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elcome to the Jungle


[눈을 감아도 그 뒤에는 빛이 있음을 상기하라고 제국의 현자 마네는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성현들의 말씀을 받잡아 지금 알 수 없는 미래에 남길 이 글을 써 내려가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종이에 써 내려가는 이 문장도, 불꽃에 닿아 한 줄기 빛으로 변할 수도 있고, 글에 마침표를 찍지도 못한 채 갑자기 심장이 찔려 죽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생을 사람들에게 제 모든 혼과 열성을 담아 목소리로 칼을 내뱉는 직업에 몸바치기로 한 바, 제가 지금 처한 이 상황을 글로서 남겨 언젠가 노래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1할이라도 존재한다면, 지금 제가 힘겨이 손가락을 놀리는 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 제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한 모험의 기록은 절반도 세간의 장서고에 들어가지 못했고, 제가 쓴 노래가 아이들의 입에 구전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지만, 그렇기에 제가 지금 써 내려가는 문장에 더욱 더 힘이 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살ㄹ]


 그의 기록은 결국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대나무대로 받친 가마 - 사람이 타는 공간을 무슨놈의 동물인지 알 길이 없는 길다란 뼈로 짠 감옥으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도 가마로 칠 수 있다면 -  라는 것은 험한 산지에서는 그렇게 편하게 움직이는 교통수단은 아닌 것이다. 갑자기 멈춘 충격에 제리는 그만 자신의 유언장이 될 지도 모르는 종이를 놓쳐 버렸다. 그 종이는 틈사이로 날아가 뒤로 따라오는 원주민들의 사이를 지나, 자신의 왼쪽으로 보이는  끝간 데 없는 절벽으로 휘날려가 결국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종이가 날아간 쓸데없이 푸른 하늘을 허망한 눈으로 계속 바라보았다. 온 몸을 검은 가로 줄무늬로 도배한 원주민들은 그런 그의 기색에 전혀 반응하지도 않고, 그저 어깨에 맨 가마를 나르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제리는 자신이 왜 이런 원주민들의 육류수송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탈것에 탑승해 있는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기로 했다. 분명히, 그는 케아세르 공국, 대륙의 서부의 마지막 도시 노파이에서 키프리스의 행적을 찾는 모험단에 지원했었다. 공고를 내고 기다리고 있던 3인의 모험가 집단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의 외모에 상당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렇게 멀끔하게 생긴 음유시인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느니, 그런데 지금 머리에 맨 반다나가 색깔이 좀 안 맞는다느니, 이걸로 바꿔야 더 인물이 살것같다느니, 하여튼 자신의 복색을 바꾸는 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 중에 있던 반반하게 생긴 여검사의 방어따윈 무시하고 팔 다리 다 드러낸 깊게 파인 갑옷(혹은 그 안의 내용물)이 제리를 정신없게 만들어 그들이 말하는대로 패션을 바꾸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 후는 보는 바와 같다. 그들은 동료가 된 것을 축하한다며 제리를 선술집으로 데려가 정신없이 술을 먹였고, 평소 주량이 강한 편이 아닌 제리는 그대로 고꾸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기억은 이 가마 안에서 시작했다.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그냥 정신이 없었던 건지 자신을 여기로 끌고온 사기꾼들에 대한 기억 중 남아있는 것은 여검사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제리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한 번 내뱉고서는,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기로 했다. 일단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은 일단 자신이 팔족보행 가마에 실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온몸에 가득한 가로무늬 문신은 그들이 소비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소비족은 노파이에서 영혼산맥으로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야만족이며, 안 그래도 험준한 산맥 초입의 요소요소를 천연의 요새로 만들고 자신만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사실 제리도 음유시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읽어줘야 하는 필독서인 키프리스의 ‘영혼산맥 신나룸 보고서’ 에서 미리 정보를 봐 두지 않았다면, 그들이 여기 있는줄도 몰랐을 것이다. 책에 적혀있는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이방인이 자신들의 영토를 밟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데, 이것이 쫓아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기만 하면 대륙 끝까지 쫓아가서 척살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지금까지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호기롭게 영혼산맥에 들어가는 얼치기 모험가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기에, 일반적으로 그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생존자가 없는 이유에 대한 부연 설명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소비족은 이방인을 생포하면 최우선적으로 제단에 올려 불에 태워버린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제리는 등골이 쫙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그 사기꾼들은 자신을 산맥 초입에 던져두고, 산의 주인들이 제물용으로 제리를 포획하면 다른 길로 갈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지금 여기서 탈출하지 못하면, 통닭구이마냥 장작 위에 올라가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음유시인의 골을 천천히 울리며 깨던 술기운은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덜 깬 정신에 길드 보고용이랍시고 글월이나 깨작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 이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은 얼치기 음유시인인지라, 위급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법이 몸으로 숙달되지 않은 제리의 머릿속엔 이미 과부하가 걸려 있었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소비족의 부락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결국 그는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둔 탈출계획서(그 중 대부분은 백지였고, 나머지도 대부분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 가장 마지막 장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아우으아아웨라으라으라자자자자!!!!!”


