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채웠다.


"대한 독립 만세!"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저에 외쳐댔다.


"조선 독립 만세!"


천조각과 모자를 머리 위로 흔들며 울부짖었다.


저 미개한 조센징들이 감히-


지고하신 천황폐하의 은혜에 보답할줄도 모르는 '2등 시민'들!

무지와 원시의 그늘에 가려 찬란히 빛나는 이 '문명 사회'의 도래함을 보지 못했을 이 저능아들을-

대일본제국은 감싸안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감히-

반기를 들었다.


이건, 반역이다.

배신이다.


청의 노예국 지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거늘, 그들은 감사함을 모른다.

서구 열강들의 탐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거늘, 그들은 기뻐할 줄을 모른다.

부조리한 신분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거늘, 그들은 이렇게 뒤통수를 치고말았다.


무지를 쫓아내기 위한 계몽교육을 시켜주었거늘, 그들은 무지를 사랑한다.


그들은, 열등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꽉 쥔 주먹에 땀이 났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귀는 멍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혈관에 아주 강렬하고도 짜릿한 산(酸)을 들이부은 듯 했다.


강렬한 외침이 폐에 차올랐고, 그대로 기도를 따라 솟구쳤다.


「천황-」


옆의 몇몇이 나를 힐끗 쳐다봤다.


「폐하-」


몇몇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만세!」


양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다.

외치고 또 외쳤다.


해방감이 온몸을 감싸돌았다.


나는, 증명해냈다.

하찮은 우민들의 파도 속에서 '거스른' 자가 되었다.


주변의 분노에 젖은 눈길이 나를 압박했다.


그래, 그렇게 분노하기나 해라 멍청이들아.

그래봤자 너희들도 얼마 뒤면 깨닫겠지.

이런들 저런들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대일본제국이 우리 조선인들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지를.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은총인...





퍽.





아, 맞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또 맞았다. 하하.


역시, 미개한 조센징들은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니까.


아, 더 때리세요, 더! 마음껏!

주먹으로 내 창자를 후려치세요.

뺨을 때려주세요.

목을 졸라주세요.

나를 넘어뜨리고 밟아주세요.


아, 게다(げた)로 발길질을 하지는 말아주세요.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주세요.

사지를 찣어 전국 방방곡곡에 내보여주세요.


그러나 마지막에는 내지(内地)에 묻어주세요.


여러분들이 저를 때리면 때릴수록 여러분들은 더욱더 하찮아지고, 저는 더욱더 고귀해진답니다.


「천황-」


아, 진짜 아프네.


「폐하-」


이거, 좀 위험할지도?


「만세!」


으으, 기분 째진다!

씨발, 지금 죽어도 좋아!










암전.










탕- 탕-


꺄악-


화르륵-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콜록 콜록-"


연기가 자욱했고 불길이 치솟았다,

주변에선 비명소리와 총성이 난잡하게 섞였다.


어떤 여자가 창밖으로 아기를 던졌다.


"이게 무슨-"


여긴 도대체 어딘건지-


뒤쪽의 십자가를 보아하니 교회당 건물의 내부같았다.


"콜록 콜록-"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빨리 건물 밖으로 나가야 했다.


옆의 사람들을 밀치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밖에는 군인들이 있었다.


나를 향해 총을 겨눈채로.





푹-





다리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졌다.


털썩-


총탄 하나가 더 날아와 어깨를 부쉈다.


"끄아악! 으윽- 아아악!"


입에서 괴성이 나왔다.


도대체 왜? 여긴 어딘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뱉으며 차라리 총알 하나가 날아와 머리통을 부숴줬으면 하는 소망을 가질 뿐이었다.


「천황 폐하 만세!」


그리고 덴노 헤이카는 소원을 들어주었다.










암전.










털썩-


길거리 한복판에서 주저앉았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건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길을 걸었다.


그나저나 뭐하다가 내가 여기에 왔지? 여긴 또 어디인가?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꽤나 큰 시가지인 듯 했는데 지진이라도 일어난건지, 공습이라도 일어난건지 건물들이 하나같이 부서져있고 무너져있고 난리였다.


멀지 않은 곳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묻기 위해 그들에게 향했다.


그런데 그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이봐, 너 조선인이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칼을 찬 남자가 일본어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지금 여기가 어디고, 무슨 일이 발생한거죠?」


나의 매끄러운 일본어 실력에 나 자신도 감탄하며 대답하고 질문했다.


「조선인이다!」


그 남자의 대답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퍽-





그리고 이어지는 집단 린치.


「더러운 조선인!」


「감히 폭동을 일으키려 해?」


아팠다. 몸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아, 나는 대일본제국의 훌륭한 신민이 되려 하였는데 왜 이자들은 나를 독립만세를 외치며 폭동을 일으킨 열등한 조선인으로 착각하는 건가?




무언가 내 등을 찔러 관통했다.


이 바보들아! 나는 대일본제국의 우수한 신민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멍청한 우민들과는 다르단 말이다!


「천황 폐하 만세...」


나오지 않는 외침을 헐떡였다.










암전.










나는 수술대에 누워있다.


배가 열려있고 의사들이 내 장기를 이것저것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다.


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아무래도 의사들이 전류를 흘려보낸 것 같다.


나는 그래도 우매한 짐승들과는 달리 계몽된 시민이라 그런지 이런 데 있어서 기본적인 과학상식은 있는 것 같다.










암전.










고양된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다.


눈앞에는 조종간이 있다.


비행기?


어, 추락한다.


내가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있다.


눈앞에는 군함이 보인다.


씨발.


「천황 폐하 만세-!」










암전.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압도되는 함성이 울려퍼진다.


"대한 독립 만세-!"


누가, 좀 저들의 입을 닥치게 해 주었으면.


머리가 지끈 아프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좀 쉬어야겠다.


차를 마시며 안락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래라도 좀 들으면 편해지겠지.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