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네요. 정말. 올 때까지만 해도 안 믿겼는데, 여기 의자에 앉고 나니까,”


 라고 말하고 잠시 대화의 맥이 끊겼다. 성희 씨와 나 사이에 반찬과 찌개 국물이 빼곡히 올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셋팅이 끝나고,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정말 의외네요.”


 “뭐가요?”


 “성희 씨 모델이라면서요. 모델 분들 막 이렇게 좋은 거 먹으러 다니고 많이 하셔서, 게다가 여기 강남인데, 뭔가 더 고급진 메뉴 고르실 줄 알았어요.”


 입 밖으로 내뱉고 있지만, 알고 있다. 사실 내가 말하고 있은 건 모두 그냥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편견이다. '성희 씨 같이 예쁜 사람이라면 이럴 것이다', '모델들은 좋은 것만 먹을 거다', '강남에는 좋은 집들만 있다' 같은 생각 모두. 알면서도 내가 되묻는 이유는, 괜히 확인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희 씨가 어떤 사람인지.

 성희 씨는 내 마음 속을 읽은 듯이, 웃으며 숟가락을 들며 말했다.


 “편견이에요, 그런 건.”


 “아, 예. 그렇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기에 그닥 머쓱해하지는 않았다. 성희 씨는 자신의 답변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다들 그렇게 보시는 것 같아요. 제 동료들만 보아도, 민재 씨 말이 그렇게 틀리지는 않아요. 소속사에서 가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 보면,  지금 있는 남자친구가 어떤 차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가방을 사 줬는지로 그렇게 자랑을 해요. 물론 그 이상으로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 아 저 사람은 저렇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렇게 이야기하며 성희 씨는 뚜껑을 열어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찌개를 국자로 섞었다. 구수한 향기가 눅진하게 주위를 감돌기 시작했다. 성희 씨는 라면을 국자로 퍼다 내 앞에,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아 두었다. ...조금 성급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라면이 누가 보기에도 안 익었거든. 


 “하지만 전 그냥, 그런 데에 관심이 없어요. 남자친구도 없고.”


 성희 씨는 자신의 말한 내용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덜 익은 라면을 한 젓가락 가득 집어 삼키는 것으로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성희 씨한테 대수롭지 않은 그 내용은, 나한테는 꽤나 궁금한 정보였다.

 나는 성희 씨가 면발을 삼키는 것을 기다려 되물었다.

 

 “성희 씨, 남자친구 없어요?”


 “네. 여기 서울에 온 다음에는, 지금까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성희 씨는 날 보며 살짝 미소지었다. 살풋 의미심장하게 줄인 말을 걸어 둔 입꼬리는, '그래서?' 라고 나에게 되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표정에 답하듯, 무심코 말을 이어 나갔다.


 “와, 성희 씨 같은 미인이 애인이 없다니. 생각도 못했는데요.”


 “지금은 남자친구를 사귈 때가 아니라서요.”


 “에이, 남자친구를 만드는 데 때가 어디 있어요.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사람 마음 맞으면 데려가는 거라고 했어요. 물론 제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말하는 내 자신이 씁쓸해진다. 방금 한 말은 우리 어머니가 내게 한 말이다. 이게 28년 모태솔로가 입 밖에 내뱉을 말인가. 설득의 기본은 무어라도 알고 나서 얘기를 하던가 말던가 하는 거다. 방금 한 말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되는 대로 내뱉은 것이다. 그래서 말하다 말고 자기 존재를 부정한 거겠지만.


 “왜요? 왜 그게 민재 씨가 할 말이 아니에요. 민재 씨가 어디가 어때서.”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희 씨는 다시 또 사람잡는 그 미소를 내게 던졌다. 어우, 위험해. 지금 잠깐 또 마음이 붕 떴다. 하도 자주 봐서 익숙해 졌기에 망정이지, 그 처음 봤을 때 이랬다면 그냥 바로 사랑을 고백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숙여 숟가락으로 국물을 홀짝였다. 표정이 지워질 때 까지, 깨작깨작.

 그리고, 성희 씨가 뒤에 이어서 한 말에, 나는 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


 “말 나온 김에, 그럼 나 민재 씨 데려가도 되요? 눈 앞에 있는, 마음 맞을 사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난  고개를 숙인 채로 밥만 세 숟가락 넘게 입으로 구겨 넣었다. 목이 메이려고 할 때 쯤에서야, 나는 정신을 차려 되물을 수 있었다.

 

 “서, 성희 씨?!”


 “후후, 농담이에요. 민재 씨는 리돌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진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이 왔다 갔다 한다. 아까까지 어쩔 줄 몰라하던 내 얼굴은 급속도로 굳어 갔다. 그리고 나오는 목소리도, 얼굴 만큼이나 딱딱해졌다. 


 “저기, 제가 지금 사정이 있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만, 그 녀석하고는 절대로 특별한 관계가 아닙니다. 절.대.로.”


 나는 '절대로' 라는 말에 엄청난 강세를 주어서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성희 씨만은 그런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성희 씨는 그다지 괘념치 않는다는 듯, 국자로 건더기를 퍼내며 말했다.


 “그래요.”


 왠지 끝맺음이 이상하다?  보통 이런 타이밍이면 질문이 나와야 될 것 같은데, 성희 씨는 너무도 차분하게 그대로 말을 끊었다. 마치 원래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듯이. 나하고 리돌하고 같이 사는 데서, 뭐 별다른 궁금한 점도 없다는 건가? 

