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 조절 실패로 수정이 있었습니다


머프는 노예상인이다.


칸드라 왕국은 법적으로 노예를 금지하고 있지만, 귀족들은 암암리에 노예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상인은 귀족의 비호를 받는 직업이고, 머프는 귀족들을 등에 업고 횡패를 부렸다.


고리대금업을 통해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바꾸어 팔기도 하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서 귀족 다음으로 가는 권력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머프에게 있어서 길거리 부랑자를 잡아다가 노예로 쓰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좋아좋아, 오늘도 쓸만한 것을 찾았구만."


머프는 부하들의 손에 끌려오는 남자 부랑자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꾀죄죄한 몰골에 누더기같은 후드를 쓰고 있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몸은 탄탄한 게 일꾼으로 쓰기에 딱 적합해 보였다.


"아니면 귀부인 몸종으로 써도 좋겠지, 흐흐흐흐."


다만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눈은 공허해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지만, 길거리 부랑자들 사이에서 많이 보던 편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교육 후에는 모두 주인에게 충성하는 잘 훈련된 노예로 변하니까.


머프는 부랑자를 보며 어느 귀족집으로 보낼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왔다.


"자자~ 우선 너무 더러우니까 후딱 씻기고, 오늘부터 바로 교육 들어가도록 해. 교육이 되는 데로 곧바로 보내버릴 거니까."


머프는 잔뜩 신이 난 채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 와 각 귀족가에 보낼 서신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윽고 부하들이 전해 온 소식에 그는 펜을 집어던지고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뭐? 문신이 있어?"


"예. 배에 마법진같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던데요?"


황급히 세면장으로 달려 간 머프는 부랑자의 모습을 보고 통탄을 금치 못했다.


잘 그을린 구리빛 피부에 잔근육으로 탄탄한 몸, 지저분한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내니 드러난 수려한 이목구비.


분명히 최상급 노예로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었다, 배 한가운데에 있는 저 문신만 없었다면.


"이런 젠장!! 왜 저런 곳에 문신을 새긴 거야!"


머프는 화를 참지 못하고 부랑자의 배를 발로 차버렸다.


"이런! 쓸모도 없는 부랑자 주제에! 그런데 문신 같은 건 왜 한 거야!!"


거금을 벌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사실에 격정을 내며 부랑자를 발로 짖밟던 머프는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


"저 놈은 그냥 우리에 가둬버려!! 나중에 노역에 쓸 노예가 필요하다고 할 때 보내버릴 거니까!"


"그럼, 교육은 안하는 겁니까?"


"교육은 무슨. 그냥 대충 패놓고 가둬 놔!"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역정을 내던 머프는 한순간 바닥에 널브러진 부랑자와 눈이 마주쳤다.


머프의 가차없는 발길질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는 부랑자의 공허한 눈은 그 눈을 마주한 이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하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머프는 오늘 보았던 부랑자의 눈과 그의 배에 그려진 문신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대체 그 놈은 뭐하는 녀석이지? 혹시 어느 신전에서 산제물로 바쳐질 뻔 하다가 탈출해 나온 건가? 미친 광신도들이 몰려오기라도 하는 거 아니야?'


그 부랑자는 하루 빨리 팔아버리자고 다짐한 머프는 침대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잠을 청하였다.





다음 날,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머프는 불안감을 무시한 채 억지로 잠을 청한 탓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소음의 근원지인 노예 사역장으로 향한 머프는 뻐드렁니가 두드러진 노예가 철창 너머로 팔을 뻗어 부하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제발, 제발 날 여기서 꺼내줘! 아니 절 여기서 꺼내주세요!! 어서 다른 곳으로 팔아달라구요!!"


"이거 안 놔? 어제 하도 처맞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진짜라니까요! 저 자식이 괴물로 변해서 당신들 동료를 잡아먹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에요!!"


뻐드렁니 노예는 자신의 맞은편에 갇혀 있는 노예를 두려운 눈으로 보며 말했다.


"이상한 주문을 중얼거리더니, 철창 가까이 사람이 다가오자 그대로 콱! 하고 집어삼켜 버렸다니까요!!"


"진짜 제대로 미쳐버린 거냐? 빨리 이거나 놔!!"


뻐드렁니 노예를 떼어낸 부하는 동료 부하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한스 녀석은 어딜 갔는데 안 보이냐?"


"그러네? 또 밤새 술 퍼마시고 어디서 자고 있는 거 아니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부하들은 머프가 다가오는 걸 발견하고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일어나셨습니까, 두목."


"뭔 일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시끄러워?"


