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

36화, 그리힌리즈


아인 일행이 킬리안을 만난 곳부터 그리힌리즈 까지는 길이 제대로 나 있었다. 그곳을 향해 이동하며 킬리안이 굵직하면서도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북쪽 국경에 침입자가 있다고 해서 급히 달려왔더니, 수녀님하고 난쟁이가 와 있네? 그것도 처음보는 인간 남자랑 같이.”


“자꾸 난쟁이라고 할래?!”


“그래. 아무튼 간에, 넌 누구야?”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아인 발터라고 합니다. 잔과 마리는 트리움피한에서 만났습니다.”


“나는 킬리안 바란이라고 한다. 이름은 됐고, 그나저나.”


킬리안은 아인과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잔이랑 무슨 관계야?! 앙? 그 녀석이랑 친해지면 곤란해?”


아인은 순간 당황했지만 오히려 그만큼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미 결혼해서 애도 있어. 그렇게 가만히 있는 사람 위협할 시간에 네 여자친구한테 가지 그래?”


“누가 누구 여자친구라고?!”


킬리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금 더 잔의 옆으로 움직였다.


“다 왔어. 밀리우야.”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펼쳐진 밀리우(그리힌리즈)의 광경에 아인은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도저히 둘레가 가늠이 안되는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진 도시는 몇몇 건축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흙과 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각각의 건물들이 엘프 특유의 장식과 자연물의 조화가 이루어져 개성적인 미를 뽐내고 있었다. 넷은 천천히 마을로 들어와 나무판자를 깐 길을 걸었다. 킬리안이 물었다.


“그래서, 아인 발터. 무엇 때문에 밀리우까지 왔지?”


“엘프의 자랑거리인 대도서관에 가고 싶습니다.”


“뭐? 잔, 너 이 녀석한테 대도서관에 대한 이야기 안 했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킬리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들어, 대도서관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야. 외부인은 오로지 대사제님의 허가를 받아야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그렇다면 그 대사제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이 자식이…!”


그때, 잔이 킬리안을 말렸다.


“거기까지 해. 어차피 우리가 국경 넘은 것 때문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하, 그래. 알았어, 따라와.”


킬리안은 대사제가 있는 신전까지 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아인이 조용히 잔에게 물었다.


“원래 저런 성격이야?”


“어릴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투덜거리긴 했지.”


잠시 후, 넷은 신전 앞에 도착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은 이 그리힌리즈에 몇 안 되는 나무로 짓지 않은 건축물이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언제나 그렇듯 이번엔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은 엘프 경비병들이 막았다. 다만 이전과 차이라면 그들이 킬리안을 알아보고 경례를 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국경 수비대대장 킬리안 바란이 북쪽 국경에서 넘어온 이들에 대해 대사제님께 보고하려 한다네.”


“네! 대사제님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뒤에 분들은…?”


“보고할 국경에서 넘어온 이들이네. 적은 아니니 안심하게.”


“네, 알겠습니다.”


경비병이 신전 안으로 사라지자 킬리안은 셋에게 일렀다.


“무기는 전부 손에 바로 닿지 않게 해. 너희 둘은 알고 있겠지만, 대사제님이 허가하기 전까진 절대 그분과 눈을 마주치지 마.”


잠시 후, 그 경비병이 돌아왔다.


“모두 대사제님을 알현하는 것이 허가되었습니다. 무기는 저에게 맡기시거나 이 밧줄로 봉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잔과 마리는 무기를 경비병에게 맡겼고, 아인은 밧줄로 무기를 꽁꽁 묶어 봉인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자 넷은 대사제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몇 분 동안 복도를 걸은 끝에, 넷은 대리석으로 된, 또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문 앞에 섰다. 이번엔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경비병이 말했다.


“대사제님, 알현자가 왔습니다.”


문 너머에서 무감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라 하라.”


대리석 문이 돌이 부딪히는 소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열리자 킬리안을 필두로 넷은 알현실로 들어갔다. 대사제가 앉아 있는 자리에는 배일이 처져 있어 비치는 그림자만이 그 뒤에 대사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배일을 걷기 전에 모두 고개를 숙였지만. 배일이 걷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대사제가 입을 열었다.


