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 조절 실패로 약간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주의 - 혐오스러운 표현이 있으므로 주의해서 읽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운 머프는 낮에 마주했던 노예의 눈을 떠올리며 자신도 이해 못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았던, 하지만 한 순간 그 눈에 발했던 그 이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두려움이 커져 갈 수록 의문도 커져만 갔다.


"대체 왜지? 난 대채 왜 그딴 노예를 보면서 겁먹는 건데!"


결국 참지 못하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 난 머프는 이 두려움의 원인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 손에 등불을 들고 노예 사육장으로 가자 혼자 보초를 서고 있는 부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두목?"


"별 거 아니야. 난 신경 끄고 계속 보초나 서고 있어."


부하에게 대충 손을 휘저은 머프는 바싹 말라 있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천천히 노예 사육장 안으로 들어갔다.


최근 대량으로 노예를 판매한 탓에 텅텅 빈 철창들을 지나쳐가던 머프는 문신의 노예가 보이자 황급히 등불을 껐다.


군데군데 자그마하게 뚫어 놓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의존해 천천히 노예를 향해 다가가던 머프는 귓가로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버려진 자들의 어머니시여. 오늘도 이렇게 당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함에 감사를 드리옵고……."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노예는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기도와 양 손을 마주잡고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고 있는 노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 커지며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대체 저게 뭐가 무서운 건데!!'


머프는 당장에라도 도망치려는 다리를 움직여 노예가 있는 철창까지 도착하였다.


"우리를 위해 위선적인 신들과 맞서 싸워 지친 어머니를 위해……."


낮에 들었던 건조한 목소리는 대체 어디가고, 정확한 목소리로 기도를 이어가던 노예는 이윽고 기도의 마지막 구절을 읊었다.


"오늘도 당신을 위한 제물을 바치겠나이다."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고개를 든 노예와 눈이 마주친 머프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노예의 눈에 띄었던 이채에 자신이 두려워 했던 건, 포식자가 피식자를 볼 때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는 쏜살같이 자리에서 일어 나 철창 너머로 팔을 뻗어 머프의 목을 붙잡았다.


"커, 커억!!"


노예에게 목을 붙잡힌 노예상인은 그 충격에 신음을 터뜨렸다.


"커, 커어어, 커억!"


머프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노예의 우악스러운 손에 목이 억세게 붙잡힌 탓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희열에 찬 눈으로 보던 노예는 나머지 손으로 배에 그려진 문신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 그려갔다.


천천히, 정확하게 문신을 따라 그려가던 손은 마지막 선까지 그리며 원래 위치에 도달하자 움직이는 걸 멈추었다.


노예가 배에서 손을 때자 서서히 문신이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한 구멍이 나타났다.


대체 깊이가 얼마나 될 지 가늠이 되지 않는 구멍에서, 세 줄기의 촉수가 꿈틀거리며 나왔다.


끈적끈적한 보라빛의 촉수들은 한쪽 면에 달린 이빨처럼 보이는 수많은 가시를 꿈틀거리며 천천히 머프를 향해 다가갔다.


"크, 크어어억!!"


머프는 철창을 넘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촉수를 보며 살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 시도해도, 양 팔로 노예의 팔을 쳐서 떨어뜨리려고 해도, 그 어떠한 것도 머프가 죽음에게서 도망치게 할 수 없었다.


머프의 코 앞까지 다다른 촉수들은 마치 머프를 음미하기라도 하듯이 촉수의 끝으로 머프를 어루만졌다.


뺨, 목, 팔, 다리, 정수리, 귀, 등, 온 몸을 천천히 훑어가던 촉수들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에 환희를 느끼듯 몸을 부르를 떨었고, 이윽고 가시를 바짝 새우더니 머프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억!!!!!!!"


점점 몸을 조여오는 촉수와, 자신의 살갗을 난도질 하며 점점 안으로 파고드는 가시의 고통에 머프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며 고통스러워 하였다.


점점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던 머프는 어두워져 가는 시야 속에서 볼 수 있었다.


노예의 배에 뚫린 공허한 구멍 속에서,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버림받은 자들의 어머니를.


그렇게 머프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로 변하여 촉수와 함께 노예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배를 쓸어내리며 구멍을 닫은 노예는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오직, 어머니의 부활과, 위선된 신들의 죽음을 위하여."





멀찍이 떨어진 감옥 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또다른 노예는 오늘도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힘겹게 비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는 문신의 노예가 온 첫 날, 술 취한 거렁뱅이가 잡아먹히는 것과, 그 다음 날 뻐드렁니 노예와 머프의 부하들이 잡아먹히는 걸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당장에라도 이 감옥을 뛰쳐나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저 노예가 사람을 잡아먹는 건 오직 밤, 그리고 자신이 사람을 잡아먹는 걸 누가 보지 않는다며 단 한 사람만 잡아먹었다.


"흐으, 흐으읍……."


그러니까, 낮이 되서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며 그는 문신의 노예에게서 등을 돌린 채 온 몸을 떨게 하는 공포를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소리와 감옥의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점점 더 커져가는 발소리에 공포는 더욱 더 커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등 뒤에서 멈춘 발소리에 노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감옥 앞에서, 배에 나타난 어둡고 깊은 구멍 속에서 수많은 촉수를 꺼낸 문신의 노예는 그를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오직, 어머니의 부활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