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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버는 다인슬라이프에 침식되어 움직이기 힘든지 스트레칭하듯 오른팔을 돌리면서 소우를 바라보았다.

 "흠, 이걸로 령주가 다시 신이치의 것이 되어버렸군"

 "그렇군, 남은 령주는 하나인가. 허나 남은 서번트도 몇 되지 않으니 문제는 없겠지. 가자, 세이버"

 소우는 말을 마치고 세이버에게서 등을 돌려 공원을 걸어나갔다.
 그 순간---
 부웅-
 소우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컥"

 소우는 다시 지면에 떨어졌다.
 배에 타격을 입은 소우가 정신을 가다듬는 동안 자신의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미안. 꽤나 위급한 순간이었으니까"

 목소리의 주인은 로우였다.
 주변을 둘러본 소우는 자신이 라이더의 수레의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속셈입니까"

 로우는 소우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속셈은 저녀석이 가지고 있겠지. 그렇지, 세이버? 어째서 소우를 죽이려 했지?"

 "..뭐?"

 수레가 멈춰 있는 빌딩 옥상의 구석으로부터 약 10m 떨어진 곳에 세이버가 발뭉을 든 채로 서있었다.
 로우의 말에 세이버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라이더와 그 마스터인가. 남의 일에 관심이 많구나. 곤란하게 됐군, 단번에 죽여주려 했더니"

 자신의 마스터를 죽인다, 라고 말하는 세이버.
 이에 소우가 수레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우리들을 배신할 생각인가, 세이버!"

 그 표정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버는 웃었다.

 "우리들? 우리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거지?"

 "나와 신이치다! 당연하지않나"

 그 말에 세이버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크하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배신한건 너희들이 아니다. 크큭, 너 하나다, 소우"

 "뭐..?"

 놀라는 소우를 비웃듯 세이버는 웃어대다가 진정됐는지 말을 내뱉었다.

 "멍청하긴! 아직까지도 모르겠나. 나의 마스터는 처음부터 신이치였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숨어있을거냐, 신이치"

 세이버의 말에 공원의 구석, 빛이 닿지 않았던 어둠 속에서 신이치가 걸어나왔다.

 "아-, 나까지 밝혀버리면 어떡해, 세이버"

 "흥, 어차피 등장할거 아니었나"

 이를 보고 말도 안나오는지 얼굴만이 일그러져가는 소우.
 그런 소우를 바라본 신이치가 말했다.

 "놀랐어? 뭐, 놀랄만 한가"

 "도대체 무슨 일이야, 신이치"

 신이치는 진지하게 물어오는 물음에 약간의 장난이 섞인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고 뭐고, 간단히 말해서 지금부터는 내가 세이버의 마스터로써 싸우겠다는거지"

 "신이치...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야 성배를 손에 얻기 위해서지"

 "나의 소원에 동의했었잖아, 신이치"

 소우의 말에 신이치는 작게 웃으며 설마,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야 거부하면 소우형이 따로 성배전쟁에 참가한다고 했으니까 동의했을 뿐이지. 당연하잖아? 나 혼자서 성배전쟁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야"

 "그렇다면 나의 소원은-"

 자신의 말에 이미 충격을 먹은 듯한 소우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신이치는 질렸다는 듯 말했다.

 "바보네, 소우형. 분명히 처음에도 말했잖아, 주변 사람의 행복같은 소원 따위 정의를 꿈꾸는 초등학생이나 생각할 일이야. 아니, 지금쯤 초등학생은 커녕 유치원도 생각치 않는 일이라고"

 신이치의 말을 들은 소우는 꽤나 충격이었는지 그걸로 입을 다물었다.
 그걸 대신해서일까,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던 로우가 입을 열었다.

