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게 선명하게 녹아내리다 다시 피어오르는 검붉은 화염 속 당신은 괴물같은 불길 속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나왔다. 당신의 눈앞에 건장하고 용감한 베테랑 소방관이 있다. 


당신은 그에게 눈물을 짜내며 부탁했다. 하나 뿐인 내 아내와 아이를 구해달라. 동료들의 만류에도 그 소방관은 지옥같은 화염 속을 스스로 뛰어들어갔다.


이 소방관의 일생은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일생이란 이야기, 이야기란 기억이다. 누군가는 그를 기억한다. 그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남자는 그를 기억한다. 그의 동료들, 그리고 남자로 인해 소방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40대, 노련함, 베테랑, 저돌성과 무모함, 용기 때론 만용, 하지만 결국 해내는 끈기와 근성의 남자


그는 재밌는 취미를 가진 특이한 남자다. 그 자신이 스스로 지칭한 말이다.


재활용꾼.


사람을 죽인다. 그 부산물들은 보통은 버리기 마련, 하지만 나는 다르다.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무엇 하나 버리지 않는다. 인간은 소중한 존재, 지구의 오만한 지휘자. 그에 대한 그만의 예우다.


오늘 그의 집에 있는 <공방> 에는 사이 좋은 모자가 그의 소개로 놀러 왔다. 남자는 저녁은 파인 다이닝이 좋겠다면서 마트에서 올리브유와 로즈마리를 사왔다.


또 다른 남자 A 


그의 취미는 박물관 관람, 영화 보기, 외식, 양초 만들기, 그림 일기 보기, 금연,  축구 하기, 농구 하기, 흡연,  요리 하기, 금연, 산책, 빨래 걷어주기,  수업 참관하기, 게임 하기, 뮤지컬 보기, 몰래 마시는 맥주, 기념일 챙기기, 생일 챙기기, 옛날 얘기 해주기, 목욕, 때 밀어주기, 쇼핑. 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루해진 그는, 너무나 지루해서 못 버틸 지경이란 걸 깨달아버린 그는 집에만 있게 됐다.


담배만 피게 됐다. 술만 마시게 됐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다 남자A는 재밌는 취미가 생겼다. 정답에 근접할수록 그는 일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환희에 도취됐다. 흥신소에 가고 주말에는 변장을 하고 뒤를 캐고 CCTV의 위치를 메모하고 극한의 인내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푸하하 하고 크게, 더 크게 푸하하하고 웃었다.


그는 오랜만에 양초를 만들었다.


집에 불이 났다.


119에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