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돌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계속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저 녀석이 원하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는 녹아 버리니까. 아마도 내버려 두면 그렇게 계속 달려 가겠지. 그렇게 조금 더 달려가게 되면, 아마 내 눈에서는 보이지 않게 될 듯 싶었다. 나는 미술에는 별로 재능이 없거든. 무슨 이야기냐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도화지에 어떤 하얀 물체가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라. 하얀 색에서 조금 다른 하얀 색을 구별해 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금이 그렇다. 그나마 바로 옆에 나비 녀석이 같이 뛰고 있는지라, 다행히 어디 있는지 놓치지는 않을 듯 싶었다.

 

 “뛰지 마, 임마. 넘어져.”


 리돌은 내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사방팔방으로 눈을 잡으러 뛰어다닐 뿐이었다. 물론 나도 별로 말을 들으리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미 억양 자체가 걱정이라고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으니. 그래, 그렇게 뛰어 다녀라. 어차피 너 그렇게 있으라고 데리고 나온 거니까. 

 나는 옆에 있는 벤치 위에, 앉을 자리만큼만을 손으로 탁탁 털어내었다. 손으로 쓸어낸 자리엔 원래 아무 것도 없었다는 듯,  녹은 흔적 하나 없이 치워졌다. 적당히 치워내고서는, 벤치에 앉았다. 젖은 자국은 없었지만, 앉자마자 엉덩이에는 한기가 느껴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을 꼿꼿이 버티고 설수도 없다는 듯이.  

 하얗고 차가운 무언가를 뿌려대는 회색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보다도 변화가 없었다. 맑은 날에는 그래도 태양이라는 한 점이 보이는데, 눈 오는 날에는 그런 것조차 보이지 않으니. 바람 한 점 없이 그대로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나는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리돌은 내 침대에 누워 있다. 요새는 TV보는 것도 질린 듯, 내 스마트폰을 그렇게 들여다 보고 있는다. 당연히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지는 못하는 듯 싶다 – 이건 전적으로 추측이다. 이 녀석의 기술이라면 홍채로 글자를 인식해서 분석할 수도 있을 것 같기에 -   리돌은 스마트폰으로 그저 TV를 보듯이, 스트리밍 동영상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언제 또 내가 폰 쓰는 걸 보며 어깨 너머로 익혔는지, 달라고 해서 한 번 건네줘 보았더니 그대로 동영상을 트는 게 아닌가. 나야 뭐, 뭐라도 하면서 공부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좋으니 일단 건네어 주긴 하였지만. 

 나한테도 좋은 일이긴 하다. 공부할 때 괜히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일이 줄어들었으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주도권을 리돌에게 넘겼다. 


 한 명은 고시공부, 한 명은 인생공부(?)를 하며 그렇게 서로의 시간은 조용히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그녀의 가신이었다.


 “ ...옵니다.”


 귀마개를 뚫고 나비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 온다. 이 녀석은 목소리가 중후한건 둘째치고, 성량이 장난이 아니라 조금만 뭐라고 말해도 귀에 쏙쏙 박히는 특징이 있다. 

 나는 귀마개를 빼고 뒤를 돌아 보았다. 어느 새 일어나 앉은 리돌의 품 안에는, 아니나 다를까 나비가 안겨 있었다. 

 

 “뭐라고?”


 “네 놈한테 이야기 한 게 아니다. 인간.”


 저 건방진 고양이 놈. 나비탕을 끓여 버릴라.  


 “민재, 질문이 있습니다.”


 “응?”


 “하늘에서 눈이 어떻게 떨어집니까?”


 얘가 인터넷을 시작하더니 이젠 과학까지 신경쓰는 건가? 어... 대기중의 수증기가 상승하였다가 추운 공기에 응결하여 구름이 생기고 그 구름이 무거워져서 내리는 비가 얼어서 눈이 된다는 걸... 설명하면 알아 들을까?

 내가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를 잠시 고민하고 있던 도중에도, 리돌의 질문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로부터의 나비가 수백만의 눈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죽었습니까?”


 “뭐?”


 “주, 주군?”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비도 방금 전에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귀를 의심하는 양, 입을 쩍 벌리고서는 멍하니 리돌을 쳐다 보았다. 

 리돌은 무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한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잔인하고 야만적인 생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그들의 죽음을 지켜 보는 것은 관례입니다? 적어도 달에서 시체는 보이지 않는 물에 빠지게 됩니다.”


 “주군. 제 설명에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듯 합니다만... 케엑!”

 

 리돌은 설명을 이어가려는 나비를 꽈악 끌어 안았다. 아마도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두려움에 저항하려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그 덕에 불쌍한 고양이 하나는 말을 하다 말고 질식할 지경에 처해 버렸다.  어쨌든, 말을 듣다 보니 지금 이게 어디서 잘못된 건지 감이 온다. 나는 리돌의 팔을 조금 건드려서 나비의 숨통을 조금 풀어주고서는 - 헥, 헥, 고맙다, 인간. -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기 시작했다.


 “야, 리돌. 하늘에서 내리는 건 사람의 눈이 아니야. 눈은, 그냥 빗방울이 얼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야. 너 전에 비 봤지? 하늘에서 물 떨어지는거. 그거 같은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아, 니가 지구에서 겨울을 못 지내봐서 눈이 뭔지 아예 모르겠구나.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한 거고 말이야. 그렇지?”


 “하지만 나비가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얘 좀 보게. 이제는 떠넘기기까지.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것까지, 이젠 아예 발뺌이 수준급이 되셨네 그랴. 나는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나비에게 말문을 돌렸다.


