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1화



아까보다도 좀 더 영롱한 빛을 띄는 구슬은 충만한 요기를 품고 있다. 서화는 그것을 받아서 다시 복주머니에 넣었고, 복주머니는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거의 다 채운 모양이구나."

"네. 이제 내일이면 다 찰 거에요." 


나는 회장에게 물어보았다. 


"거기에 요력을 다 채우면 어떻게 되는데요?" 

"요력을 가득 채운 여우구슬은 요술진에 좋은 촉매가 돼." 

"네?"

 

물론 건전지에 전기를 충전하면 좋은 동력이 되겠죠.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라는 의미를 담아 시선을 주었더니, 회장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세열아, 요즘 세상이 많이 흉흉하지?"

"참으로 흉흉하죠. 밤에 산책하고 있다가 갑자기 잠들어 기억이 지워지는 일도 있다잖아요." 


하하, 요즘은 초등학생도 발화범인 세상이었죠? ...라고는 진짜 마음 여리신 초딩님이 옆에 앉아있으니까 말하진 말자. 내 대답을 들은 회장님은 [그러면]이라면서 그 초딩님을 내 앞에 세워 들이밀고,


"그런 흉흉한 세계에서 아이 혼자 돌아다니게 두는 건 너무하지?"

"사실 저도 아이에요. 12살." 

"괜찮아, 남자잖니."


라신다. 괜히 한번 딜 넣으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구나. 젠장 거짓말을 가불기로 받아치다니. 




입이 꽉 다물어진 나. 선배는 서화의 손에 뜯지않은 마들렌을 몇개 쥐어주며 손을 흔들고, 나에게는 배웅인사 대신 말했다.


"혹시 가서 레이나를 만나면 말을 전해줄래?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하루 정도는 세열이가 맡아줄 테니 쉬라고."

"네? 거기에 레이나 선배가 있어요? ...아니 잠깐 뒤에 뭐라"//"그럼, 우리 서화를 잘 부탁해------" 


------쾅. 문은 부드럽게 닫혔지만 왠지 나에게는 그런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멍하니 닫힌 문만 보고 있는 내 옆에는 서화가 멍하게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눈치챘다. 


"자, 그럼 갈까?"

"아 네... 네!"


그래 뭐 부탁정도야 들어줄 수 있지... 그래... 그렇게 체념하고 뒤를 도는 순간 문이 다시 열렸다. 


"...보수에요. 피로회복, 신체강화."


열린 문틈 사이로 작은 나무지팡이의 끝이 내 쪽을 향했다. 보랏빛 마법진이 그려져 나에게 쏘아지자 폭죽같은 빛무리와 함께 몸에 청량감이 도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법저항 때문에 실제로 효과는 반감됬지만 뭐 마법과 접한만큼 다시 신체능력이 상승했으니 그게 그거다. 




뭐 그건 좋은데... 끝?


"그, 그리고...?"

"...다녀오세요."


철컥. 문이 다시 닫혔다. 뭐지 방금껀 환각이었나. 몸에 도는 청량감을 보니 환각은 아닌데. 질 나쁜 학생회 개그인가. 


"...가요."

"그래."


이번에는 서화가 내 손을 이끌었다. 역시 어린아이는 적응력이 빠르구나.



===== ===== ===== =====



같은 서울 바깥이지만, 우리가 도착하는 북한산은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장소다. 하지만 그럼에도 뛰어가려고 하는 서화를 나는 전철역으로 끌고갔다. 문명의 이기란 좋지.


"오빠... 표를 바꿔주는 아저씨가 없어요!"

 

...문명이란... 


"너 그렇게 나이가 많았니? 표가 서울에서 없어진건 10년 전인데."

"네...? 하지만 할머니는..." //"...아 그렇군."


서화는 할머니에게서 지하철 타는 법을 들었건만, 노란 표 대신 1회용 교통카드로 바뀌어버린 세상에 막혔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설명에 따라 터치 스크린을 조작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 다른 이유도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은 해도 묻지는 않았다. 그냥 가는 곳을 물어보고, 노선도를 읽는 법을 다시 아르켜줄 뿐이었다. 아까 학교에서 이야기를 충분히 하기도 해서 서로의 대화는 이대로 끊겨졌다.


북쪽을 올라가는 방향의 전철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휑했다. 바깥을 볼 수 있다면 지루함이 좀 가시겠지만 지하철이라 그런 것도 없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서화도 금세 지루해졌는지, 아니면 교육을 잘 받았는지 얌전히 앉아만 있다. 


그리고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매년마다 우리는 여우구슬을 들고 여러군데 찾아가서 요력을 모아요."

"연례 행사 같은 거네."


당연하지만 아무 집 문이나 두들겨서 [요력좀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건 아닐 거다. 요력을 모을 수 있는 다른 요괴라든가, 아니면 그런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던가 한테 요력을 받는 그런 풍습일 것이다. 


"요력이 모인 여우구슬들은 저희가 사는 땅을 감추는 결계에 쓰여요."

"숨어살고 있구나, 여우요괴는."

"네."


요호라고도 불리는 여우 요괴는 때로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때로는 흉운과 재악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어느쪽도 이들이 숨어 사는 이유가 아닐 것이다. 


"인간들은 우리를 무서워하나요?"


그건 그저, 어린아이가 던진 순수한 의문이었다. 인간은 접해도 '인간사회'를 접해보지는 못해 그 갭을 모르고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아니요'라는 대답을 한다면, 아이는 더욱 더 바깥 세계에 대해 기대를 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기에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


...하지만 '네'라고는... 말하기가 또 힘들잖아? 고르고 골라도, 내가 내놓을 수 있을 만한 답은------




"학교, 다니고 싶어?"

"...!"


오히려 핵심을 찌르는 되물음 정도 뿐이다. 


"네...? 네, 아니, 그게... 저..."

"흐음. 나는 니가 우리 학교 학생회 쪽으로 요력 모으기를 온게 우연이 아닌 것 같아서 해본 말인데."//"흐엣!"


오우. 순수한 어린아이라 그런지 놀라는 폼도 굉장히 만화틱하네. 어쨌거나 이야기의 첫 마디는 잘 풀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학교라... 다닐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다닌다고 해서 니가 기대하고 있는 학교생활은 보장 못하겠네."

"으으..."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둔갑술이 풀리지 않는 것이 필수일 거야. 그리고 인간의 신분을 최소한으로 갖춰야겠지. 그럼에도 학교 차원의 도움이 없으면 여러가지 난관이 많을 거야."

"흐에에..."




서화의 눈이 핑글핑글 돌아갈 만큼 말을 빠르게, 어렵게 나열해주니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만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게 정상. 여기서 나는 한번 숨을 멈추고, 이렇게 결론내렸다. 


"뭐, 적어도 마법사들이 있는 사립 학교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마법사도 앞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학교를 다니는 곳이라면, 그것도 여러명이 있다면, 최소한 학교가 뒤를 봐준다는 예측은 가능하다. 서화는 내가 낸 결론을 곱씹듯 중얼거렸다. 


"...그러면! 오빠네 학교는..."

"우리학교 고등학교야... 그것도 공부 엄청 잘해야 들어갈까 말까 한..."

"저 머리 좋아요!"

"살아보니 머리 좋은거랑 공부 잘하는거랑은 별개더라."


뭐 내 성적이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여기 학교에 들어가는 게 어려운건 틀린 말이 아니다. 머리가 평범하다면 부속 중학교도 힘들지 않을까? [반드시 들어가겠어!]라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서화에게는 좀 미안하네.


 


------라고, 정말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요괴의 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까. 




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