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커녕 지나다닌 발자국도 없는 언덕 위의 갈대밭. 그 곳에 한 오누이가 철조망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바람은 언덕 위의 갈대밭과 철조망 사이를 긁으며 지나갔다. 날카롭게 돋아난 갈대는 칼춤을 추듯 오누이의 머리 위를 넘실거렸고, 남매는 그 서슬을 피하려는 듯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갈대밭이지만, 늦겨울의 삭풍은 풀가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철망과 갈대 사이를 비어져 나가듯 휘몰아치는 바람에, 입으나마나 한듯한 옷 사이에 추위가 에었다. 누나는 날아갈 듯 떨리는 동생의 몸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는 동생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묻고서는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동생은 큰 눈을 멀뚱히 깜빡이며 그녀의 등 뒤로 꾸물거리는 회색 하늘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혹여 동생에게 들릴 까 손가락을 문 채로, 혹여 동생의 등이 젖을 까 땅바닥을 바라 본 채로.


아저씨는?


동생의 말에 그녀는 그들을 쓰다듬어 주던 커다란 손을 기억해 냈다. 장난기 많은 남매를 재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등을 두드려 주던 그 투박한 손. 그녀는 희미하게 번진 미소 틈 사이로 눈물이 배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저씨가 그러했듯이, 남은 손으로 동생의 등을 쓸어 내렸다.


곧 오실 거야.


그럼, 엄마는? 엄마도 그때 금방 온다고 했었잖아.


입에 문 검지손가락에서 핏방울이 돋아 나왔다. 그녀는 짐짓 코를 푸는 척 하며 목소리에 젖어 든 눈물을 털어 내고서는, 가능한 한 빠르게 대답하였다.


같이 오실 거야.


정말?


미처 제대로 붙이지 못한 갈라진 대답에도, 동생은 그 말에 안심한 듯하였다. 마침 꾸물럭거리는 하늘은 어느 정도 개고 햇빛의 조각이 구름 사이로 흩날리고 있었다. 드러난 살갗으로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부둥켜 안은 두 사람 사이를 울리는 떨림이 잦아들며, 그녀는 겉잡을 수 없는 졸음을 느꼈다. 두 남매는 서로의 체온에 몸을 맡긴 채 거의 동시에 눈을 감았다. 꿈 속에서라도 이 추위를 잊어 보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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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러시아에서 유학을 했었습니다. 

졸업이 2개월 정도 남았을 무렵, 약속이 있어 시내로 나가는 언덕길에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보았습니다.





출처 : http://www.zooseyo.com/sale/sale_view.php?type=f&oid_no=bbag1557231655312-


이렇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아이들은 보통 어미가 곧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저는 멀리서 쳐다만 보고서는 다시 가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저녁 노을 질무렵 돌아온 그 길에, 아이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데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죠. 

살고 있는 곳이 제 집도 아니었고, 저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그저 말로만 인사를 건네고서는, 등을 돌려 집으로 가려 하는데

아이들이 삐약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저를 따라왔습니다.

전 그 모습에 그만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버렸고, 2개월동안 집에서 숨겨 키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데려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요.

남은 기간동안 최대한 키워줄 곳을 알아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한숨뿐이었습니다.

결국은 반려동물 업자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밖에 없었고

그 날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조차 잘못이겠지요. 

그저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말만을 해 주고 싶습니다.

미안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