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생명이 소중한가?"

이 질문에 누구는 이런 대답을 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전부 소중하다고.

그래서,그 말을 한 본인은?

작디작은 벌레의 날개를 짓이겨 날지 못하게 하고,바둥거리는 다리를 하나씩 때어 내 최대한의 고통을 준 뒤 조심스레 물을 붓고,마지막에서야 흙이 덕지덕지 묻은 나무 막대기로 몸통을 꼬챙이 꿰듯이 찔러넣어 피가 튀기는 것을 관찰하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또 다른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오로지 인간의 생명만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이,마치 생사부가 인간의 생사이탈권을 쥐었듯이,당연하다는 건가?
당사자가 말하는 하등한 생물체인 동물에게 죽는 것은 인간의 큰 수치라 이건가?

그 말을 한 사람은 승마를 타다가 낙마해 목뼈가 부러져 죽었단다.

어때? 동물에게 죽어본 기분이?
아,죽었으니 말을 할수 없나,여하튼.

몇 세기 전만해도,사람들은 거지가 집문 앞에 다가와 문을 두들기면 매몰차게 쫒아냈다.

그 반대인 부자가 문을 두들기면?
당연히 문을 열고 굽신거렸지.

인간의 이기주의적 사고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이해하게 됬다.

남의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이란 생각을.

공감을 하지 못하는,생각하려 하지도 않고 뇌가 멈추는 듯한 기분을.

***

사건의 발단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였다.

그 당시 상황에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변명이라도 생각하겠지만 바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어느덧 오후 10시.

야간 근무와 교대할 시간이 되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항상 시간 맞추어 와줘서 고마워."

나는 소지품을 챙기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까지는 두 정류장 정도 거리이다.

방지턱을 지나갈 때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밀려드는 피곤이 간간히 깨기 일수였고 덕분에 집에 빨리 도착했다.

20평 정도의 원룸.

방 안은 평범한 자취생의 방보다 깨끗했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침대와,오른쪽에 위치한 휴대용 가스레인지,왼쪽에는 삼면으로 유리에 둘러싸인 수세식 변기와 작은 샤워시설이,침대 옆에 있는 책장이 딸린 책상에 놓인 컴퓨터까지.

벽지는 흰색과 연한 하늘색의 간단한 조합이였다.

15분간 씻고 나와,들어온 문자나 카톡이 있나 확인했다.

[靖睍사극방(10)-새로운 메세지_115]

"응?"

평소에 조용하기로 유명한 사극방이 왜?

무슨 새로운 맴버라도 왔나,하면서 나는 그 방을 클릭했다.

그 곳에는 내눈을 사로잡는 한 메세지가 있었다.

[@이왕 죽을 거 다 털어놓울게요_오후 9:51]

사극방의 방장이,이런 메세지를 남겨놓은 것이였다.

횡급히 스크롤을 내리고 올리며 사건의 발단과 진행 과정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오늘까지 못 버티고 갈것 같은데.._오후 9:14]
[@전부터 생각하고 실행은 못 했던 건데..아프겠지..?_오후 9:16]
[@요즘 너무 힘들다..ㅎ..설하는 그런 생각하지 마..알겠지?_오후 9:18]
[@학업문제랑..좀..개인사나.._오후 9:21]
[전부터 하고싶었는데 참..용기가 없어서.._오후 9:23]
.
.
.
.
.
[@..끝났네_오후 9:30]

방장은....자살하려는 걸까?

말려야 하는데,말려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였다.

당환한지 어쩐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고,괴로움과 죄책감은....

어느 한 분이 방장을 말리고 있어,다 해결되겠지.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피곤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달콤한 잠으로 인해 방장의 자살 문제는 잊어버린 터였다.

그 다음 날.

집을 나갈 준비하던 시간에 습관처럼 항상 보던 뉴스를 틀었다.

[어제 밤 11시,한 학생이 15층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을....]

뭐라고...?

[평소 학업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 자살 동기라고 경찰은...]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뇌가 정지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백지장인 머릿속울 이끌고,한시간 동안 생각했다.

바보같은 나에게,방장에게 배드 엔딩을 선물해준 무심한 나에게.

내 일만 아니면 되.라는 이기적인 나에게.

취한 것처럼 풀린 눈동자가 창 밖의 참새를 응시했다.

중력을 무시하고,휙휙 날아다니는 참새.

그래...결심했다.

나는....

***

서울 강남의 어느 한 아파트,12층.
소방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14살 쯤으로 보이눈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녀에게 소리쳤다.

"이리오세요! 학생!"
"...."
"학생? 학생!"

소녀는 묵묵부답이였다.

소녀의 눈에 작은 눈물방울이 하나둘씩 맺히기 시작했다.

다 미워.

방과 후에 웃으며 한대 치고가는 일진들도,무관심한 부모님도,돈이라면 벌벌 떠는 담임선생님도,나를 태어나게 만든 이 세계도.

그냥 전부 사라지면 좋겠어.

소녀가 난간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소리치는 소방관 아저씨를 영혼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죄송해요,아저씨.'

소녀는 난간을 잡고,천천히 기어올랐다.

소방관은 소녀를 잡을려고 하였지만 한 박자 빠르게 소녀가 12층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런 소녀도 생존 본능이 남아있었는지,중력에 이끌려 떨어질 때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일초,눈 한번 깜빡일 사이에 절반이나 떨어진 소녀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때,누군가가 5층에서 창문을 깨고 뛰쳐나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등에는 여러가지 안전 장비와 로프를 매단 채로,위태한 모습으로 구세주라도 된 마냥 소녀를 끌어안았다.

중력 에너지를 분산시키기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듯,충격은 오지 않았다.

소녀를 구한 소방관은 소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죽으려 하지 말아줘."

4층,3층,2층,1층.

핑!

번지 점프라도 하는 것처럼 탄성에 의해 다시 튀어올라 지면에 조심스레 착지했다.

바로 밑에서 대기 중이던 구급차가 소녀를 실고 병원으로 깁긎히 출발했다.

구급차 안에서 간이 침대에 눕혀진 소녀의 눈에서,아까와는 다른 후회의 눈물이 아닌 무언인가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야,참새 뭐하는 거야?"

평소에 친한 동료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참새는 내 별명이다.

날래게 구조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리고...말이다.

나는,생명을 살리는 소방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