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다. 검은 커튼이 빛을 닫는다. 무광의 주변에선 바람 소리마저 감미롭다. 그리고 아른대는 그곳엔 가을 낙엽만이 적적히 쌓인 채 나홀로 있는 나만이 있었다. 거친 바람 소리는 아랑곳 않고 불어오건대, 나의 마음은 태평하였다. 따갑지도 않고, 서늘하지도 않은 양광 사이로 어느넉한 공원을 한 번 둘러보다 보면 어느 샌가 현실에 있었다.

현실에서의 나는 그곳이 너무나 감미롭다. 너무나도 감미로워서 현실을 망각할 때도 있다


 어느 날, 나는 다이소를 갔다고 나무라는 집에서 뛰쳐나왔다. 집집 간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양식에 모양에 색깔을 보고 그 어느 곳도 재차 뛰어들지 못 하고 더 멀리로 뛰쳐나갔다.

 멀리서 배가 고파 돈까스 집을 가니 휴업한다는 글이 백색 종이에 적혀 붙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난장판이 된 내부가 보였다. 한식집을 가려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 다가가보니 짜장면 집이었다.

 짜장면을 먹고 가는 길에 할아버지 둘이 싸우는 걸 본다. “아니! 글쎄, 내 할아버지가 여기서 노비로 부려먹히다 죽었다고!” “이미 그 때 일은 더 묻지 않기로 하고 합의금 줬잖아!” “지금 과거를 부정하는 거야! !”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답 대신 팔짱을 낀 채로 입을 다문다. 주먹다짐을 할까봐 조심스레 다가가고 있던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니놈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질렸으니까 서로 아는 체 하지 말고 남남으로 지내자.” 팔짱을 꼈던 할아버지는 이 말을 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남은 할아버지는 닫힌 대문을 탕 탕 치며 소리 쳤다. “역사가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 그 할아버지는 갈 데가 없어서 그렇게 오래 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초등학교 저학년짜리를 본다. kg은 족히 될 것 같은 군장을 매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것을 뺏었다. 그 애는 돌려달라고 울먹인다. 나는 그 애가 가는 곳까지 길 안내를 해주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울먹여서 근처 가게에서 과자 하나를 사주었다.

 뭐하러 가냐고 물었다. 그 앤 도보 20분 거리의 공원에서 일본 반대 행사가 열려서 간다고 했다. 누가 가라 했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가면 좋다고 했다고 한다. 왜 이 무거운 걸 들고 가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그걸 들고 가면 더욱 더 좋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속 물어보니, 일본은 사람들을 많이 죽여서 나쁘고, 그 나쁜 일본을 혼내주려고 이렇게 용을 쓰는 거라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까지 해낸 그 애가 기특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어떤 사건에서의 무슨 일 때문에 일본이 나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답을 못 했다. 그 애에게 조금 실망감이 들면서, 일본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생긴 거냐고 물었다. 그 앤 그저 다른 사람들도 하니까, 자기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공원 입구에서 그 아이에게 군장을 주었다. 그 아이는 군장을 매는 도중에도 뛰어갔다.

 다시 여기저기를 방황하다가 어떤 여자 아이가 내게 군복을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군복을 입고 있는 건 물론이요, 몇몇은 군장까지 차고 있었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 여자 아이는 자기 포장마차로 날 데려갔다. 포장마차엔 노란 리본도 있었고, 촛불도 있었다. 여자 아이는 줄자를 하나 꺼내서 내 몸 구석구석의 치수를 쟀다. 그리곤 옷 뭉치를 뒤적거리다가 군복 상하의를 찾아서 내게 건네주었다. 가격을 말해주니 터무니없이 비쌌다. 안 산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애는 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과장된 놀람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애를 왜 놀라냐는 투로 보았다. “국가가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게 해 줬는데 이거 하나 사는 돈이 그렇게 아까워요?” 그 애는 다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는 대한민국과 전후에 비교된 국가들의 모습을 얘기하려는 것이리라. “국가의 의무도 모두 졌고, 범법 행위 하나 안 질렀어. 근데 여기서 뭘 또 하라고. 그리고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든 사람에게 고마워해야지, 국가라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걸 위해 힘을 써야 해?” 말을 끝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가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그 여자 아이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셔터가 닫히기 전에 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다시 눈을 감는다. 또 다시 감미로운 바람은 나를 맞이한다. 항상 눈을 감으면 현실의 고통은 아스라진다. 모든 것이 낮과 밤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대로 조화롭게 굴러가는 것인 것마냥 느껴진다. 이 이상의 표상만이 가득한 이상향은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질 뿐,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 개꿈에 취해 오랜 시간을 흩날려버리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사라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현실을 거짓말까지 해가며 환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