 "Fuck, 적이지만 동감한다. 그렇다면 너가 원하는 것은 뭐냐? 아앙? 내 바보같은 동생을 속이면서까지 원하는 네 녀석의 소원은 뭐냔 말이다"

 "음, 사실은 말야, 없어"

 신이치의 말에 로우가 재미있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하! 이건 Rock다! 어이어이, 소원도 없는 놈이 타인의 소원을 가지고 하찮다 뭐다 말하는게 아니야, Fucking 꼬마야"

 신이치는 자신을 매도하는 로우의 말에 웃었다.

 "아하하하-, 뭐라는거야. 그러는 그쪽, 아, 뭐랬더라?"

 "Fuck 꼬맹이가 삼촌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거냐"

 "아-, 뭐, 어찌됐든 좋아, 이름따위. 어쨌든 당신도 소원을 바라기 위해 성배를 찾는건 아니었잖아? 뭐랬더라? 증명?"

 신이치는 로우가 마토우가에 찾아왔었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자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Fuck 윗대가리들에게 나의 성능을 증명해주려고 했었지"

 "거봐-"

 소원 같은건 없어도 상관 없잖아, 라고 말하는 신이치를 향해 로우가 말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바보 같은 동생한테 감명받은건 아니지만 자신의 혈육의 행복정도는 빌어도 좋겠지"

 "뭐야, 당신도 바보잖아, 결국"

 "아아-, 그치만 안심해도 좋아. 아무리 내가 바보라도 너의 행복따윈 빌어주지 않을테니까"

 "응, 그러는게 좋아. 뭐, 어차피 성배는 내가 얻겠지만.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소우형이 짐이 되면 그쪽이 싸우기 힘들테니, 소우형은 집에 데려다주고 류도사 지하의 대공동으로 와"

 그럼, 먼저 가 있을게, 하며 공원을 뒤로 해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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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Saber
마스터        마토우 신이치 間桐真一
진명        하겐 폰 트론예 Hagen von Tronje
성별        남성
신장/체중    190cm/89kg
성향        질서 악
스테이터스    근력 B 내구 B 민첩 C 마력 C 행운 D 보구 A++ 
클래스별 능력    기승 A / 대마력 B
보유 스킬    직감 C / 마력방출 B

보구

환상대검 천마실추 / Balmung A+ 대군보구
원전인 마검 '그람'으로서의 속성도 겸비하고 있어서 손에 든 자에 따라 성검, 마검의 속성이 변화하고 용종의 피를 이어받은 자에게 추가 피해를 입힌다.
칼자루의 푸른 보옥에는 신대의 마력(진 에테르)이 저장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해방하면 황혼빛의 검기를 방출한다.
진명개방 시 도신에 에테르가 차올라 이를 방출한다.

파멸을 부르는 보복의 검 / Dáinsleif A++  대성보구                                                
니벨룽겐의 마검으로 소유자에게 파멸을 가져오는 저주의 보구.  
강력한 '보복'의 저주를 지녔지만 동시에 소유자의 운명조차 파멸로 몰아넣는다. 
일반적으로 마검 및 성검은 영광과 파멸이 양립하지만 다인슬라이프는 오직 파멸만을 소유자에게 가져다 준다고 한다.
진명개방을 하지 않아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을 침식해나가 최후엔 심장에 도달해 소유자의 목숨을 앗아간다.
전설에 따르면 항상 이 검을 세번째 뽑았을 때에 소유자는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상대의 마력방출형 보구를 저주로 물들여 흡수해 상대에게 추가피해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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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ck, 짐은 무슨, 그딴거 없어도 못 이길거 같구만"

 한바탕 불평을 내뱉은 로우는 멍때리고 있는 소우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나갔구만, 이건. 혼자 놔두기 그런데 어쩌지?"

 로우의 말에 여태까지 옆에서 대화를 듣기만 하던 라이더가 입을 열었다.

 "마스터여, 그 여자한테 가면 되지않나?"

 "그 여자? 누구?"

 라이더의 말한 여자를 로우가 생각해내지 못하자 라이더는 이름을 생각해내려다가 기억해내지 못했는지, 아처의 마스터말이다, 라고 했다.
 그에 로우가, 너 머리 좋은데, 하며 웃자 라이더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물론이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건가?"

