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분명히 그녀와 멀리 떨어져있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표현대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그 간에 이어져있는 실이 이따금씩 흔들리곤 하는 것이었다. 옳아, 그것은 하나의 현악기였다. 그것은 어느 때에는 어떤 감독이 초콜릿 시럽을 듬뿍 써서 찍어낸 영화의 한 OST처럼 높고, 강렬하게 그의 뇌를 비수로 찔러댔고, 어느 때에는 돌에 맞은 한 아폴론의 아들의 것이었던 주인 없는 리라처럼 부드러운 선율을 내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를 괴롭게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보이는 빛은 항해사에게는 행운이지만, 그것은 끝없는 어둠을 걸어가다 나왔을 때, 마치 사막을 걸어가다 오아시스를 찾았을 때와 같은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빛은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소식이 이따금씩 바람을 타고 밀려들어오거나 그녀의 이름이 몇몇 입을 오르내리면서 그를 어지럽게 하곤 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눈은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두움만 지속된다면 눈은 어느새 적응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겠지만, 마치 크게 흥행해 '국뽕'이란 것을 치사량으로 흡입하게 해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빛은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웠던, 별빛을 담아놓은 눈 같은 것들을 다시 회상하곤 하는 것이었다. 단발 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그녀의 칼단발 같은 것이라던지, 미녀는 잠꾸러기라는 말에 걸맞게 이따금씩 졸음과 싸우던 그녀의 모습이라던지, 발랄하고, 아리따우며, 쾌활하게 뛰어다니던 모습이라던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다시 악몽으로 끌어내렸다. 왜일까? 모든 것은 그대로지만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그의 감각은 마치 마약에 빠진 사람처럼 환각을 불러와 그의 눈에 띄워놓는 것이었다.

이렇듯 그는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의 시간들이 책장의 수많은 책들처럼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는 조용해 보였다. 아니,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시끄러운 머릿속을 잠시라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과 보기 싫다는 생각, 과거의 수많은 기억들과 미래의 환상, 수많은 철학적 관념과 현실에 머물러 쾌락을 좇는 본능, 관현악과 팝송, 뉴에이지와 EDM,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현대미술을 연상케 하는 난해한 음악까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온통 떠들어대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있어 그의 머릿속을 들을 수 있었다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입 좀 닥치고 있으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런데 어찌 조용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필 받아서 한 번 써봄

레미제라블마냥 형용사 폭격 갈기고 싶은데 어휘력 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