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일한거, 오늘 바로 달라고 징징거리길래. 지금 당장은 못준다고 말해주고 왔다. 정산은 해야 되니까, 월급날 들어간다고 못박아두고."

 

 "그 이야기 하나 하고 오시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신 거에요? 한 20분 지난 것 같은데."

 

 "내말이!"

 

 지배인은 갑자기 형형한 눈빛으로 형우를 노려 보았다. 형우 입장에서는 그냥 평이하게 질문을 던졌다가 봉변을 당한 꼴이다. 나도 옆에서 보고만 있었는데 깜짝 놀랬으니까. 형우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 소심하게 우물거리며 투덜댔다.

 

 "아, 왜 저한테 화를 내고 그러세요, 형님."

 

 갑자기 어제 이 녀석이 재혁이한테 아무 이유 없이 화 냈던 것이 생각난다. 마치 어제 재혁이한테 괜시리 화 냈던 것에 대한 인과응보인 듯 하다. 나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배인은 내가 그러던가 말던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개거품을 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화 안 나게 생겼냐? 지네가 잘못해서 쫓겨가는 애들한테 돈은 그대로 준다고 이야기해 줬으면 됐지, 그걸 왜 지금 달라고 그래? 오늘이 월급날이야? 안 그래도 오늘 일당 알바 쓰는 걸로지출 보고해야 되는데 저렇게 이야기하는거 들으면 기분이 좋겠냐고. 아이고, 속터져."

 

 조금 위화감이 든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사실 이반하고 류다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배인이 조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형우도 받은 것 같다. 형우는 조심스럽게 지배인에게 되물었다.

 

 "어... 근데 형님, 쟤들이 그 이야기해서 열 받으신 거에요?"

 

 "아니, 사람이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곱게 하면 얼마나 좋겠냐. 저거 류다 저것도 정상이 아니야. 돈은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돈 내놔야, 말하는 투가. 얘네들이 물론 우리나라 말로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할 거고, 내가 그래서 잘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당연히 지금은 힘들다 라고 조곤조곤 얘기해 줬지. 쫓겨가는 마당에 불쌍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거기서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네? 지금 누가 잘못해서 나간다는 것도 모르는 마냥? 그래서 좀 달래다가, 신사적으로 처리하고서는 오느라고 늦은 거 아냐."

 

 "뭘 어떻게 신사적으로 처리하신 거에요?"

 

 "뭘 어떻게 해. 그냥 이 자리에서 경찰 보고싶냐고 이야기했지."

 

 그렇게 이야기하고서는 지배인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러고서는 큰 소리로 프론트에 있는 재혁이를 불렀다. 재혁이는 지배인이 문 밖에서 부른 소리가 어떻게 들리긴 하였는지, 몇 초 안에 흡연장소에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어, 아까 일당알바 전화 해 봤냐?"

 

 "전화는 해 봤는데, 오늘 당장 이렇게 급하게 이야기하면 바로 구해줄 수가 없다던데요. 혹시 모르니까 구해지면 연락준다고 그러던데요."

 

 지배인은 혀를 한 번 쯧 차고서는, 다시 형우와 나를 돌아 보았다.

 

 "할 수 없다. 오늘은 나도 올라갈 테니까, 민재 너는 언제나처럼 형우하고 같이 도는데, B팀으로 들어가라. 나하고 베팅아저씨하고 같이 한 팀 해서 C로 들어갈 테니까, 지금 이제 올라가. 토요일이라 일도 빡센데 이게 뭔 난리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지배인은 재혁이에게 일할 때 입을 남는 옷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하긴, 형우 거를 빌리면 사이즈가 안 맞겠지. 