“킬리안 공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라.”


“3시간 전 밀리우 북쪽 국경으로 누군가 침입했다는 첩보가 들어와 저와 저희 대대가 그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이들이 제 뒤의 셋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인간 남자는 그저 방랑자일 뿐이며 오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다른 엘프 둘은 원래 여기 살던 이들입니다.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헌데, 고작 밀입국자의 처분으로 이 대사제를 알현하려 했을 리는 없고. 대사제에게 온 진짜 목적이 무어냐?”


“그건 여기 인간… ‘아인 발터’가 답하게 하여도 되겠습니까?”


“대답하라.”


아인은 버릇처럼 고개를 들려다 황급히 푹 숙이곤 말을 이어갔다.


“대사제님도 ‘용’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저는 그 용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용을 쫓아 황무지까지 왔을 때, 저는 용과 관련된 기록이 이곳 그리… ‘밀리우’의 대도서관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허가되지 않은 국경을 넘는 모험을 선택한 것입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대사제는 절제된 웃음을 흘렸다.


“그래, 확실히 용에 대해서는 들었다. 뭐, 두 엘프들이 계속 너를 따라다녔다면 스파이도 아닌 것 같고. 고개를 들라.”


넷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대사제를 바라보았다. 흑발의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 엘프는 눈과 입가에 잡힌 주름으로 그녀가 긴 세월을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새하얀 옷을 입어 그녀가 엘프들의 지도자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엘프들의 법칙에 따라, 외부인은 우리 대도서관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 위해선 3명의 엘프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아인 발터’의 대도서관 입장에 동의하는가?”


“네, 대사제님.”


잔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긍정하자 마리도 잇따라 말했다.


“동의합니다, 대사제님.”


“전 아닙니다. 대사제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킬리안이었다. 대사제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구나, 오늘은 물러가라. 아인 발터가 밀리우에 머무르는 것은 직접 허가하겠다. 나머지 엘프 한 명을 더 모아서 이 대사제에게 오너라.”


신전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아인이 킬리안에게 화를 냈다.


“일단 이유부터 들어보자. 반대한 이유가 뭐야?!”


“당연한 거 아냐? 아무리 적이 아니라 해도 만난지 하루도 안 지난 사람한테 내가 왜 동의를 해줘야 하지? 그리고, 네가 계속 잔이랑 붙어 다녔다는 거에서 더 마음에 안들어!”


아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어버렸다. 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잔과 마리를 바라보았지만, 잔은 화를 참을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고 마리는 아예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아인이 두 사람에게 애원했다.


“저놈 어떻게 설득 안 돼요?”


마리가 말했다.


“킬리안은 어릴 때부터 고집불통이라 우리가 설득해도 안 들을 걸?”


아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잔이 말했다.


“어차피 꼭 도서관에 들러야한다면 며칠 여기 있다 가. 여관은 저쪽에 있으니까.”


아인은 아직 분을 삭히지 못한 킬리안을 슬쩍 바라보았다.


“잔은 저 녀석이랑 있는게 좋을 것 같아. 너랑 내가 같이 돌아다닌 게 화가 난 이유라면, 앞으로 또 같이 다닌다면 정말 화를 낼 거야.”


잔도 그 말에 동의하고 킬리안에게 갔다. 대신 마리가 여관 쪽으로 아인을 인도했다. 계속 움직이던 중, 아인과 마리는 마을 광장의 기묘한 분수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인의 눈에 들어온 분수대는 무언가 기묘했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특유의 투명감 없이 새하얀 물이 흘러 나오는 데다가 분수 주변으로 똑같이 하얀 결정이 즐비해 있던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아인이 그쪽으로 움직이자 마리가 아인을 붙잡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까이 안 가는 게 좋아. 저건 마나의 샘이야.”


“마나의 샘이요? 여기에도 있었군요.”


“그래, 순수한 마나가 액체로 흐르는 곳이지. 저기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몸이 순수한 마나를 감당하지 못해 산산이 부서진다고 알고 있어요.”


“잘 아네, 그럼 가던 길이나 가자.”


아인은 여관 앞에서 마리와 해어졌다. 다음날 낮에 신전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

소꿉친구 플래그밖에 러브라인을 못 만드는 작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