 "그래서 어디있는데? 그 여자는"

 "글쎄?"

 라이더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로우가 말했다.

 "Fuck, 바보냐. 어딨는지 모르면 의미가 없잖아"

 "흠, 확실히 그렇구나"

 잠시 고민하던 로우는 이내 무언가를 생각해냈는지 입을 열었다.

 "그럼 차선책이다. 빨간 녀석한테라도 맡겨둬야지. 믿음직하지 못하지만"


 ◇


 새벽이 다 된 시각, 서양식 주택의 앞.
 집주인이 자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지, 아니면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초인종을 연속으로 눌러대는 남자가 있었다.
 아사기리 로우.
 그런 그의 횡포에 못 이겼는지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온다.

 "누구-? ...하아?"

 그것은 빨강이었다.
 아니,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은 엔이었다.

 "역시 오늘도 빨강이로군, Fucking Red. 빨강빨강열매라도 먹은거 아니냐? 아니면 홍적주 코스프레냐?"

 "아니아니아니, 어째서 마스터들이 단체로 집합인데? 게다가 빨강빨강열매란건 뭐야? 랄까 코스프레 아니거든!"

 "됐고, 우선 들어가지 않겠나? 마스터여"

 라이더의 말을 경계로 로우는 토오사카 저택에 들어섰다.

 "에-엑! 우리집이라고, 여기! 교회가 아니야?! 어째서 마스터가 모여드는거냐고! 의미를 모르겠어!"

 엔이 뒤따라들어오며 소리치자, 라이더가 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큼 그대에게 인덕이란게 있는거 아닌가?"

 라이더의 말에 엔이, 아, 그런거야, 라며 기분 좋아진 듯 했지만,

 "뭐, 거짓말이지만 말이지"

 웃으며 이어진 말에 화가 난 듯 했다.

 "거짓말이냐?! 그럼 애초에 말하지 말라고!"

 "카카카, 언제부터 츳코미 캐릭터였냐, 너"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냐고! 너네들이 안할 수가 없게 만들잖아, 지금!"

 로우가 업고 있던 소우를 거실의 의자에 앉혀놓고 얘기했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너, 아처의 마스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냐?"

 "되돌린다고 할까, 이야기의 시작인데. 그보다, 리노씨?"

 엔의 말에 로우가,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라며 끄덕이자 엔이 손을 들어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데?"

 "뭐야, 노선을 바꿨냐? 그 녀석"

 로우가 말하며 방으로 향하자 엔이 로우를 말렸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는데, 들어가면 안돼. 절대 안정이라고"

 그러나 이미 로우는 문을 열고 있었다.
 그 안엔 죽음이 가득히 차있었다.
 정안.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그 눈에 비치는 것은 다른 것이었을까, 로우는 열었던 방의 문을 닫고 엔을 바라보았다.

 "뭐야, 저 녀석. 어떻게 된거야?"

 웬지 모르게 자신이 힐문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쏘아붙이는 듯한 말에 엔이 방금까지와는 달리 기죽은 듯이 말했다.

 "아니, 그게 말이지. 나도 잘 모른다고. 어제 밤에 왔을때는 이미 저 상태였으니까 치료는 대충 끝내긴 했는데 언제쯤 일어날지는... 상처보단 마력의 문제니까 병원에 간다고 해결 될 리도 없고 말이지"

 "무슨 소리야, 그게"

 언제부터 정신이 되돌아왔던 것인지 방금까지 기절하다시피 멍때리고 있던 소우가 입을 열었다.
 소우의 목소리를 듣고 로우가 물었다.

 "정신 좀 들었냐?"

 "아아, 그보다 그녀가 당했다? 아처는 방금까지 싸우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생각한 소우의 말에 답하듯 로우가 대답했다.