"여기 이 노예가 어제 들어 온 노예가 괴물로 변해서 사람을 잡아먹었다느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해대느라 그랬습니다."


머프가 다가오자 뻐드렁니 노예는 이번에는 머프의 바지를 붙잡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머, 머프 님!! 진짜입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한 번만 믿어주십쇼!"


뻐드렁니 노예를 내려다보던 머프는 허리를 숙여 노예의 손을 잡아주었다.


뻐드렁니 노예의 표정에 희망의 빛이 어리자 머프는 노예의 손을 확 쳐냈다.


"니가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안 팔릴거라고 생각해?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늘여놓고 있어!"


머프가 몸을 돌리자 뻐드렁니 노예는 철창 사이로 빠져나올 기세로 몸을 들이밀었다.


"제, 제발! 제발요!! 적어도 다른 곳에 가둬주십쇼!! 전 죽기 싫단 말입니다!!"


"야. 오늘은 저 녀석부터 교육시켜. 이미 미쳐버린 거 같으니까 정신 돌아오게 확실하게 조져라."


"예, 두목!"


머프는 노예 사육장을 나오다가 고개를 돌려 문신의 노예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제와 같은,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으로 뻐드렁니 노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노예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머리는 자신도 모르게 문신의 노예를 멀리해야 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몸은 노예에게서 멀어지고 싶은지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젠장. 저 놈도 빨리 팔아버려야지 원."


머프는 빨리 저 노예를 팔아치울 만한 귀족집을 찾아보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또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자신을 깨운 부하와 함께 머프는 허겁지겁 노예 사육장으로 달려갔다.


"노예가 없어졌다고? 어제 보초 서던 놈들은 어디갔어!"


"그게, 저희도 찾아본다고 마을까지 나가봤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노예 사육장에 도착하자 어제까지만 해도 살려달라고 빌던 뻐드렁니 노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미친 놈들이 어딜 간거야!! 없어진 물건은 없었어?"


"예. 연장이나 다른 건 다 멀쩡하게 있고, 여기 있던 노예만 없어졌습니다."


노예 사육장을 이리저리 살피던 머프는 어제처럼 철창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문신 노예에게 물었다.


"어이! 여기 있던 노예랑 내 똘마니들, 어디로 갔는지 봤어?"


머프는 철창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문신 노예에게 말했지만, 노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노예의 무시에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화가 난 머프는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소리쳤다.


"이게 대답을 안하네? 야, 대답 안 해? 이 새끼들 어디 갔냐고!"


그 순간, 눈에 잠깐 이채를 띈 노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머프를 보았다.


노예와 눈이 마주친 머프는 그 찰나의 순간에 또다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어찌나 강력한지 머리 끝까지 올라와 있던 화가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였다.


잠깐 동안 머프와 눈을 마주하던 노예는 나타날 때 와 같이 순식간에 눈의 이채를 꺼뜨리며 입을 열었다.


"……봤다."


노예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수십 년 동안 물 한모금 닿지 않았다고 느껴질 만큼 갈라져 있었다.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얼어 있던 머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봐, 봤다? 지금 봤다라고 한 거야? 이게 어디 주인한테 반말을…… 후, 그래. 그 새끼들이 어디로 가는지 빨리 얘기해."


머프는 노예가 자신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우선 얘기는 들어야 하니 한숨을 내쉬며 화를 삼켰다.


문신의 노예는 고개를 돌려 천장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거룩하신 분과, 하나가 되었다."


뚝뚝 끊어지는 노예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천천히 생각하던 머프는 옆에 있는 부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야, 지금 내가 들은 게 무슨 거룩이진 얼룩인지 하는 분과 하나가 됐다 맞냐?"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부하의 대답에 머프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 새끼도 미치기는 단단히 미쳐있구만. 이거 무슨, 멀쩡한 놈이 하나도 없어!!"


머프는 짜증을 잔뜩 내며 노예에게서 몸을 돌렸다.


"일단 일은 해야하니까 이 녀석 작업이나 쳐 놔. 이번 주 안에 팔아버릴 거니까! "


"예, 두목."


부하는 머프가 노예 사육장을 나가자 한숨을 쉬며 노예를 내려다보았다.


"에휴, 교육은 무슨. 아무리 지랄을 해도 아무런 반응도 안하는데."


성인 장정 셋이서 복날에 개 패듯이 패도 꿈쩍도 안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부하는 진저리를 쳤다.


"근데, 어떻게 두목한테는 대답이라도 했네? 어제 우리가 말 걸 때는 한 마디도 안하더니."


부하는 철창을 툭툭 건들이고는 다른 노예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문신의 노예는 머프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