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대총독의 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집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집무실 책상 위 한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사진에는 이진석과 이진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 형님."
 그가 쇳소리를 내며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형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영영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은 각오했던 그였으나,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은 그도 몰랐다.
 더군다나, 형의 시신을 아직까지 반환받지 못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장례도 치루지 못 해 가슴이 미어졌다.
 그 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그는 황급히 사진을 탁자에 내려다두고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의 비서였다.
 그는 비서를 맞이하며 의례적인 인삿말도 없이 본론으로 넘어갔다.
 "내가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당시 형님분을 모시던 하인을 통해 유서와 시신이 있는 장소가 적힌 쪽지를 받았습니다."
 "유서..?"
 비서는 조용히 품 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종이를 꺼내 그에게 건냈다.
 이진철은 떨리는 손으로 유서를 읽어나갔다.
 글 한자 한자가 그의 가슴을 찔러나갔다. 그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진철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유서를 다 읽어나간 그는 유서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비서에게 말했다.
 ".. 그 때 이야기한 작전.. 실시하도록 하게."
 "총독님! 만일 그 작전이 이뤄진다면.. 갈리아와 바타비아간의 외교적 갈등이 생길 것은 뻔한 일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이로 인해 진노하신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네. 어차피 나같은 늙은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살겠나? 죽기 전.. 형님 손 한 번만 만져보고 죽는다면 소원이 없겠군."
 ".. 명 받들겠습니다."
 비서는 결연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총독은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희끄무레한 연기가 천장으로 서서히 피어올랐다.
 이진철은 그 연기 속에서 형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주인은 언제나 기억한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