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마나 함정이겠지.

신기루에 개의치 않고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었지만,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오크들의 머릿수에 밀려 하나둘씩 지쳐가고 있었다.

잘 버티고 계시던 비트립 단장님마저도, 슬슬 힘들어하시는 눈치였다.

나 또한 힘이 빠져 쓰러지기 직전에, 

 

"뭐 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

 

신기루처럼 보였던 그 소녀가, 정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허리까지 가는 긴 백발에, 꽤 고급져 보이는 옷, 그에 비해 지팡이는 상대적으로 수수해 보였다.

넋을 놓고 있던 찰나, 오크 한 마리가 우릴 향해 달려왔다.

 

"집중하라고, 애송이들."

 

응?

뒤돌아보니 우리 앞에 있던 오크 졸개 한 마리가 어느새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다.

"애송이라고?"

그 와중에 코스타는 발끈했는지 그 소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뭐, 애송이? 우리가 누구인 줄 알긴 하는 거야?"

"아줌마 하나랑 기사 나부랭이들 여러 명."

"아.. 아줌마라니....!"

 

기사 나부랭이라, 왠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트립 단장님은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고,

루보와 코스타는 계속해서 옥신각신 하고 있다. 그럴 시간에 오크들을 좀 신경쓰지...

 

"지금 이 분이 누군지 알기나 해? 이분은 바로 위..."

"그만, 그쪽 사람이 누구인지는 관심없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휘말리기 싫으면."

 

그 말과 함께, 그 소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지팡이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이 오크들을 하나둘씩 태우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의 오크들은 온데간데없이 잿더미들만 쌓여 있었다.

우리는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저 오크들을 전부 태워 버리다니!?"

"무슨 소리야, 아직 저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아차, 더 많은 오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함께 터지기 싫으면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걸."

 

우리는 허겁지겁 저 멀리 있는 틈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 아래에서 마법진 하나가 새겨졌다.

그녀가 주문을 계속 외우자,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이윽고 그녀가 주문을 끝마치고 지팡이를 내리꽂자,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다음 펼쳐진 광경에,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하였다.

 

"...지금 보고 있는 거, 꿈이야?"

"세상에, 저런 게 가능하다고?"

"마법에 대한 소문은 꽤 들었어도, 이런 것까지 가능할 줄은..."

 

하늘에서 나타난 것은 바로 운석이었다.

운석은 마법진이 새겨진 위치로 정확히 떨어지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충격파와 함께

오크들은 그 자리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후, 개운하네."

"......"

 

우리는 방금 벌어진 일에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정신을 차린 단장님이 말하기를,

"어이, 마법사, 오크들을 굳이 운석까지 소환해서 처치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운석을 소환할 정도의 실력이면 얼마든지 다른 마법으로 처치할 수 있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마왕놈들에게 원한이 있어서 말이지. 그에 대한 복수야."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그새 하늘이 어두워졌으니 오늘은 우리 마을에서 지내고 가."

 

그녀가 다시 주문을 외우자, 빛줄기가 그녀와 우리를 감싸더니,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빛으로 가득찼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가 있는 곳은 한 마을이었다.

 

"내가 사는 마법사들의 마을이야. 너희 같은 기사 나부랭이들은 이 마을에 올 일이 없겠지만."

코스타는 여전히 그녀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그녀는 꽤 커 보이는 여관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자세한 상황 설명은 내일 듣자고."

 

비트립 단장님이 들어가려는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잠깐, 당신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어? 언제까지 마법사라고 부를 수만은 없으니."

 

"내 이름?"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카일라."

"카일라 플뢰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