 어제 공원에서 잠시 보류해 두었던 위화감이란 녀석이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어제의 일도 있어서 딱히 직접적으로 더 캐묻기는 그렇지만, 분명히 무언가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성희 씨도 그 뒤로는 더 길게 말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남겨진 시간은 식사로 종결되었다. 사소한 잡담이 오고 갔지만, 무언가 비중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무언가를 숨기려 하는 것처럼.


 

 “잘 먹었습니다, 민재 씨.”


 “아유, 뭘요. 제가 잘 먹었죠.”


  성희 씨는 나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였고, 나도 거기에 유럽신사 처럼 과장된 배꼽인사로 답하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성희 씨는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식당 안에서 약간 어색해 졌던 분위기가 조금 완화 된 느낌이었다. 

 이 이후에 다른 스케줄은 잡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어딜 갈지는 선택을 해야 겠지? 자, 생각해보자. 보통 이런 흐름이면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초조하게 주변 상가들을 둘러보았다. 허, 나에게 이성을 만날 때의 지식은, 모두 광활한 인터넷 세상에서 돌아 다니는 글들로 배운 것들 뿐이다. 덕분에, 이런 경우에 적합한 대처법을 아직까지 실제로 써먹어 본 적이 없다. 보통 이렇게 한 다음에 카페에 가던가? 그런데 그건 선이나 소개팅을 할 때 그렇게 하는 거잖아. 성희 씨랑은 그저 같은 건물에 사는 사이일 뿐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 그러니까 더욱 더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어쨌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민재 씨? 무슨 생각 하세요?”


 “네, 네?!”


 ...아무래도 나란 놈은 연애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식사하고 뭘 할지 고민하는데 이렇게 한오백년 넘게 걸리면 어쩌자는 거냐. 그제서야 돌아 본 성희 씨의 얼굴에는 역시나 의구심이 가득했다. 눈 앞에 있는 이 놈팽이가 도대체 자기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궁금하긴 하시겠지.

 나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성희 씨에게 물었다.


 “성희 씨, 어디 가실래요?”


 “음... 민재 씨 괜찮으시다면 커피나 한 잔 하실래요? 이건 제가 살게요.”


 결국 이런 거였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어도 딱히 틀린 대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틀린 부분은 그저 '너무 오래 생각했다는 것', 그 하나였다.

 나는 힘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말을 내뱉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차, 이게 아니지. 지금 성희 씨가 오늘 나한테 해 준게 얼만데, 이걸 뭘 좋다고 얻어 먹으려고 하는 거냐. 나는 퍼뜩 손사래를 치며 성희 씨를 만류했다.


 “아, 아니에요, 성희 씨! 커피 드시고 싶으시면 제가 사 드릴게요! 성희 씨가 지금 뭘 더 사실려고 그러세요! 오늘은 그냥 가만히 제가 사준 거나 드시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왠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나의 현찰 탄창이라도 손에 쥐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을까 하여. 

 그런데 없다.

 있어야 할 곳에, 내 지갑이, 

 없다.

 뭐야, 아까 계산할 때 두고 나왔나?!

 나는 성희 씨에게 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를 째지는 목소리로 외치며 다시 식당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성희 씨! 잠시만 여기 계세요. 물건 두고 온게 있어서, 갖고 올게요오!”


  

  다행히 지갑은 카운터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 그리고 헐떡이는 날숨을 몰아 쉬었다. 진짜 운동 좀 해야 겠다. 4층을 화급히 뛰어 올라 왔더니, 군대 빼고 일평생 운동 안 한 심장은 임종을 고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기둥을 부여잡고 잠시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창가에서 아래가 그대로 보이기에, 성희 씨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 눈으로 좀 봐 두고 싶어서였다. 일단 숨도 좀 돌려야 겠고. 

 그런데... 뭐야, 저건? 

 성희 씨는 전봇대에 기대고 있었다. 그거야 뭐 기다리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까는 없었던 웬 남자 둘이 성희 씨 옆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4층 창문에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냥 길을 물어보는 모양새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 놈은 벽에 손을 뻗어 성희 씨가 나가지 못하게 길목을 막고 있었고, 나머지 한 놈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물어보는 모양새가 길을 묻는 것처럼 얌전하지는 않았다.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래, 난 여자를 대하는 매너가 참 없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어리버리 탄것만 봐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매너는 없을 지언정, 최소한의 사람 된 도리는 하고 살아야 된다. 


 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나도 내 발이 이렇게나 속도를 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출입구에서 튕겨져 나갈 듯 하여 문고리를 잡고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그리고, 너무 급한 우회전으로 반대쪽에서 오던 행인하고 부딪힐 뻔했다. 


 “끄어억.”

 

 그리고 그 사람은 혼자서 넘어졌다. 넘어지는 것 치고는 퍽이나 괴상한 소리로다. 이상한게 나는 분명 부딪히는 느낌이 없었는데, 앞에 있는 사람만 나동그라졌다. 일단 급한 쪽은 이 아저씨가 아니기에, 간단하게 사과의 말만 한 마디 남기고 성희 씨가 있는 곳으로 다시 뛰었다. 그러면서 일단 큰 소리로 성희 씨의 이름을 불렀다. 그 녀석들의 주의를 좀 끌어야 될 것 같았기에.


 “성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