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을 나서자 누군가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춥다는 혼잣말을 터트렸다. 아닌 게 아니라 바람이 사뭇 차가운 이빨을 목덜미에 들이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럴 거라는 예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두의 옷차림이 그닥 두텁지 않다.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서는 조금이라도 열을 내려는 듯, 걸음을 빠르게 하기 시작했다.   

 발길을 서두르는 사람들 속에 오로지 나만 남겨져 있는 듯 했다. 아니, 내가 다른 이들을 신경쓰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백야를 볼 수 있는 곳. 나의 추억은 북쪽에 묻혀 있었다. 급작스런 추위는 그 곳을 떠올리게 했다. 즐거웠던 기억들, 같이 지낸 사람들이 차례로 머릿 속에 풍선처럼 떠올랐다. 쌓여 가는 추억들로 살풋 입가로 미소가 지어지려 할 때쯤에,

 네가 떠올랐다.

 떠올렸던 추억들은 모두 너의 색으로 물들어 심장에서 터져 나왔다.  핏발과 같은 너의 색깔은 나의 눈까지 적셔 들어왔다. 꾸물거리는 저 하늘은 너와 함께 있던 그 날의 먹구름으로, 스치고 지나간 모르는 이의 단발머리 안에는 너의 얼굴으로 보였다.  모든 곳에서 부풀어 오르는 너의 모습이 내 안에서 터져 나오려던 그 때, 

 그 노래가 떠올랐다.

 귀소본능에 충실한 두 발은 어느 새 나를 집으로 데려왔다. 황급히 기타를 찾았다. 케이스에 이빨처럼 맞물린 지퍼는 끝까지 침묵을 지키려는 듯 쉽게 열리지 않는다. 억지로 잡아 뜯듯이 열고 지퍼를 끝까지 내리자, 아직 나무의 색이 바래지 않은 헤드부분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무로 된 부분만 멀쩡할 뿐, 줄이 감겨있는 부위에는 감긴 눈에 어린 듯한 속눈썹 모양의 녹자욱들이 선명했다. 한숨을 쉬며 기타를 케이스에서 한 번에 뽑아 올렸다. 케이스 안팎으로 기다림을 증명하듯이 묻어있던 먼지들이 사방팔방으로 튀겨 나갔다. 간단하게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서는, 녹슨 현에서 D코드를 짚어 노래를 시작했다.

 들은 사람도 없고, 이제는 들어줄 사람도 없는 그 노래를, 내 안에서 나를 태우는 너를, 그 안에서 너를 끌어 안을 나를 달랠 그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