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6화




수천년전. 마법, 성법, 영술, 선술 등 수많은 기술들이 존재하는 시대. 인간은 종교를 믿었고, 자연을 두려워했으며------ 그럼에도 지혜를 쌓아나갔다. 


점성사들은 별을 보고 세상의 운명을 점쳤지만, 점차 방위와 시각을 계산해내는데도 사용하였다. 마법사들은 자연의 무서움을 자신의 마나와 공명시켜 마법을 발휘했지만, 누군가에게 자연은 극복과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수천년전. 원시적이지만 철학과 지혜와 지식이 쌓였고, 결국에는 원시적인 태엽 기술과 증기기관까지 고안되었었던 그런 시대. 거기에서------




"------신은, 세계를 둘로 쪼갰어." 

"쪼갰다고요...? 그건... 평행세계...를 말하는 건가요." 

"응. 그리고, 두 세계에, 제약을 1개씩 걸어, 서로 한쪽 길로만 나아가도록 유도시켰어." 


과학과 마법의 대립은 신조차 염려할 일이었다고, 선배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기에 더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세계들에 제약을 걸어, 과학과 오컬트중 한쪽 방향으로만 성장하게끔 유도하려고 했다. 그것이 수천년전의 일이라는 건가.


"이쪽 세계에는, 법과 술에 대한 제약이 생겼어." 

"과학 사이드로 나아가도록 말이죠?"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퍼트려진, 현 마법, 성법은, 술법은 위력도 비교적 높고, 체력과 생명력을 요구하지 않아." 

"그건 좋아보이는데요."//"대신에, 세계를 소모해."


선배의 보충 설명 하나에 내 입이 닫혔다. 세계를 소모한다니... 공간 적출? 아니면 환경 파괴? 




"그 술법들의 리스크로서, 세계는 생명력을 잃고 삭막해져. 현대 기술력이 만든 환경파괴와, 유사하게." 

"으음... 수많은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면서 급속한 환경파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하고, 그에 따라 스스로 마법을 포기하게 만든다------라는 거군요. 원래는." 


그래, 원래는. 하지만 신이 그렸던 그 비전은 틀려먹었다. 


일댄, 신이 예상했던것과 달리, 이 세계의 급속한 과학 발전은 수천년이나 뒤에 이루어졌다. 특히 수백년전 종교 암흑기만해도 종교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대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원인은... 무언가 잘못되서 환경 파괴가 일어나지 않은 덕분...? 신기술의 개발, 뭐 그런 이야기인가...





"신은, 운명을 간과했고, 인간을 간과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이후의 모든 설명을, 단 한문장으로 압축한 것 같은 그 말에 나는 무심코 숨을 들이켰다. 


"마법, 성법, 영술, 신술, 선술, 요술. 세상이 품은, 수많은 기운을 이용하는 술법들은 다양. 그런 술법들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같은 물건끼리는 연이 있다, 야." 

"같은 물건끼리는 연이 있다... 읍...!"


고등학생이 말하는 것 치고는 너무 고상한 말이었지만, 내가 마법은 몰라도 판타지 소설은 많이 읽었다. 같은 물건끼리는 통한다. 이런 이론을 기반으로 한 주술이나 점술 같은걸 많이 봐서, 그게 뭔말인지는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도 바로 알았다. 


'세계를 둘로 나누어, 마법과 종교를 쇠퇴시키려고 했지만, 그 뒤로 수천년동안 그 들은 번성했어... 그것도 왠만한 신화와 전설 체계는 전부 유지한 채로...'


아니 그 뿐만이 아니다. 그 기간동안 마법 역시 제대로 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의 예상을 뒤엎고' 말이다. 지구상의 유의미한 환경파괴는 1800년대 이후, 현대 인프라에 의해서 발생한 것. 그렇다면 그동안의 리스크는------


"------세계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어. 같은 종교 체계로 인한 끈, '통로'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이쪽 세계의 마법사는, 쓰지 말라고 만들어진 술식을 개조해서 후세로 잇게했죠. 아마도, 원래 세계가 지고 있을 리스크를 저쪽 세계로 떠넘기게 만들게 개조해서..." 




"정답."


그 대답에서는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길고 긴, 복잡하디 복잡한 설명 끝에 간신히 세계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


그런 끔찍한 지식을 알게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릇 갔다놓고 올게요." 