 "뭐, 생각할 수 있는건 하나지. 령주를 빼앗겼다, 라는거겠지"

 당연한 듯이 말하는 로우는 현관으로 걸어나가며 말을 이었다.

 "뭐, 이미 끝난 일이다. 차라리 낫잖아. 넌 여기서 그 녀석이랑 여자의 간병이나 해라, 소우"

 "잠깐 기다려, 나도 가겠어"

 엔이 무슨 말이냐고 묻는걸 덮듯이 소우가 말하자 로우가 비웃었다.

 "카하하, 이건 Rock다. 서번트도 없는 너가 뭘 하러 간다는거냐? 가면 걸리적거릴 뿐이야. 아니면 뭐야, 죽으러 가는건가? 그렇다면 좋아. 내가 여기서 죽여주지"

 거짓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이 웃음기 없는 눈으로 소우를 쳐다본다.
 그럼에도 소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엔이 옆에서 잡아눌렀다.

 "마토우선배, 관 둬, 죽는다고. 어이, 형씨, 마토우선배는 내가 잡아둘테니까 얼른 갖다와"

 이에 엔과 소우와 말싸움을 하자 로우는 웃으며 문을 열어,

 "그 망할 꼬맹이를 데려올 때까지 잠이나 자두라고, 소우"

 한마디 말을 남긴채 토오사카 저택을 뒤로 했다.


 ◇


 그 시각, 세이버와 신이치는 대공동의 안쪽의 넓직한 돌 위에 앉아있었다.

 "세이버. 너, 아까 진짜로 소우형 죽일 생각이었지?"

 "그야 당연하지"

 신이치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말하는 세이버를 쳐다보았다.
 마치 잘못되었다, 라고 말할 듯한 표정.

 "어째서?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

 "뭐,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니까 죽이려 했을 뿐이다"

 세이버의 말에 신이치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도 소우형을 건드리지 마"

 신이치의 말을 세이버는 이상히 여겼다.
 배신한 자가 입에 담을 말이 아닌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는 마스터의 대역이었기에 죽이지 않았지만 쓸모가 없어진 지금에와서도 어째서 그를 죽이지말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배신 했는가, 신이치. 소우가 성배를 손에 넣어도 문제는 없었을 터다. 너에게 소원은 없으니까"

 그렇다.
 신이치에게는 소원이, 성배를 구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굳이 소우를 배신해 지금 자신의 옆에 서있는가.
 그러한 의문을 입 밖에 내놓은 세이버에게 신이치는 웃으며 말했다.

 "그야, 뭐,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서랄까? 내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말이야. 할아버지 탓이겠지만 전부"

 소우가 바라는 것,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행복.
 거기에 소우,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을 신이치가 알게 된 것은 초등학생 때의 어느 날이었다.
 신이치가 소우에게 성배에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말에 소우는 주변 사람들의 행복, 이라 대답했다.
 그에 신이치가 또 다시 물었다.

 "그럼 소우형은 행복해진 다음에 무엇을 할거야?"

 초등학생인 신이치의 단순한 물음에 소우는 이상한 듯이 대답했다.

 "내가 행복해질 일은 없어, 신이치. 만약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해진 뒤가 아닐까"

 소우가 신이치의 물음을 이상히 여겼듯이, 신이치는 소우의 대답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배에 바라는 것은 행복.
 그렇다면 자신도 그것에 의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자 소우는 고개를 저었다.

 "틀려, 신이치. 내가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지 자신의 행복이 아니야. 너도 언젠가 이 생각에 대해 아는 날이 올거야"

 여태껏 보아왔던 무표정한 모습과는 달리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는 그때의 소우는 아직도 신이치의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뭐, 결국 그때의 소우형과 같은 나이가 된 지금도 그 생각이 뭔지 알지 못하지만 말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아, 그렇기에 내가 막아서는 거야"

 잘못되었기에 배신했다, 라고 말하는 신이치의 말에 세이버가 중얼거렸다.

