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복잡한 것들 천지야. 나는 지금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민석은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모리는 대답했다.

"당신이 이제와서 그러니까 의외인데요."

민석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주인님. 당신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소설가셨습니다."

그랬었다. 베스트셀러를 몇권 만들어냈다. 하지만 독서시장이 이미 줄어든 마당에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라는 자기과시는 전국적인 어필이 아니라 동네에 걸린 현수막같은 느낌이였다.

"모리야. 내가 아무래도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 이젠 집중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너무 늙어버린 것이지."

"주인님. 당신이 그토록 기대하던 미래가 지금 왔다 생각하시지요."

"그렇다고 하지. 썩 좋은 미래는 아닌 것 같아. 너랑 수다떠는 걸로 위안을 가져야지."

"주인님. 창의성이 항상 발현되는 건 아닙니다. 때론 활화산처럼 넘치다가도 지금처럼 휴식기에 접어들 때가 있지요."

민석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말야? 어? 항상 아이디어가 활화산처럼 넘쳤어. 글 적을때는 별 구상도 필요없이 막 적혔다고. 큰 그림은 내 머리 안에서 그려졌으니까."

"재능만 믿고 사셨네요."

"아니, 지금 진짜 피곤한 것 같아."

민석은 안마기에 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한참 그렇게 있었다. 하늘은 그렇게 흐리지 않았다. 해는 점점 지고있다. 다시 침묵을 깬 것은 민석이였다.

"그래. 지금이 과거의 미래지. 과거의 내가, 나의 강아지와 이야기할 수 있을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그건 그렇죠."

"옛날에 미래의 지구를 주제로 했던 영화 이름이 뭐였더라?"

"그런게 한 두개여야 말이죠."

"아니, 시계로 다른 시간대로 물리학 메세지를 보내는 영화 있잖아."

모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다.

"아마도, 인터스텔라였던 같네요."

민석은 미소지었다.

"역시 내 개는 똑똑해."

"엇그제에 티비로 봤으니까."

"아무튼. 거기에 보면 미래에는 메뚜기 떼들이 농작물들을 다 잡아먹어버리고 모래폭풍이 지구를 수시로 갈아엎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세계지만 환경오염이 어느정도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똑같지. 아무튼 말이지. 아 그리고 공무원은 더더욱 철밥통이 되었다는 것도."

"아무튼 말이죠."

"그들은 우주로 향했다. 지구를 버리고서 말이야. 지금 우리는 우주를 버리지는 못해. 과학기술은 눈부시지만 최근 한계에 다다랐다고.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칭송해왔지만, 지금의 세대는 그것의 한계를 절절히 느끼고 있지."

"아직 과학발전의 여지는 있거든요?"

"인간편을 드는 괴상한 애완견이로군. 나중에 내가 미주랑 말싸움이 붙으면 내 편을 들어주면 어떻겠니."

"그건 들어보고 결정하죠. 아. 더 말거실건가요?"

"아니, 말은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된단다. 너의 구강구조로 이렇게까지 말을 많이 한 것 자체가 기적이지."

미주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투덜대는 소리도 들린다.

"아랫집 이사하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어."

민석과 모리는 가만히 있었다. 민석은 여전히 안마기에 앉아있었다. 부엌으로 가던 미주는 흘깃 보고 말했다.

"내 남편은 내가 아니라 강아지와 더 친해보인단 말이지."

안마기에서 의식이 침잠해가던 민석은 재빨리 말했다.

"나는 여보가 제일 좋아."

"그래?"

그녀는 무신경하게 대답하고서 거실 티비를 틀었다.

"갑자기 티비는 왜?"

"지금 ''퍼블릭보이즈'가 라디오스타에 나왔다고."

"아 그 공무원 컨셉으로 나온 애들? 진짜로 내가 미래에 살고 있기는 하구나. 소설가인 나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저런 컨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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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걸 어떻해!"

민아는 짜증을 냈다. 그러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우리들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였다. 선생님은 순간 아무 말도 없었다.

"자. 잠깐 쉬자."

갑작스러운 휴식시간. 선생님은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나는 밖으로 나가보았다. 밖에는 비가 슬슬 내리고 있었다.

민아는 앉아있었다.

"니 잘못이 아니야."

그녀가 나를 슬쩍 쳐다본다.

"뭐 어쩌라고. 개1새끼야."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 실력도 늘지 않은 것 아닌가?

"우리도 갑작스럽게 쉬게 되었잖아. 야. 너 우는건 아니지? 너 삐졌니?"

민아는 앞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야. 나도 힘들어. 진짜로."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될까.

"야. 저 선생님은 춤 전공이고, 엄청나게 노력한 전문가잖아? 그런 전문가 눈에는 너의 문제점이 보일거란 말이지. 너도 결코 춤을 못 추는게 아니잖아? 단지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너의 작은 실수가 보이는거지. 선생님은 그걸 진지하게 지적하는거야. 너가 싫어서가 아니라."

민아는 가만히 있었다. 잠자코 있다가 이야기를 한다.

"나도 알아 버러지새끼야. 그렇지만 꼭 그런거라기 보다는. 야. 작은 실수라고? 그렇게 작은 실수는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이 그렇게나 언성을 높일 정도면 말이지? 그리고 내가 선생님한테 삐져서 이러는 것 같아?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고. 이렇게나 내가 실력이 없다는 사실을 안거지. 어쩌면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춤이 더이상 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고. 내가 지적받은거 있잖아, 그거 맨날 지적받는거라고. 그리고 나도 나를 잘 안다고? 내가 정말이지 한계가 있는 인간이구나 라는걸. 나도 잘하고 싶다고. 이렇게 자존심상하는건 싫잖아?"

민아는 일어섰다.

"......그래도 좀더 연습하다보면 될지도."

그녀는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흙바닥에 발자국이 남는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왔다. 민아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도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민아가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말이 없다.

"선생님 방금은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제가 연습이 부족했죠. 그리고 좀더 신경을 쓰면 됬을 것 같은데, 제 집중력도 모자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시 해볼께요. 죄송합니다."

"너가 실수한 건 실수한거고, 그런 실수는 있어서는 안되는거야."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았을때 나는 매번 그렇긴 하지만 지금도 약간의 서늘함을 느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춤 선생님은 내가 아는 선생님들 통틀어서 가장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였고 눈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도, 너가 그렇다면 다시 해볼 수 있겠지."

그래도 다행이 화는 풀리신 것 같다.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는 민아를 따라 나오려고 했다.

"준석아?"

순간 아주 조금 움찔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걸까? 나는 서서 선생님을 보았다.

"너는 여기 온지 얼마 안됬잖아? 그렇다면 언젠가 너도 민아처럼 벽을 만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벽을 부수고 넘어가느냐, 막히느냐는 너에게 달려있을거야. 너의 부족한 부분을 너가 고칠수 있다면 고치는거고. 선생님이 주는 조언이야."

 

선생님의 지도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돌고 나서 이렇게, 왼쪽 팔이 부자연스럽다. 좀더 신경써"

민아는 빙글 돌았다.

"그정도면 됬어."

선생님의 말에 민아가 돌아갔다. 민아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내 옆에 왔다. 민아는 나에게 속삭였다.

"뭘봐 등신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