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67년.

5월 21일.

AM 6:14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래도 새벽마다 작동하는 

쓰레기 밸브일 것이다.


오늘은 바코드 검사일이다.


2050년부터 쉘(인공지능)에 대한 법이 개정되면서

출생한 모든 인간들은 목 뒤에 바코드라는 

일종의 표식을 새겨야 했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의 쉘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코드 G50124335.


내 바코드 번호다. 옛날 사람들은

물건에만 쓰던 바코드를 왜 인간에게 부여하냐고

시위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이미 옛일이다.

이제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침을 먹고 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윙 트럭(드론이 합쳐진 트럭)

을 이용한 푸드트럭들이 날아다니고,

여러 부식된 호스들이 건물에 낡은 못으로 간신히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익숙한 건 

흐린 하늘과 내 입에 있는 마스크다.

그렇다. 

이곳은 최빈민층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고 

양부모 손에 키워졌다. 어렸을 적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아서 친부모님을 모른다.

재산은 하루하루 벌어먹는 형편이다.


AM 8:19


테스트장에 걸어서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봐요! 새치기하지 마요!"

아무래도 빈민층이다 보니 시간이 귀하다.

내 차례가 되자 위에서 호스 같은 것이 나와

내 번호를 인식한다.

     <검사 완료. G50124335 업데이트.>

호스 로봇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좋은 목소리, 

기계 티 나지 않는 목소리로 내 번호를 읽었다.

어떤 길쭉한 가방을 가진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이 날 계속 쳐다봤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AM 9:36


[오늘 시세는 밀 1g 당 30유닛 입니다.]

빈민층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통계부의 

형광 색 전광판에는 매일매일 그날의 시세가 뜬다.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빈민층의 시세는 밀로 

값을 매긴다. 또, 세계는 화폐의 통일을 이뤄

각각의 돈 종류에서 '유닛'라는 가상화폐로 

통일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28 유닛이였는데

요즘은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AM 10:03


사이렌이 울린다.

서쪽에서 엄청난 양의 황사가 밀려온다.

집까지 가서 피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밀려와서

옆에 있는 낡은 식자재 마트에 들어갔다.

         

{아이디 마트}라고 써져있었다.

  "누구 계시나요?"

황사가 창문을 두들기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나는 말했다.

끼익… 덜컹…

가게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빨간 레이저포인터가 황사 속을 가로질러

가게 안으로 비춰진 순간,

스나이퍼의 총알이 날아와 진열대를 부쉈다.

나는 벙커 버튼이 있는 계산대로 달려가

비상 사이렌을 울리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탕!'


5월 ??일

PM ??:??


눈앞이 깜깜하다. 안대를 쓰지는 않았지만

눈을 그냥 감았을 때와 다른 어둠이 가리고 있다.

삐--삑!

10분 쯤 지나자, 기계음과 함께

아주 밝은 빛이 내 눈을 찔렀다.

나는 

 

'뭐,뭐야! 이렇게 밝은 빛은… 생애 처음이야!'


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눈이 빛에 적응해서 사물이 뚜렷해지자,

내 바로 눈앞에는 녹슨 검정색 총구가 

드리워져 있었다.

총을 겨누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테스트장의 그 가면 쓴 사람이었다.

 

"너, 누구야."


그 사람이 갈라진 목소리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먼저 낚아채갔다.

 

"코드번호의 3번째 자리수부터 7번째까지

 모두 더했을 때의 첫째 자리수가 0 인 녀석은

 내 생애 처음이야. 하지만 난 너가 누군지

 추측할 수 있어. 넌 부유층에서 도망쳐 내려온

 범죄자야. 맞지?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이상한 코드번호는 

 가질 수 없거든."


그 사람이 총구를 서서히 내리며 말했다.

 

'범죄자? 내가? 부유층?'


여러 생각이 섞이며 머리가 혼란해졌다.

 

"빈민층인 너 수준에 맞게 설명해주면.

 애초에 부유층들의 정치가들은

 쉘과 인간을 구분하려고 

 코드번호를 매긴 게 아냐.

 그건 바로 복제인간 때문이지.

 생각해 봐. 너랑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너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근데, 3번째 자리수부터 7번째까지

 모두 더했을 때의 첫째 자리수가 0 인

 사람은 세상에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고,

 심지어 너와 같은 코드번호를 부여받을 수도

 있지!"


"그… 그러니까 니 말은 나랑 똑같은 사람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근데. 그래서? 내가 나쁠게 있나?

 어차피 우린 빈민층이라 더 이상 잃을 

 것들도 없다고…"


내가 내 비참한 심정을 아는 상황이니

더 비참하다.


