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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실 안에 커피향이 솔솔 퍼져나갔다.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2:1로 섞어달라는 내 주문에 사서 쌤은 귀찮게 만든다며 뭐라뭐라 그랬지만 결국은 지금 대단히 능숙한 폼으로 커피를 우려내고 있다.

 

커피향이 머릿속을 콕콕 찌른다. 뇌가 마사지 받는 듯한 기분이다. 약간 나른해지는 것도 같은 기분.

 

청담정 스페셜입니다. 부디 맛있게 드셔주십시오.”

 

우리 도서실의 이름을 딴 커피.

 

훌륭합니다, 마스터.”

 

첫 시식자는 도서부장인 나다.

 

기다란 책상들만 놓인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둘이서 이러고 있으니 남이 보면 우습겠지만 이땐 꽤나 진지했다.

무엇보다 커피를 먹을 수 있으면 그곳이 바로 카페 아닌가? 그것이 나의 커피 철학.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살랑, 하고 불어왔다.

 

사서 쌤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앉았다. 책상 위엔 예의 그 책이 놓여 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이러니까 되게 분위기 있어 보이네요. 추리 소설의 한 장면 같애.”

 

분위기를 잡으면 안 돌아가던 뇌도 거기에 맞춰 잘 돌아가는 법이니까.”

 

후르륵, 커피를 한 모금 입에서 굴렸다. 약간 뜨겁다.

 

일단 확실한 것부터 얘기하죠. 범인은 남자에요.”

 

좋아, 용의자가 절반으로 줄었네. 아주 좋은 시작이야.”

 

그렇게 비꼬지 않아도 되잖아요. 어저께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평소에는 없던?”

 

딱 하나 있었지. 1학년 7반 애들이 자습하러 왔었거든.”

 

도서관 자습이라. 가끔 있는 일이다.

선생님이 아프거나 해서 수업을 못하시는 날이면 부담임 선생님이 해당 반 학생들을 인솔하고 도서관으로 오는 것이다.

 

25명가량의 학생들로 바글바글한 도서관이라. 뭔가 감이 온다.

 

그 때 사서 쌤은 뭐 하셨어요?”

 

나야 뭐 특별한 거 없이 그냥 책 고른 애들은 열람실로 들어가게 하고 장난치는 애들 장난치지 말라고 주의주고 그러고 다녔지.”

 

“···꽤나 혼잡했겠네요.”

 

혼잡했지. 체육 시간 다음이라 애들 땀 냄새도 지독했고,” 사서 쌤이 씨익 웃는다.

하지만 도난 방지 벨이 울리는 걸 듣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던 건 아니었어.”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아니라 저 도난 방지 시스템을 믿는 거야. 어디 하나 빠져나갈 구석이 없거든.”

 

진짜요?”

 

벽에 밀착해 있어서 그 사이로 빼낼 수도 없고 허공에 높이 든 채로 지나가도 울릴 정도로 고성능인데 그럼, 인간보다 유능하고 믿을 만하지.”

 

-1. 입구로 반출했다 설, 은 보류해야겠다.

그렇다면 남는 건,

 

창문이네요, 그럼.” 열린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유월. 여름의 유년기지만 아직 사춘기가 아닌 고로 행정실에서 냉방을 허가해 주지 않는다.

해서 평상시엔 잠겨있는 도서실의 창문은 활짝 열려있다.

 

하지만 어떻게?

 

작년까지만 해도 1층에 위치해 있던 도서실은 겨울 방학 동안 5층으로 이전했다.

나날이 늘어나는 책들을 감당하기엔 기존의 도서실이 너무 작았던 까닭이었다.

 

그 때에는 알게 모르게 창문의 존재가 꽤 컸다.

야구공이 날아와서 깨지기도 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창문을 넘어서 도서관으로 들어오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원래 같았으면 사서 쌤이나 나나 당연히 주의가 다른 데로 쏠린 틈을 틈타 창문 너머로 책을 빼돌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도서실은 지상 5. 실족 시 치사율이 50퍼센트에 달하는 높이다.

만약에 책을 밖으로 던졌다고 치더라도 상당히 훼손됐을 게 뻔하다.

그러나 눈앞의 책은 어디 눌린 자국도 없이 멀쩡하다.

 

생각을 해 보자.

내 영원한 우상인 셜록 홈즈는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경우의 가짓수를 줄여나가다 보면 남는 것이 진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하자, 생각하자. 갑자기 도서실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보자.

출입문에선 불길이 내 몸을 탄소 덩어리로 변환하기 충분하게 불타오르고 있을 때 내가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밧줄만 있다면-

 

-그 때, 아까 사서 쌤이 말했던 것이 퍼뜩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