 기억 같은건 없다.
 그도 그럴게, 잘못된 전승이니까.
 동명이인의 하겐이 사용했던 검.
 그것을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했다는 오류가 퍼져나가 전설로 만들어내졌다.
 그렇기에 저것마저도 저주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사용해봐야만 안다.
 실패한다면 죽음을, 성공한다고 해도 저주를 받는 저주만을 불러오는 마검.

 "과연 어떻게 될려나?"

 마치 남의 일인 양, 웃으며 태양과 대치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세이버의 마스터로써 명한다, 보구를 전개하라, 세이버!"

 령주에 의한 백업과 동시에 소우가 들고있던 위신의 서는 불타올랐다.
 그리고---

 "파멸을 부르는 보복의 검[Dáinsleif]!!!"

 사악한 기운의 마력이 거대한 불덩어리를 덮친다.


 ◇


 아처는 입가에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하나.
 비록 아홉개 전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하나만으로도 이 지상을 불태우고도 남는다.
 소환된 후 자신의 마스터인 리노 에델펠트와의 대화 중 보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이 보구를 사용하지 못한 채로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보구를 사용하는 순간 민간인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그녀는 보구를 절대 사용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스터가 바뀌고 현자의 돌의 백업을 받아 사용 가능하게 된 자신의 보구의 위력을 보고 그야말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자의 돌의 백업이 사라진걸로 보아 돌은 전부 사용한 모양이지만 어차피 캐스터가 다시 마력을 모아 만들어주면 되는 일.
 그렇기에 틀림없이 성배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


 어쌔신은 속으로 환호했다.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자신을 향해 떨어지던 불덩이가 자신의 뒤에서 날아온 검은 것에 막혀 속도가 늦춰진다.
 이 상황이라면 아처도 저것의 이동방향을 바꾸지는 못할터.
 그리하여 어쌔신은 바로 앞에서 내려오는 태양을 피해 전장에서 이탈한다.
 그러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쁨 탓일까, 푹, 하고 등에 칼이 꽂힌다.
 뒤에서 날아오는 것 따위 신경쓰지 않은게 문제였겠지만, 솔직히 누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노리겠는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Rock! 여기서 사라져라! 어쌔신!"

 "하늘을 달려나가는 빛나는 구[光連車]!"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보이는 것은 빛나는 구 덩어리였다.
 바로 위에 떠 있던 불 덩어리의 축소판인 듯한 그것은 빛을 압축해놓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에 치여 그것으로 어쌔신은 현세에서 퇴장했다.
 빛 덩어리가 지나간 그 끝에는 말이 끄는 수레가 달려나가고 있었다.
 수레의 위에는 라이더와 로우가 있었다.
 
 "Rock, 운이 좋았군. 어쌔신놈이 정신을 팔고 있다니"

 어쌔신을 치고 더 이상 볼일은 없다는 듯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수레 위에서 로우가 말했다.

 "그것보다도 저 말도 안되는 걸 밀어내고 있다는게 대단하군"

 로우는 전장을 뒤로 하면서도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처가 떨어뜨린 유사 태양을 막아내는 세이버가 있었다.
 세이버의 검에서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어둠이 조금씩 붉은 빛을 조금씩 침식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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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Rider
마스터        아사가미 로우 浅神露
진명        스즈카고젠 鈴鹿御前
성별        여성
신장/체중    154cm/38kg
성향        혼돈 중용
스테이터스    근력 D 내구 E 민첩 C 마력 B 행운 B 보구 A+
클래스별 능력    기승 A+
보유 스킬    신성 B

보구

다이츠렌大通連 B /쇼츠렌小通連 B
-하늘을 나는 검으로 도신刀身만 존재하며 소유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켄묘렌顕明連 A
-분열이 가능한 검으로 분열한 수에 비례하여 그 힘은 떨어지며 소유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코렌샤光連車 A 비공보구
-6개의 다리를 지닌 두 마리의 영마霊馬가 끄는 하늘을 달리는 수레로 영마의 발이 대기를 박찰 때마다 대기가 진동한다.

문수보살의 지혜가 담긴 검으로 신과 통하고 연애감정을 폭파시켜 천귀의 비를 뿌린다 / 文殊智劍大神通 恋愛発破 天鬼雨 A 대군보구
켄묘렌의 진명개방으로 지상을 향해 천개의 켄묘렌을 떨어뜨린다.
이 때의 켄묘렌은 각각이 하나의 힘을 발휘한다.
마력량에 따라 원하는 수만큼 조정이 가능하다.

하늘을 달려나가는 빛나는 구 / 光連車 A+ 대군보구
코렌샤의 진명개방으로 수레를 이끄는 말과 수레가 빛의 결계로 휩싸여 그대로 적과 충돌한다.
이 때 적의 공격을 받아 일정 피해 이상의 피해를 받을 시 결계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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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분명히 지금쯤 눈 앞의 빌딩을 분쇄하고 지상을 불태웠어야 할 태양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리안을 사용해 그것을 파악하자, 건너편에는 세이버가 있어 손에 든 것으로 밀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말도 안된다.
 규격 외의 보구인 이 유사태양을 밀어낼 보구가 있을리가 없지.
 곧 있으면 태양과 함께 세이버는 불타오르고 남은 것은 라이더뿐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나의 승리는 확실해지겠지.
 자만.
 규격 외의 보구를 밀어낼 리가 없다고 믿는, 그 자만심에 아처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만약에 아처가 보구를 쓰고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면 분명히 성배는 그의 것이 되었을테지.


 ◇


 세이버의 온 몸이 검게 물들어간다.
 다인슬라이프의 소유자는 이 검을 세번째 빼들었을 때 모두 그 영혼마저 저주에 물들어 죽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두번째라고 하는데 이미 온 몸은 저주에 물들었고 그것이 심장에 도달하려 하고 있다.
 이미 밀어내기를 10분 이상이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 약 10분 더, 그걸 넘기면 분명 이 몸은 죽어버리겠지.
 그 괴물이었던 버서커를 한번에 날려버린 다인슬라이프라고 하는데 거기에 령주의 백업을 더한 지금에서도 저걸 뚫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저주에 삼켜 죽을 수는 없지.

 '령주를 사용하라, 신이치'

 소우의 위신의 서가 불탄 지금 남은 령주 두개는 신이치에게 있다.
 어차피 령주는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의 말에 수긍한 것인지 체내에 마력이 차오른다.
 두개째의 령주.
 그렇다면 밀릴 리가 없다!


 ◇


 어느새 정신을 차린 오리에는 자신의 신체를 보고 상처가, 그리고 령주가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호텔을 빠져나가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나오는 것을 쳐다보았다.
 붉은 빛과 검은 어둠.
 어둠은 어느새 붉은 빛을 반쯤 집어삼키고 있었다.
 붉은 빛이 아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처에게 가기 위해 호텔을 오르려 하는 순간--
 붉게 타오르던 하늘은 어느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거기엔 어둠만이 있었다.
 모든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고 빌딩의 옥상을 덮쳐, 그 어둠은 빌딩의 최상층과 함께 거기에 있는 모든것을 집어삼키고 사라진다.
 그것을 지켜본 오리에는 미야마쵸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