 "멍청아. 끔찍한 감옥에서 눌려살고 싶어?

 이 썩어빠진 세상에는 부유층의

 귀족들을 암살하려는 놈들이 많아.

 근데 니 코드번호를 가지고 암살하는

 암살자가 만약 발각당하면,

 오히려 너가 체포당하는 거지."


잠깐. 내 뇌리를 지나가는 생각이

등골을 타고 싸늘하게 식어내렸다.


 '잠시만. 이 사람. 

 …왜 나를 구해주려는 거지?

 …왜 나를 납치하고 이런 나를 위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내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다.

그제야 그 사람의 양손에 들려 있던

바코드 복제기와 녹슨 칼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은 나를 이용하려던 암살자였던 것이다!


난 필사적으로 힘을 써서 내가 앉아있던 

의자 뒤쪽의 열린 문으로 뛰쳐나갔다.


5월 23일 

PM 1:34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근데, 아무래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전속력으로 뛰어서 집에 도착했는데,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어디 갔다 와?"


가면 쓴 사람은 섬뜩한 분위기로 말했다.

나는 겁이 나 말을 더듬었다.


 "너… 너 누구야.

 누군데 날 쫓는거야…"


 "나?"


그 사람이 가면을 벗는다.


 "난. 너야."


믿을 수 없었다. 나와 완벽히 같은 존재.

심지어 얼굴에 있는 어릴 적 상처까지

같았다.


 "널 죽이고 부유층에서 

 모든 지배자들을 죽이겠어.

 협동하면 얼마나 좋아?

 근데 넌 기회를 져버렸지."


 "잠깐… 난 너와 힘을 합할 생각이 있어.

 내…가 널 도와줄게.."


 "날 버리고 도망친 놈에게 믿음을

 바라다니. 이거야말로 미친 짓이군."


 "아니야. 날 믿어."

 


 "근데 너. 내가 조사한 바로는 양부모랑

 같이 산다고 했고. 양부모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분들은 어디 계시지?"


 …! 순간적으로 오싹했다.

실제로 내 양부모는 집 밖에 나갔던 기억이

없다. 근데. 지금 집에 양부모가 없었다.


 '뭐지?'


내 집의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내 방과 내 양부모의 안방은 모두 

총알자국으로 가득했다.


 "나 같은 첩자라면 모를까.

 총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모두 부유층이야.

 이렇게 된 거 너도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게 되었군."


내가 나한테 말하는 걸 계속 보니

정신이 나갈 판이다.


 “좋아. 그럼 나와 힘을 합치자고.”


PM 6:44


내 클론(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의 

윙 트럭을 타고 빈민층의 끝구역.

오염구역으로 갔다.


 "여기는 토양이 오염되다 못해

 대기까지 오염된 곳이야. 

 방독면 없으면 폐가 녹아내릴 거야"


클론은 내게 검정색의 무늬를 가지고 있는

군사용 방독면을 건넸다.

그리고 우리는 오염구역 변두리에 있는 

낡은 태양열 발전기 빌딩 밑으로 들어갔다.


 "뭐야. 태양열 발전기가 철거되지

 않았다고? 정부의 친환경 사업은

 완전히 실패했잖아?

 게다가 지금은 쌓인 스모그 때문에

 태양빛도 안 들어오잖아"


내가 방독면을 벗으며 물었다.


 "근데 여기는 다르지~~"


온갖 파이프들이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밑에는 기름통들과 화로들로 가득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콜록.! 켁!"


목에 가시가 박힌 듯하다.

클론은 먼지 쌓인 구형 돌림판식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살상무기들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단종된 화염방사기까지 있었다.


 "자. 너의 게이트 프로필이야."


클론은 총을 챙기고 내게 초록색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부유층에 가려면 자신이 부유층만큼

일정량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이트카드, 게이트 프로필이 필요했다.

나한테는 Glock 7k, M14(총기류)가 주어졌다. 


5월 24일

AM 9:00


 “자, 이걸로 하자.”


클론(또다른 나)은 드론 카에 카드를 꽂더니

강제로 문을 열고 탔다.

우리는 그대로 게이트 14로 갔다.

(부유층으로 통하는 게이트는 총 20개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식히고 

게이트 담당경비 쉘에게 카드를 주었다.


[로딩. 잠시만 기다려주세요.----통과.]


 '휴…'


처음 보는 풍경이였다. 

번쩍거리는 전광판, 길거리에서 연출되는

홀로그램 광고들, 적어도 200층은 넘는

초고층 빌딩들. 모두 낯선 풍경이였다.


 "너 이런 거 처음이지?

 굉장히 신기할 거야.

