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 씨가 날 돌아 본다. 좋아, 이제 그럼 저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없다?


 성희 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봇대에 기대어 큰 소리로 자기를 부르는 나를 쳐다 볼 뿐이었다. 그리고 성희 씨를 에워싸고 있던 두 명의 놈팽이는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뭐야, 그 사이에 사라진 건가?

 어쨌든 다행이다. 그런데 긴장감이 풀리니까 지금까지 막아두었던 숨통이 다시 터지려 한다. 나는 헐떡임을 추스리며 간신히 다리를 움직여 성희 씨의 옆에 설 수 있었다. 성희 씨는 후들거리는 두 무릎을 지지대 삼아 몸을 구기고 있는 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헥, 성희 씨, 어후, 괜찮아요? 푸우.”


 입 밖으로 말 반 공기 반이 나온다. 성희 씨가 제대로 알아 들었을지 모르겠다. 성희 씨는 자기 상황보다, 지금 내 모습이 더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내 말에 대한 대답은 딱히 하지 않고선,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급하게 송글송글해진 내 이마를 닦아 주었다. 그거 뛰었다고 이렇게 땀이 나나?


 “민재 씨, 괜찮아요...? 왜 이렇게 땀이...”


 “너무, 후, 뛰어서 그런가, 봐요. 괜찮아요, 성희 씨, 안 닦아 주셔도 되요. 그런데, 그 옆에 있던 사람들, 누구에요?”


 “아, 보셨어요...?”


 성희 씨는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서 뭐라고 이야기하려다, 갑자기 내가 뛰어 온 방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아간 시선에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강남 한복판에 당연히 사람은 많지만, 왠지 그 방향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한 점이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내 다리 상태와 동일해 보이는 두 남자가. 그들은 서로를 부축해주며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한지, 허리를 완전히 푹 숙인 채 다리를 완전히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걸음을 거의 못 가누는 수준으로. 그리고 바짓단 아래로 뭔가 질질 흘러내려 발자국처럼 찍히는게 보인다. 설마, 지린 거여? 

 그런데, 둘 중에 왼쪽, 저 사람 아까 나랑 부딪힐 뻔한 사람이다. 자세히 보니 옷이 똑같다. 아까도 저런 상태여서 넘어진 건가?

  그들을 어이 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와중에도 성희 씨는 이젠 괜찮다는 내 말은 철저히 무시한 채 내 얼굴을 닦아 주고 있었다. 뭐랄까, 닦아 준다는 느낌보다는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있는 느낌이다.  손수건 바깥으로 맨손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려 다시 성희 씨를 바라 보았다. 


 “저, 성희 씨?”


 “아...”


 다시 쳐다 본 성희 씨의 얼굴은... 왠지 눈이 풀려 있었다. 그리고 얼굴도 조금 바알갛게 물들어 있는 것이, 왠지 약간 감기 기운...? 아니, 술기운이 도는 듯해 보였다. 그렇게 나를 계속 응시하는 와중에도, 내 얼굴에 닿은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성희 씨의 손목을 잡아 얼굴에서 떼면서, 난처하다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 저기, 성희 씨, 저 이제 괜찮은데...”


 “아... 어머.”


 그제서야 성희 씨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 얼굴에서 떼었다. 그러고선... 무언가 굉장히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제자리에 풀썩 주저 앉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쪼그려 앉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고서는 더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나는 성희 씨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면서 말했다.


 “성희 씨, 일어나세요, 괜찮은 거에요? 네?”

 

 성희 씨는 내 말에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잡아 흔드는 내 손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그저 성희 씨를 적당하다 싶은 정도로 계속 흔들 뿐이었다. 

 큰일이다. 아까까지 하반신 상태가 영 좋지 못한 두 남자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럴 법도 하지. 술에 취한 아가씨를 달래는 일은 밤이면 모를까, 백주 대낮에 자주 보이는 광경은 아니니까. 나는 당황하여 성희 씨를 더 세게 흔들면서 절규했다.


 “서, 성희 씨. 일어나 보세요.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서 다른 곳으로 가야 된다구요!”


 다행히도 성희 씨는 이번 나의 외침에는 응답을, 아니, 반응을 하였다. 그녀는 마치, 실제 취한 사람이 그러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세차게 세네 번 흔들고 나서는 갑자기 내 두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살짝 붉은 얼굴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까처럼 풀려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으로 무언가를 강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졌다. 말 없이 전하는 그 눈빛은, 왠지 모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나도 급작스럽게 진지해진 분위기에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눈을 바라 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마치 얼핏 보면 헤어지기를 아쉬워 하는 연인의 모습처럼 서로를 바라 보았다. 

 입으로는 전할 수 없는, 그런 말들을 눈빛으로 나누면서.

 먼저 손을 놓은 것은 성희 씨였다. 손을 놓음과 동시에, 그녀는 고개를 다시 푹 떨구고서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살짝 젖어 있었다.


 “...해요, 민재 씨.”

 

 “네?”


 “아니에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집에서 봐요, 민재 씨.”


