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걔들 여기 오기 전 시간이 뭐였다고요?”

 

체육이었나 봐, 다들 체육복을 입고 있었어. 땀에도 흠뻑 젖어있었고.”

 

내가 기억하기로 1학년 1학기의 체육 활동은 줄넘기였다.

 

걔들 줄넘기 가지고 있었어요?”

 

사서 쌤은 조금 감탄한다는 눈빛이다.

 

꽤 하는데? 맞아, 줄넘기 줄 가지고 있었어.”

 

사서 쌤은, 이미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있었던 눈치다. 살짝 허무해진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하고 계셨나 봐요.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 걸 보니.”

 

사서 쌤이 흠- 하고 웃었다.

 

아까 커피를 타다보니까 생각이 다 정리되더라고. 그때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짐작이 됐지. 결정적으로,”

 

사서 쌤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지퍼백이다.

 

나는 너보다 단서가 더 많았거든. 책 속에서 이런 게 나왔어. 이렇게나 단서가 확실하니 유추하는 건 쉬웠지.”

 

증거품처럼, 아니 증거품으로 담겨있는 것은 작고 검은 고무색 알갱이였다. 이건-

 

운동장 고무 알갱이······.”

 

우리 학교 운동장은 인조 잔디다. 인조 잔디 운동장에서 흙의 대용으로서 쓰이는 것이 이 지우개똥만한 고무 알갱이.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운동화 속에 우르르 들어가 있어 신발과 신발주머니를 터는 것이 일상이었다.

 

역시 줄넘기 줄하고 신발주머니인가요.”

 

사서 쌤은 진심으로 기특하다는 눈치다.

뭔가 잘했군, 잘했어 우쭈쭈 라고 말하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상해서 서둘러 추리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걸 거에요.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미 빌리고 있는 책이 있거나 아님 연체 때문에 대출이 안 된다거나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하여튼 책 도둑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책을 빌릴 수는 없었는데 그 책을 놓고 가긴 아쉬웠던 해당 시리즈의 팬이었던 모양이에요.

다음에 왔을 땐 다른 사람이 먼저 빌려갈 수도 있으니 급했던 거죠.”

 

커피를 한 모금 벌컥 들이키곤 말을 잇는다.

 

저는 아마도 사전에 계획했다기 보단 즉흥적으로 이뤄진 게 아닐까 싶어요.

당장 가지고 있는 물품만으로 책을 빼돌렸으니까요.

어쨌든 간에 책을 빌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냥 가지고 출입구로 나가자니 벨이 울릴 건 뻔하고.

그러다가 창문으로 생각이 미쳤던 거지요.”

 

말을 멈추고 사서 쌤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제 사서 쌤의 차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 저 역사책들 꽂혀있는 책장 뒤에 있는 창문에서 했을 거야.

거기는 책장 뒤라 카운터에서는 잘 보이지 않거든.

5층은 너무 높다. 신발주머니에 넣어 던져서 충격을 줄여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하기에도 너무 높은 높이니까.

어떻게 하면 책을 안 상하게 내려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생각이 난 거지.

굳이 1층까지 내려 보낼 필요가 있을까? 냉방 안 되기는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라 밑의 층도 창문은 열려있을 텐데.

그때 줄넘기 줄에 생각이 미쳤을 거야.

여기 창문에서 밑의 창문까지는 대충 1.6m 정도 될 텐데, 줄넘기 줄 끝에다 신발주머니를

매달아서 그 안에 책을 넣고 밑으로 내려 보낸 거지.

그렇게 몇 번 팔을 휘저어서 시도를 한 끝에 결국 창문 안으로 넣는데 성공한 거야.

그 때 신발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고무 알갱이가 책 사이에 끼인 거고.

대단한 건지 무모한 건지, 그 사이에 누가 오기라도 했으면 들킬 게 뻔한 데도 잘도 그런 짓을 했어.”

 

사서 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제는 추리가 여기에서 끊긴다는 거야.

아래층은 심화수학교실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출입하는 애가 한두 명도 아닐 테고.

결국 이 추리는 어떻게 책이 쥐도 새도 모르게 빠졌나갔는가에 대한 해답은 되지만

범인이 누군지는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추리야.”

 

과연 그럴까요?

 

선생님은 그거 모르시나 보네요. 심화수학교실 평상시에는 잠겨 있는 거.”

 

, 그런 거였어?”

 

재작년엔가 거기 비품을 누가 싹 다 훔쳐가서, 그 이후로는 수학 연구 동아리가 활동하거나

방과 후 심화 수업 시간 아니면 늘 잠겨있어요.”

 

범인의 윤곽이 서서히 잡혀온다.

 

, 도둑 친구는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친구라는 거죠. 수학 심화 수업은 예나 지금이나 월수금이니까

화요일인 어제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동아리 부원밖에 없어요.”

 

나는 결론을 지었다.

 

범인은 1학년 7반의 남학생, 수학 동아리에 소속된 친구입니다.”

 

 

* * *

 

 

“-1학년 때 잠깐 수학 동아리에 들어갔던 게 그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어쩐지 왜 그렇게 잘 아나 했다. 수학은 질색이라면서 수학 동아리는 왜 들어갔던 거야?”

 

그 때는 제가 수학을 좋아한다고 착각했죠. 부장 누나가 제 취향이었던 것도 있었고.”

 

청춘이었네.”

 

제 청춘은 현재진행형이거든요? 과거형으로 말씀하지 말아주실래요?”

 

오냐 오냐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어요?”

 

“1학년 7반인 도서부원 애한테 부탁해서 그 반에 수학 동아리하는 남자애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했지.

한명밖에 없으니까 옳다구나 해서 여기로 호출했고.”

 

으음, 명복을 빕니다.”

 

뭐야, . 별로 혼내진 않았어. 보니까 여기에 도착한 순간 이미 죽상이더라. 조금 캐 물으니까 알아서 다 말하더라고.”

 

왜 훔쳤대요?”

 

어떻게든 당장 읽고 싶었는데 자기는 대출 한도에 걸리고 다른 친구들한테 부탁하려고 하니

자기가 그 반에서 겉도는 애라 친구가 없어서 책 좀 대신 빌려달라고 말을 못했대.”

 

저런.”

 

막판에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 본성이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서. 적당히 타이르고 벌주고 끝냈지.”

 

벌이란 게 뭔데요?”

 

도서부에 들어오는 거.”

 

?”

 

보니까 책 되게 좋아하는 친구고 동아리도 수학 동아리밖에 하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도서부원은 대출한도가 5권까지니까 책벌레 하나 구제해 주는 차원에서 한번 권유해봤더니 바로 하겠다고 그러더라고.

귀여운 신입 잘 부탁해 도서부장.”

 

왜 이런 귀찮은 일만 저 시키는 거에요?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에요?”

 

매일 공짜로 커피를 얻어 마시는데 이 정도 값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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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수업 기말대체 과제로 썼던 단편 소설입니다 막걸리 걸치고 파바박 쓴 거라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한번 올려봤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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