 “야, 도대체 너가 뭐라고 설명했길래 애가 말을 이렇게 알아들은 거야?”


 나비는 심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주군에게 그저 지금 밖에 눈이 오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주군이 그걸 오해하셨을 뿐이고.”


 “그래... 응? 눈이 온다고?”


 나비의 말을 듣고서는, 나는 화급히 커튼을 걷어 보았다. 이 녀석의 말이 맞다면, 지금 첫눈이 내리고 있다는 건데. 근데 지금은 11월 초인데?

 커튼을 걷어 바라본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 백지가 펼쳐져 있었다. 나의 옥탑방을 식탁 삼아 하얀 식탁보를 씌운 듯이, 세상이라는 주방은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방금 전에 이 광경을 목도하고 온 길고양이를 제외하고, 지구 남자와 달나라 여자는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해의 첫눈은... 대박이로구나. 보통 눈이 처음 내릴 즈음 해서는 그렇게 춥지 않기 때문에, 눈이 와도 그냥 적당히 분위기만 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금은 전혀 다르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듯 하였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긴팔 하나만 둘러도 살짝 더운 수준이었지만 요 며칠간 갑자기 몰아친 한파로, 급하게 점퍼를 꺼냈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아마도, 옆을 돌아보면 깜짝 놀라 있는 리돌의 표정이 보일 것이다. 분명 눈이라는 것은 달에는 없는 기상현상일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이것이 이 녀석에게는 생에 첫 눈일테니까. 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리돌의 표정을 상상하며, 그녀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 저, 나는, 저기. 야, 난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가 지금 울면, 안... 되는거 아냐? 응?

 나는 리돌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 보았다. 마치 손을 대면 터져 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분위기를 환기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기에.


 “야, 야... 리돌. 너 왜... 우냐?”


 리돌은 흘러 내리는 눈물을 슥 팔목으로 훔쳐 내고서는 아직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달입니다.”


 “응?”


 “내가 지구에 온 지 수십 번이나 아버지께 편지를 썼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막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 아버지한테 선물입니다. 내 아버지의 대답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달을 접고 그것을 지구로 보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상현상입니다, 아가씨' 라는 대답을 어딘가 비집고 넣어 줘야 되는데, 그럴 틈이 보이지 않는다. 리돌의 말은 전혀 끊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차 있던 눈망울 안에는 갈수록 알 수 없는 희열이 차오르고 있었다.


 “들어 봐요, 이제 우리는 지구가 너무 희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아버지가 곧 올거야. 우리 아버지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지막에는 무언가 대사를 굉장히 강조하고 싶었던 듯 하였다. 그 박자에 맞추어 마치 뮤지컬 절정부를 부르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을 보면. 리돌은 감격에 찬 듯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창 밖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대로 대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신발도 신지 않고,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는 마냥.


 “야! 리돌!”


 지금 쟤가 어쩌려고? 바깥이 지금 저렇게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데,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발로 뛰어나가면 감기 걸리기 딱 좋다. 그것보다, 사고라는 놈은 저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더 잘 찾아온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몇 초도 안 되어 넘어지고 말 것이다.

 다행히 내 걱정은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리돌은 생각보다 더욱 이성적인 여자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본능에 충실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수 있겠다. 단 10초 만에, 리돌은 대한민국의 한파에 백기를 흔들고 말았다. 나가던 속도 그대로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하얀 소녀를 보면서, 나는 아까 터트려야 했던 헛웃음을 지었다.  눈처럼 하얗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서 들어온 리돌은, 머리 위에 있는 것을 털지도 않고서는 그대로 이불 안으로 직행했다. 


 “야! 발은 털고 들어가!”


 내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돌은 이불 안에서 벌벌 떨며 말했다. 


 “추위,추위,추위.”


 “그러니까 옷은 입고 나가야 될 거 아냐? 나, 참.”


 “주군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인간. 이것 또한 왕의 미덕. 주군께서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스스로의 몸을 희생하사 체험하신 것이다. 그렇게 앞장서는 마음 없이 어찌 만인지상에 설 수 있겠느냐. 참으로 경배할만한 행동력이십니다, 주군.”


 나비는 어느 새 이불 안에 리돌과 같이 들어가, 이불 밖으로 머리만 쏙 내민 채 나에게 근엄하게 일갈했다. 저 하수인 놈은 뭘 잘했다고 저런 말을 하는겨? 그 왜,  TV에서 보다보면 북쪽 방송에서 “위대하신 영도자 어쩌구” 하는 식으로 시작하는 뉘우스에서 이런 말들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왜, 솔방울로 수류탄도... 만들 수 있겠군. 축지법도 가능할 것 같고.

 내가 망상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던 도중, 리돌은 몸에 이불을 둘둘 감고서는 침대에 다시 올라 앉았다. 그 10초의 외출로, 리돌은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은 듯해 보였다. 아까는 파랬다가 지금은 빨개진 얼굴, 훌쩍이는 콧물, 그리고 충혈된 두 눈. 아니, 얼마나 나갔다 왔다고 벌써 감기에? 

 자신이 왜 그렇게 된 줄 모르겠다는 듯, 리돌은 계속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아마 이 녀석한테는 겨울도 처음, 감기도 처음이겠지. 리돌은 자신에게서 흘러 내리는 무언가를 수습해 보려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코를 훌쩍이는 채로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듯 번역기는 그 주인이 코를 훌쩍이든 말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여 깔끔한 발음을 자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