 가마꾼 네명은 일제히 경기를 일으킨 듯이 펄쩍 뛰었다. 뼈감옥 안에 갖혀 있는 제리가 괴성을 지르며 위아래로 난동을 피우자, 그에 연결되어 있던 탄력이 좋기로 유명한 영혼산맥산 대나무가 미친듯이 그들의 어깨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제리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그의 계획은 대강 이러했다.

1. 깜짝 놀란 원주민들이 가마를 놓친다

2. 현재 그를 가두고 있는 감옥의 뼈는 상당히 오래 되어 보인다. 바닥에 부딪히면 부서질 것이다.

3. 아직 원주민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잽싸게 내리막길로 뛰어내려간다.

4. 집에서 느긋하게 포도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원주민들이 가마를 놓치는 것 까지는 확실하게 계획이 들어맞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자신의 명민한 판단력을 칭찬하며, 제리는 뒤쪽으로 튀어나갈 만반의 준비를 마쳐 놓았다.  

 그리고, 튀어나간 건 감옥 그 자체였다.

 사실 처음에 위아래로 흔들어도 감옥이 부서지지 않았을 때 깨달아야 했었다. 성인 남성 한 명의 무게를 담고도 튼튼하게 버틴 견실한 뼈 감옥은, 바닥에 부딪히자 자신의 탄성을 뽐내기 시작했다. 방금 어깨위에서 널을 뛰던 가마가 이번에는 바닥에서 통통 튀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술취한 선생님의 회초리마냥 미친듯이 휘둘러지는 양 끝단의 대나무를 피해 그것을 수습하려던 소비족들의 분란한 손놀림은, 그대로 가마를 굴려 절벽 아래로 떨구고 말았다.

 그 과정을 감옥 안에서 에누리없이 지켜보던 제리는, 눈 앞의 풍경이 아까 보았던 쓸데없이 푸른 하늘에서 절벽의 암벽으로, 다시 하늘로 계속해서 바뀌어 가는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계획의 2번을 수정하였다.


2. 바닥에 부딪히면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나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굴러가는 감옥과 함께 몸을 강타하는 낙하의 충격은 입을 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단애절벽 아래로 굴러가던 감옥에는 당연히 아직 그 탄력을 자랑하는 대나무가 달려 있었고, 알맞게 튀어나온 바위 끝에 아름답게 걸린 대나무대의 끝은 그 자신의 탄성을 자랑하듯 굉장한 소리를 내며 휘어지다, 감옥을 지금까지 굴러오던 방향과는 정 반대로, 그러니까 높은 하늘 저 멀리 날려버렸다. 굴러가던 충격이 몸에서 해방되자, 그제서야 제리의 입은 통제권을 찾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에 놀라 숲 속에서 날아오르는 이름모를 새떼와 같이, 제리는 하늘을 날며 마음껏 소리질렀다. 소비족들은 자신이 바치려던 제물이 저 멀리 떠오르는 일출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