 우리가 일단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놈은 바로 이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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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yeongsuk Kim(김영석)

Address: Rich area tree street 13

Age: 63

Job: loan shark(사채업자 및 조직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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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은 네비게이션에 이 주소를 치더니

곧장 그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20분 쯤 지났을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목적지는 아주 높은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클론은 나를 끌고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갔다. 


 “뭐하는…”


 “쉿!”


다시 우리가 있던 쪽을 보니 감시용 쉘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접근하는 건 어렵겠어.

 하긴 암살자가 엘리베이터 타고 

 가는 건 너무 정직하잖아?”


클론은 화장실 쪽으로 가더니 화장실 천장에

뚫려져 있는 환풍구를 열었다.


 “이 빌딩의 유일한 환풍구야.

 여기로 가는 게 편할 거야.”


환풍구는 엄청나게 빠르게 돌아가는 

프로펠러에 가려져 있었다. 프로펠러의 

날들에는 굳은 피가 붙어있었다.


 “다른 놈들도 여길 통과하려다 

 실패하고 말았군. 허나 우리는 달라.

 이 프로펠러를 멈출 거거든.”


 “어떻게 멈출 생각이지?”


그는 챙겨온 가방에서 노트북과 

USB 메모리얼칩을 꺼냈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켜서 해킹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구형 노트북을 가지고

 해킹을 하는거야? 이왕 할 거면 

 좋은 컴퓨터로 빠르게 하지…”


 “최신형 노트북은 사물인터넷 시스템 때문에

 쉽게 추적당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있지. 효율성이 내 원칙이거든.”


프로펠러의 도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멈춰섰다.


 “멈춘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2분이야. 3개의 프로펠러를

 지나야 하니 서두르자.”


우리는 기어서 3개의 프로펠러를 간신히

6초 차이로 통과했다.

환풍구 바닥을 고정하는 나사못이 삐걱댔다.

녹슬어 있는 철판을 만지며 지나가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어느 순간, 밑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 양부모 건은 어떻게 되었나?”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긴 그런 녀석이 양자니까 그렇겠지.”


나는 ‘그 녀석’이 나라는 것을 바로 눈치채고

하마터면 바로 총을 쏠 뻔했다. 

클론은 침착하게 환풍구의 나사를 풀었다.


 “쉿. 조용히 해봐”


덜컹!

구멍이 뚫리자 우리는 바로 내려가서 총구를 

조준했다.

두목인 김영석은 너무 깜짝 놀라서 손을

벌벌 떨었다. 


 “뭐야……! 너… 너희 둘이 같잖아!

 그리고 너는 내가 지켜주던 그 양…”


탕! 

김영석이 죽었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군.”


클론이 속삭였다.


 “자, 이제 가자.”


나는 살짝 의심스러웠지만 지나쳤다.


PM 11:24


그날, 클론과 나는 도시 가장자리의 

한 낡은 폐가 근처에 차를 세우고 

밤을 지새웠다.


 “넌 어떻게 생겨났어?”


 “내가 어떻게 태어났냐고?

 난 어릴적 기억이 없어.

 오히려 실험실의 불빛만이 

 내 기억의 일부에서 돌고 돌지”

 

그는 머리가 아픈 듯 했다.


 “난 좀 쉬겠어.”


타닥거리는 모닥불 소리는 

30년 전에 미래가 디스토피아일 

것이라고 논란이 되었던 

그 때의 아날로그 감성을 충분히 돋아주었다.

그 때 세상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눈이 서서히 감긴다.


5월 25일

AM 4:56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것 같았다.

하늘은 황사로 가득했지만 느낌이 그랬다.

어디선가 덜덜거리는 모터 소리가 난다.

그 때, 누군가의 손이 나를 덮쳐 

끌고 갔다.

나는 소리를 지르려 했다.


 “쉿! 이 소리 안 들려?”


클론이였다.


 “부유층 경비대야.

 아마도 우리가 불법 침입한 

 걸 알아냈나 보네.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


그의 말대로 하늘에 윙윙거리는 드론 무리가

있고, 윙 트럭 한 대도 있었다.

트럭의 앞쪽에는 [Security Shell]

이라고 써져 있었다.


경비대가 떠나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

짐을 쌌다.


 “다음 타겟은 이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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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Jason paul(제이슨 폴)

Address: Rich area sto street 98(추정)

Age: ???

Jo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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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타겟은 정보가 별로 없네.”


 “왜냐면 이 놈은 밀입국한 외국 노동자거든.”


클론은 처음 타겟을 처리하러 갈 때처럼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지 않았다.

마치 익숙한 길을 가듯이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차를 멈춰섰다.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