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으음...뭐야..어지러워.....'










".........야.....야..."



사방으로 메아리치듯이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때문에 트레이는 머릿속이 흔들렸다.




"얘 왜 안 일어나?"




이번에는 정확히 들었다. 트레이는 일어나려 했지만 몸에 진정제를 투여한 것인지 몸에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다. 답답했다. 트레이는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여 보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입을 움직여보려 했다. 아주 미세했지만 입을 살짝 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트레이는 모든 감각과 신경을 총 동원에 자신의 입에 힘을 주어 열게 했다.




".....으어"




매우 작은 소리였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 이라고 트레이는 생각했다.

포기하고 잠을 청하려 하자 누군가 소리쳤다.




"바,방금 입이 움직였어요!"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였다. 앙칼진 여자 목소리였는데 소리친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연신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술렁술렁 얘기했다.

한 명이 의사를 불러오겠다고 문을 열면서 말했다.

곧이어 안경을 쓰고 피부가 검은 의사가 들어와 트레이를 살폈다. 낯선이의 신체접촉에 트레이는 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레이는 그 사람을 밀어낼 수도 만지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였다. 트레이는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이겨에 있는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누군인지 다 궁금했다.

트레이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던 중 의사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살아있습니다."















*





3개월 후,





"에휴. 너희들 빨리 안 들어올래?"







엄마의 짜증섞인 목소리를 숨어서 듣고있던 알렉스가 말했다.


"쉿. 저 목소리를 들어봐봐. 한 잔소리 20분 이상 하고 매 10대 맞을 것 같지 않니?"


알렉스의 능숙한 분석에 트레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게 다 느껴져?"










알렉스는 이런 일은 별 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이. 엄마 목소리를 들어 봐. 일단 목소리를 긁듯이 말하고 있잖아. 분명 두 손을 허리 위에 둔 채 소리치고 있는 게 뻔해."

"근데 애초에 우리가 방을 어지르지 않았으면 됐지 않아?"









트레이의 말에 알렉스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저리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다름 아닌 트레이와 알렉스가 같이 쓰는 방이 매우 더러웠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4시부터 5시까지 방 청소가 있는데 알렉스와 트레이는 그 사실을 까먹고 밖에서 놀다 왔다. 그러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트레이가 이 사실을 알렉스이게 말하자 알렉스는 조용히 집으로 들어와 큰 서랍 뒤에 있는 작은 공간에 숨은 것이었다.

그 뒤를 트레이도 따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뒤에 엄마가 큰 소리로 둘을 찾았다.

더운 곳에 붙어 있어서 그런지 트레이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 더워."



"그럼 어쩌라고. 나가서 엄마한테 매 맞을꺼야?"



"차라리 그러는 게 낫겠어. 나 너무 덥단 말야."





트레이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알렉스는 잠시 당황했다.


'에이,짜식. 말만 저러는 거겠지. 설마 나가기나 하겠어?'


알렉스의 속막음을 들은 것인지 알렉스가 속으로 생각하자마자 트레이는 밖으로 나갔다.

알렉스가 말릴 겨를도 없었다.


"야! 혼날 거면 너나 혼나! 나 여기 있다는 거 말하지 마, 엄마한테!!"





소리는 크게 못 내고 작게 소리지르는 알렉스의 모습을 뒤로 한 채 트레이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






트레이는 엄마에게 잔소리만 들었지만 알렉스는 매까지 맞고 말았다.



사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트레이와 알렉스가 집에 왔다는 사실을. 누가 양심을 걸고 먼저 올라오는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0분 이상이 지나도 아무도 올라오지 않자 화가 슬금슬금 나려던 찰나에 트레이가 들어온 것이었다.

트레이라도 들어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금새 화가 식었지만 곧바로 그 뒤에 알렉스가 들어오지 않았단느 사실에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트레이는 엄마와 방을 어지르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엄마는 트레이와 약속을 하자마자 바로 계단을 내려갔고 알렉스가 숨어 있던 곳으로 가서 알렉스를 밖으로 나오게 했다.






"으아아아앙!!!"





알렉스가 매를 맞고 엉엉 울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엎드리면서 서럽게 우는 알렉스의 모습에 트레이는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아?"



"너 같으면 괜찮게느냐..?!"





울면서 소리가 뭉개졌다. 트레이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곤 방을 나갔다.

창문을 통해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순간 해가 지는 노을의 예쁜 모습에 트레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트레이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금발머리의 소녀였다.

트레이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고 현관문을 벌컥 열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달려오는 트레이를 보곤 깜짝 놀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저기,잠깐만!!"





트레이는 자신이 뭐 하로 저 소녀를 잡으려고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노을에 비친 소녀의 옆모습이...자신의 집을 보고 있던 저 소녀가 왠지 몰래 마음에 밟혔다.

소녀는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그러던 중 소녀가 넘어져버렸다. 트레이는 숨을 헐떡헐떡 쉬며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소녀는 얼굴이 뭉개진 채 일어났다. 이마에 피가 살짝 있었다. 아마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일 것이리라.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울먹였다. 트레이는 소녀의 이마에 뭍어있는 흙들을 털어주었다.

다 털어주고 나서 트레이는 소녀에게 물었다.






"많이 아파? 미안해."







가까이에서 본 소녀는 귀여웠다. 금발머리에 파랑색 눈을 가진 소녀는 통통한 볼살을 가지고 있었지만 몸은 말라있었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너희 집 수상하게 보고 있어서 이상한 얘인 줄 알았지? 실례했네."




소녀의 갑작스런 사과에 트레이는 두 손을 마구 흔들며 부정했다.




"아니야! 나야말로 쫓아가서 미안해! 무서웠지..?"




트레이가 겁이 많은 아이처럼 눈치를 살피며 묻자 소녀는 슬쩍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트레이는 멍하니 보았다.


"서로 미안하다만 반복 중이네?"

"어.어.. 그렇다."

"내가 많이 이상할지도 모르는데 내 질문에 대답해줄래?"

"뭔데?"

"내가 너의 이름을 알고 싶어. 그리고 이름을 말한 뒤 5초 정도 눈을 감고 있으면 돼. 어때, 해줄 수 있겠어?"






조금은 이상한 소녀의 제안이었지만 어렵지도 않은 제안이기에 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트레이라고 해."




그리고 눈을 감았다.


왜 눈을 감으라 한 걸까. 왠지 모르게 트레이의 가슴이 뛰었다. 해가 지는 노을 한 가운데 트레이와 소녀가 나란히 서로 마주보고 있고 트레이는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 봤던 거다.

곧 자신의 입에 소녀의 입술이...?!??!?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접촉해 온 것은 차가운 물건이었다. 그것도 입이 아닌 이마에.


뭐지? 라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 반짝 빛이 도는 가 하더니 트레이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안녕, 트레이."











작게 읊조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뇌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