"응."


뭐어...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어제부터 해서 몇번이고 놀랐었다. 밤중에 만난 하늘을 날던 악마, 그걸 꿰뚫은 학생회장(...?)의 마법 등. 그리고 갑작스럽게 알게 된 세계의 진실 등. 


'근데 그게 와닿아야 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고작 어제 오컬트와 마주쳤다고. 그쪽 세계 사람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이쪽의 지구도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는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모든 진실을 안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재밌었어?"

"소설은 아니죠? 그쪽 세계는 뭐 잘 산대요?"

"응. 순수한 사실. 그쪽 세계는, 94퍼센트 이상의 영토가, 황폐화. 나머지는? 적응력이 뛰어난 마족의 영토, 소위 마계가 된 상태." 

"헤에..." 


그쪽 세상은 상상이상으로 상황이 안좋은 모양이다. 뭐 이쪽 세계 사람이 수천년동안 환경 파괴 마법을 펑펑 써댔을테니 그런 것도 어쩔 수 없으려나. 


"반응, 가볍네." 

"솔직히 너무 먼 이야기잖아요. 제가 마법을 쓰는 마법사도 아니고, 마법에 피해받는 그쪽 세계 주민도 아니고... ...설마 뭐 시킬 일이 있어서 이야기 꺼낸건 아니죠...?" 




내가 그렇게 묻고나니, 문득 이야기의 스케일이 좀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졌다. 


'설마 진짜...?'


아니 뭐 일단 말해두지만... 나는 강하다. 응, 전수받은 수련법 덕분인지 아니면 내 재능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싸움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세상에 대한 지식도 꽤 빠삭하다.


내 앞에서 다람쥐같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이 선배는, 이런 무술을 나에게 주어 '이유없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그 강함은 내 인생에 소소하게 많은 도움을 주긴 했다. 


그걸 감안해도 너무 과할 정도의 강함인지라-----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시킬 것이라고. 이 힘을 풀 활용해야 할 일을 맡길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는 세계와 세계 사이의 이야기잖아... 


'스케일이 좀 크다고...'




"무거운 반응을, 기대했어."

"그런가요. 그건 안타깝네요."


언제나와같이 무표정인데 말이지. 이 선배, 기대한다는 감정도 있었구나.


"그리고, 이야기의 순서가, 잘못됬다는 것을 깨달았어." 

"네...?" 




"------모든 기억을, 해방해."

"...!!"


갑자기 들려온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내가 설마 앞으로 수년 동안 들을 수나 있을까 하는 그 명령을...'


무얼 숨기랴, 나에게는 봉인되어있는 기억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데이터 말소로, 어제 학생회장 마법사에게 받았던 기억 삭제 마법과 비슷한 조치로 지워진 기억이다. 


연희 선배에게 전투술을 전수받기 이전의, 나의 기억 전부가 해당한다. 꼭두각시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뭐 어떠랴, 부모도 형제도 없는데. 당연하지만, 나는 그 기억들도 복원할 수 있다. 수련에 방해될 거라는 선배의 말에 하지 못했을 뿐이다.


꽤나 뜬금없는 시기에 허가가 떨어진건 의아하지만, 어쨌든 마음 한켠에 꽁꽁 싸매놓았던 짐들이 풀리는 것에 나는 해방감마저 느꼈다. 




내 머릿속의 수천, 수만줄에 달하는 기호 나열이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시야가 새까매졌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지금 어떻게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너질 것 같다. 


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슬픔이, 경악이, 공포가 내 전신을 조이는 뱀처럼 느껴진다. 




고작 수분 정도 걸린 기억 탐방이었다. 하지만...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나는 내 손이 축축해져있는걸 느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도 느껴졌다. 마치 내가 어린양이 된 느낌. 


그래도, 억지로 복도 창틀에 몸을 기대어 섰다. 평범한 학교 복도에서 느닷없이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왜 선배가 지금까지 모든 기억을 이 타이밍에 해방하게 했는지 알아차렸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뭐야... 뭐냐고...!'


선배는 처음과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지긋이 보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냐고 묻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고 묻고 싶었다. 전부 잊어도 되냐고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선배는,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내 남은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될 대답을...



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