 "미쳐있군"

 소우도 소우지만 그걸 알려주기 위해 좋아하는 형을 배신하는 신이치도 정상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그렇지? 하고 물어오는 신이치의 말에 세이버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토우라는 집안 전체가 미쳐있는건가. 신이치의 할아버지라는 놈도 꽤나 정상은 아니겠군'

 그런 생각 도중 신이치가 말을 건네왔다.

 "근데 말야, 넌 소원이 뭐였지?"

 마치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는 신이치를 보며 세이버도 이제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흠? 말 안 했던가? 난 수육이 목적이다. 원하는건 그거 뿐이지"

 "그거라면 지금이랑 다를거 없지 않아?"

 신이치의 말에 세이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르지. 지금 상태라면 너가 사라진 순간 사라지겠지만, 수육하게 되면 너가 언제 죽던 관계없이 자유다"

 "흐응, 그럼 자유가 되면 하고 싶은거라도 있어?"

 "음? 음.. 그렇군.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보도록 하지"

 고민하는 세이버를 보며 신이치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뭐야, 결국 너도 미래 따윈 생각치 않았다는거잖아"

 그런 신이치를 보며 세이버는 웃었다.

 "뭐, 일단 살아가다보면 어떻게든 되는게 인생이란거다.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아하하하, 그것도 그런가. 그보다 늦네. 그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새 시각은 10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 대공동에 도착한 것이 8시였으니까 2시간이나 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세이버도 질렸는지 신이치 쪽을 쳐다보았다.

 "안오는거 아닌가? 아무리 소우를 데려다 줬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걸리다니"

 빌딩의 옥상에서 로우와 헤어진 것이 막 6시를 넘은 시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이에 신이치가, 시간을 정했어야 했나, 하고 중얼거리자 세이버가 대공동으로 들어오는 입구쪽을 바라보았다.

 "흠, 누군가가 들어왔다. 수는 둘이로군"

 "오, 드디어 왔나?"

 세이버의 말에 일어나 대공동의 입구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두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마 소우와 라이더겠지.
 자, 그럼.
 마지막 싸움을 시작하자.


 ◇


 신토에서 빠져나온 나는 근처의 건물에서 자신의 몸상태와 상황을 파악하고 나와 다리를 재촉해 류도우사의 대공동으로 향했다.
 이미 캐스터도 아처도 잃은 상황이지만 어째선지 마력은 충분한 상황.
 현자의 돌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 있는 듯한 정도의 마력이 신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캐스터가 무언가를 했을테지만 어쨌든 그러한 신체를 이끌고 대공동으로 향한다.
 캐스터에게 들었던 것에 의하면 그녀는 마지막 두 서번트가 남을 경우 대공동으로 향한다고 했다고 한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달려가는 것인가.
 캐스터는 나의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 소멸했는데.
 어째서 나는 그 목숨을 구하지 않아?
 분명 이대로 숨어 성배전쟁이 끝난 뒤, 시계탑으로 돌아가면 살 수 있다.
 성유물을 빼앗긴 시점에서 책임 따위는 윗놈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언젠가 나 자신에게 물었었던 똑같은 물음.
 이번에도 대답은 같겠지.
 레이야, 그녀를 고독에서 지켜주기 위해서-
 -라고 거짓을 고할 것인가.
 아니.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고독한 것은 그녀가 아니다.
 고독한 것은 나였다.
 그렇기에 고독한 동료를 찾아 그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달렸던 것일까?
 그래.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지금은 그저 그녀가 보고 싶었으니까.
 이런 저런 이유 따윈 아무것도 필요없어.
 바보 같이 심각했던 그 때와는 달리 나도 모르게 웃었다.
 축제라도 하는 것인지 시끌벅적한 번화가.
 그 건물들의 옥상을 차례차례로 이동해나간다.
 그녀를 만나면, 꼬옥, 하고 껴안아버릴지도 몰라.
 그땐 그녀가 꽤 당황하겠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