 여하튼 이렇게 토요일의 평범한 일상은 시작되었다. 여전히 주말의 모텔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졌고, 청소 인력의 부족으로 지배인까지 올라가 버린 프론트 일은 오로지 재혁이 혼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아직 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재혁이는 가끔 손님이 없을 때 무전기로 살려달란 말을 남겼지만, 그 무전기 반대편에 있는 청소팀 아무도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니, 귀담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바쁜 날이었으니까. 한 팀은 두 명이고, 그 두명이 빠진 것을 지배인이 올라가서 메꾸겠다고 이야기한 것 까지는 좋은데, 역시 사람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다 치운 방에서 안 치운 방으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손님들은 미어 터지고, 세 청소팀은 쉴 겨를도 없이 린넨을 갈고, 쓰레기를 치우고, 거울을 닦았다.

 

 식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숟가락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급박하게 식사를 끝마친 후에, 숙박손님을 받을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눈치를 먼저 알아챈 것은, 역시 이 쪽 짬밥이 좀 더 있는 형우가 먼저였다. 꼭대기 층 스위트룸의 마무리를 지으면서, 형우는 나를 돌아보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야, 시발 드디어 무전이 좀 안 날아오는 것 같지 않냐?"

 

 "몰람마."

 

 너무 딱 끊어서 대답한다고 생각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대답을 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오늘따라 대실 사람들이 뭐 이렇게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가는지 ,쓰레기를 방 안에서 치우느라 왔다갔다 한 것만 거의 두 배 가까이 된 것 같다. 나는 약간 욱신거리를 허리를 부여잡고 다시 객실로 돌아온 상태였고, 형우는 그 사이에 나머지 자잘한 부분을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안되겠다. 이제 좀 쉬러 가자. 야, 내가 담배 한대를 못 폈어, 오늘."

 

 "좋네, 건강해지고."

 

 말은 빈정거림이 있지만 사실 이 녀석, 방 한두개 치우면 그대로 담배를 꼬나무는 골초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너무 많은지라 지금까지 하나도 피우지 못하고 계속 객실만 들락날락하여 식사 때 마지막으로 한 대 핀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형우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카트를 몰아 복도를 뛰쳐나갔고, 나는 문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그 뒤를 따라갔다.
 무전이 없다는 것은 모든 팀이 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와 같다. 형우의 재빠른 흡연을 위해 달려간 비상계단에는 이미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연기가 보였다. 사샤와 류다가 바로 아랫층에서 먼저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우는 계단에 앉아 있는 사샤를 보자 마자, 손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형님ㅡ 많이 바쁘죠?"

 

 사샤는 아무 대꾸 없이 담배를 문 입을 늘려 씨익 웃어 보였다. 얼굴에는 오늘 이반과 싸워서 생긴 상처와 멍자국이 가득한 얼굴에 미소가 번지니, 마치 방금 한 게임 이기고 온 권투선수 같아 보인다. 

 

 "아, 오늘 힘들어"

 

 "좀만 참아요, 만수 형님이 아마 담주까지는 청소팀 구해다 줄거니까." 

 

 그러고서는 사샤의 옆자리에 턱 앉아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샤는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그대로 형우에게 건네 주었고, 형우는 자연스럽게 손 끝에 불꽃을 틔워 올렸다. 

 

 "류다, 오늘은 몇 방이나 청소했어요?"

 

 류다가 나의 질문을 듣자 '뭐?' 하는 표정으로 사샤에게 다시 무어라 말을 하였다. 류다는 사실 사샤보다 한국어가 유창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하여 물어본 건데, 아직 이 정도까지는 못 알아듣나 보다. 사샤는 다시 나의 말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류다에게 알려주었고, 류다는 멋쩍게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우리도 얼마나 일했는지 잘 기억을 못하는데. 여하튼 그 정도로 일이 빡셌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모두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나야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으니까 흡연자들이 정확하게 어떤 부분에서 담배가 없으면 안달복달 못하는 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한 모금 빨아 들일 때 마다 표정이 저래 달라지는 걸 보면, 이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마약과도 같은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나는 시작도 하지 말아야 겠구나 하는 거고.

 

 사샤는 담배를 피우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는 내 얼굴을 잠시 들여다 보더니, 느닷없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