 그러고서는 성희 씨는 몸을 돌려 뛰어 나갔다. 나는 딱히 그녀를 잡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무엇인지 모를 이야기 못 할 사정이 있었고, 오늘은 더 묻지 말아 달라는 것을 눈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아까 그 양아치들을 만난 다음에, 성희 씨가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저런 행동을 하는지.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것 같지만, 지금은 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안 볼 사이도 아니고, 방금 말한 말마따나 집에서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은 성희 씨가 뛰어간 방향 반대쪽에 위치해 있었다. 


 

 집의 계단을 올라오면서, 성희 씨의 방문을 두드려 볼까 생각하였다. 하지만 곧 그만 두었다. 이 정도의 시간차이로 말할 거였으면 아까 말했겠지. 나는 성희 씨가 나에게 말 못할 고민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내 집, 옥탑방의 방문을 열었다.


 “왔습니까, 민재.”


 “왔는가, 인간.”


 리돌의 반응을 보아 하니, 성희 씨의 말대로 아까 있었던 오해는 모두 풀린 듯 하다. 나는 대충 식객들의 인사를 받아 넘기고서는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리돌이 온 이후로 이상하게 내 방인데 내 맘대로 옷을 갈아 입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젠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자연스럽단 말이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더라...

 아, 몰라. 생각하기도 귀찮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니, 리돌이 왠지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집에서 생활을 한 이후로 처음 보는, 그런 들뜬 표정을.


 “민재, 민재, 들어라.”


 “들어 보세요, 하다 못해 들어 봐 라고 해라. 내가 저 고양이마냥 니 하수인은 아니잖냐. 어쨌든, 뭔데?”


 “나는 곧 내 아버지와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이건 나름 희소식이구만. 드디어 이 녀석이 내 방에서 나갈 때가 온 건가? 나는 관심이 간다는 표정으로 리돌에게 되물었다.


 “이야,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린데? 어떻게? 너 전에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냐?”


 리돌은 흥분하여 무언가를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로다. 고향 갈 때가 되니까 다시 모국어 연습을 시작하나? 나도 그렇지만, 리돌 역시 자신의 급작스러운 생목소리에 무척이나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가만히 있다가, 턱 주위 공간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분주히 손을 놀린 결과, 수 분 뒤 간신히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번역사가 너무 날카로운 대화 후에 실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뭔 소리야. 그게. 리돌은 내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죽 이어갔다.


 “나는 달에 접촉하려 했지만 정상적인 연결은 결코 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나는 달에 매우 흥미가 있는 과학자를 만났다. 그는 달의 궤도를 설명했습니다. 차에 이 단어를 입력하면 달에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편지?”


 “그렇습니다. 편지.”


 리돌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편지' 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는 듯이.


 “그... 종이로 써서 부치는 그 편지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어... 그, 통신의 가능성이 생긴 건 나도 기쁜데, 너가 갖고 있는 최첨단 기술로 아버지하고 직접적으로 연결은 되지 않는 거야?”


 말을 하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을 꺼냈다. 이렇게 연락할 방법은 더 없냐는 듯이. 리돌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캐롤라인은 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직접 소통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가능한 한 작게 만들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말인지 이해가 갈 듯 말듯하다. 아마도 달과 교신을 시도하려 하면 지구의 전파망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래서 아마 대안으로 내세운 것인 편지인 모양이다. 아아주 작은 물체라면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거겠지. ...갑자기 그냥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어졌다. 리돌이 매일같이 들락거리는 루비의 포스터를 보며, 나는 한숨지었다. 아인슈타인, 당신은 옳았어요. 3차 세계대전은 몰라도, 4차 세계대전은 돌과 몽둥이로 싸우게 될거라는 그 말은.

 

 “오늘까지 우리는 물체가 달에 어떻게 보내 지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결과는 오늘날 뿐입니다.”


 “그러면, 이제 아버지하고 연결이 되면 아버지가 널 데리러 오겠네? 너가 전에 말한 것처럼.”


 리돌은 '아버지' 라는 말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긴, 그 아버지라는 양반이 자기 딸내미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 알면 데려 가는 것은 분명 시간 문제일 것이다. 저 무시무시한 권총도 그 아저씨가 만들었다고 하지 않던가. 


 “제가 말했듯이, 제 아버지는 달의 최고의 과학자입니다. 그들은 곧 지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리돌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가열차게 그 고등어빛 머리털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나비 녀석의 표정이 조금 불안해 보인다. 나비는 한참을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리돌의 손길을 감내하다, 넌지시 리돌에게 질문하였다.


 “주군, 그럼 달로 돌아가실 때, 저도 데려가실 겁니까?”


 “당연합니다.”

 

 그제서야 원하는 답을 들었다는 듯이, 나비는 만족한 표정으로 리돌의 품을 파고 들었다. 리돌은 그렇게 한 손에 나비를 든 채로, 나머지 한 손으로 나의 손목을 잡아 챘다. 


 “가자, 민재.”


 “응? 어디 가려고.”


 얼결에 잡힌 지라, 리돌의 약한 힘에도 몸이 저절로 끌려 가고 있었다. 리돌은 나를 문 밖으로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편지를 보내고 있다. 편지를 보내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