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여기 있으면 안 됐어"


 살짝 당황했다. 갑자기 나를 보며 던진 이야기에. 물론 오늘 일어난 일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그것도 나한테 바로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나는 마시던 물이 흘러 넘친 것을 옷소매로 닦고서 대답했다.


 "아, 예 그렇죠. 그런 놈이 여기 있었으면 안 됐죠."


 "아니, 그런 말이 아니다."


 사샤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반, 만약에 경찰 만나면 한국에 못 있는다. 그래서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말한거야."


 "경찰 만나면 한국에 못 있는다고요?"


 "그래. 비자 뭐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했었다. 우리 비자, F4 비자인데, 이반은 다른 비자라고 그랬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비자가 다 같은게 아닌가 보죠?"


 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를 뒤에서 듣고 있던 형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받았다.


 "뭐, 어차피 잘 됐네. 어차피 나가야 할 때가 됐다는 거네."


 그 이야기를 듣는 사샤의 얼굴에는 다 펴지지 않은 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얼굴에 난 상처나 멍 때문에 활짝 웃고 싶어도 맘껏 웃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 아닌, 조금 씁쓸한 빛이 입꼬리를 구긴 듯한. 

 샤샤는 그 뒤로 일이 끝날 때 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에도 손으로 건성건성 인사를 받아 두고서는, 생각에 잠긴 듯 눈의 초점을 흐렸다. 그 앞에 없는 무언가를 자꾸 응시하는 것처럼. 그렇게 언제나와 같은 별 다를 바 없는 토요일의 하루는 끝이 났다. 아직 갈무리 해야 할 한 컷을 남기고.

 

 "배고픕니다. 민재."


 어째서 이 장면은 변하는 것이 없는가. 어째서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의 끝은 항상 같은가. 나는 미간을 찌뿌리며 리돌을 쳐다 보았다. 리돌은 밥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 이 행동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덜 부여할 것도 없다. 그냥 식사가 필요하다 이 소리지.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의 앞에는, 분명히 아침 식사가 끝난 후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닭도리탕을 함유하고 있던 빈 냄비가 놓여 있다. 언제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걸 다 먹어놓고도 배가 고프다는 말이지 지금? 아직 성장기인가?

 일단 닭도리탕의 행방과 배고픈 상태에 대해서 취조를 해 보기로 했다. 얼마만큼 배가 고픈지 알아야 밥을 차려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리돌."


 "네, 민재."


 "많이 배고파?"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 뭐 이건 그렇다 치자. 그럼 이제 식탁 위의 빈 냄비와의 연관성을 찾아 볼 시간이다.


 "리돌."


 "네, 민재."


 "니 앞에 냄비."


 패턴도 변하는 것이 없다. 무언가를 지적하고, 알아들을 때 까지 단어를 선택해서 알려주고, 납득하고, 다시 또 다른 일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왠지 나도 말이 많이 짧아진 것 같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이야기하는 편이 서로를 더 빠르게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리돌은 잠시 냄비를 쳐다보다, 다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래. 뭐가 잘못인지 모르시겠지. 그럼 친절한 지구인께서 설명을 해 줘야 겠지?


 "왜 이렇게 냄비가 비어 있을까?"


 리돌은 나의 자상한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안 먹었습니다."


 갑자기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다. 밥 다 먹고 눈 앞에 이렇게 증거물이 있는데, 자기가 안 먹었다고 발뺌하는 거여 지금? 나는 간신히 평정심을 발휘하여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진짜로 제가 먹은 게 아닙니다."


 "그럼 저건 어떻게 된 건데?"


 "모르겠습니다."


 몰라? 성희 씨나 캐롤라인이 오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녀석이 몰라? 천천히 차오르던 인내심이 뚜껑을 열고 터지려던 순간, 리돌은 다급하게 내 팔을 붙잡고 무언가를 해명하려 하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나오는 말투는 속터질 듯 평화로웠다.


 "민재, 거짓말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닭도리탕은 그릇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진짜입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정황이 이렇게 나와 있는데도 끝까지 발뺌을 한다라... 이 녀석도 이제 지구생활에 거의 다 정착한 것 같다. 저기 여의도에 계시는 높으신 분들이 하는 짓거리를 이 녀석이 그대로 본받아서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계속 영화만 보고 있는 게 못마땅해 뉴스 채널을 틀어놓고 나온 게 역효과가 난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서는 그냥 밥을 차리기로 했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증거가 잡힌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이 먹다가 그랬다는 거라면 딱히 화내기도 그렇다. 리돌은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는 나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그냥 언제나 그렇듯이TV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행동에 변화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이로다. 


 갑자기 새하얀 머리를 늘어트리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리돌의 뒷모습에서, 이반하고 류다가 호텔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 녀석하고 그 둘이 비슷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지금 법 없이 사는 이 녀석이 일반적인 외국인이었어도 지금 우리집에서 이렇게 태평하게 TV를 보고 있을 수 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처음 만난 그 날로 국외추방행이었을 거다. 물론 이 녀석이 세상도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긴 하지만. 사실 방구석 폐인처럼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곳 한국까지 와서 노동을 했던 그 둘은 차라리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을렀던 것은 차치하고, 어쨌든 생존을 위해서 노력하긴 했으니까. 내가 누워서 TV만 보고 있거나 하루 종일 게임만 할 때, 부모님들이 왜 그렇게 속이 터져했는지를 이제서야 이해가 될 듯 한 기분이 든다. 


 사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이반과 류다를 변호하거나 동정해 줄 여지가 전혀 없다. 그들은 한국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그들이 살던 동네에서보다 돈을 더 많이 받아가기 위해서 이 곳에 온 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곳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급여가 바뀌면, 당연히 일하는 조건도 달라진다. 사샤와 까쨔는 자신들이 부양하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의무감으로, 그리고 이 곳에 오래 살아서 느낀 감으로 한국의 스타일에 맞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이반하고 류다는 자신들의 나라에서 게으르게 일하던 방식 그대로를 관철하려 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그 방식이 통했는지 몰라도, 이 곳은 한국이다. 헬조선이니 뭐니 하는 시쳇말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에서는 한국식으로 일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오늘처럼 몸으로 직접 겪어보고 깨닫는 수 밖에는 없겠지. 비록 그 결과는 가혹하지만. 사샤의 말이 맞다면 아마도 경찰에 걸린다면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강제추방 뿐일 것이다. 우리처럼 주거를 주는 모텔 일을 어떻게 구하든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쫓겨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서는 또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에 녹아들겠지. 원래 그랬던 것 처럼.


 그런 의미에서 리돌 녀석은 아예 이 범주에서는 벗어나 있다. 이 녀석은 '나라'라는 시스템 자체를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 봤을 때 캐롤라인이 했던 말이 맞는 것이, 나와 이 녀석의 관계는 사람대 사람으로서의 동거인이 아니라, 좀 미안한 얘기지만 주인과 애완동물에 가깝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 처럼 자신의 쳇바퀴를 굴리지도 않는다. 아니, 쳇바퀴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집 안에서, 조그마한 화면에 눈을 박고 가만히 세상을 관조하는, 사람보다는 고양이에 가까운 삶. 이 녀석도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나를 제외하고서는 다른 이들에게 그 어떤 선을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나야 반 협박에 당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리돌은 이 집안에서,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TV에서는 영화의 막바지에 도달한 듯,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돌의 머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비 내리는 어떤 도시를 배경으로 스크린은 천천히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리돌은 지겨운 듯이, 마치 엄지손가락과 하나가 된듯한 리모콘 버튼을 눌러 채널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