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상 4년이 흘렀다



이미 나의 정신은 이 공간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버린다

현실이 아니지만 너무나 현실같기에 자신을 이 공간에 동화시킨 것이었다


시간은 그러라고 존재하는거니

나도 이곳에 존재할 수 있을 가치는 충분했다

난 이곳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금 6년이 흐른다








넓었다


끝없는 평지, 끝없는 지평선

애석하게도 난 이 공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몇 년간의 기행은 나에게 갇혀있는 존재란걸 깨닫게 해주었고

이동하는 것마다 더 넓어지는 공간은 자유가 아닌 무지함을 활보시켜 주었다


내 기억 속 변하기 전 공간은 확실히 자유는 없었지만

오히려 무지함에서 벗어난 인자는 행복의 의미와는 점차 멀어져갔다


내 복잡해진 감정은 기억의 집합체를 향해 분풀이를 한다




응어리


쉽게 말하면

기억의 실패작


그것은 곧 나에게 시간의 무게를 알려주는 흔적

나의 감정은 이곳에 동화시켜도 역부족이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차차 갈아먹히며

뇌와 의식은 더더욱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된다


시야의 잔재를 보아 앞으로의 유희는

내가 가진 불특정 기억 요소론 버티기 힘들 것이란걸 깨닫고


나의 감각마저도

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현실 또한 아니기에

정처없는 나의 의식은 어딜 향해 가야 하는지 알길이 없었다


또 다시 심란함에 빠져버린 어눌한 나의 감정에

스스로가 짓눌린다



시간의 대가는 현실에 있던 갈증의 매커니즘과 같이

오랫동안 채울 수 없는 유한성


그렇다해도 앞서 채우기에 내 기억은 곧 고갈될 소모품이었고

단순한 물질과 놀잇거리를 만들어 봤자 금방 시시해질 것이다


벌써 기다리다 지루해진 나로서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고



........



근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만약.. 정말 만약에

여긴 가상현실이 아니고

또 실험당하는것도 아니라면



나란 존재는 이곳에 나갈 수 있을까..?



감정의 동요가 밀려온다

가상적 육체의 가슴을 텅 비게 만드는,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는 전율


난 여기서 빠져나올 확신이 전혀 없었다



더 깊게 팠다간

알게 되선 안될 사실을 깨닫게 될까 겁이났다


생각하기 두려워진다..






예전 나와 지금의 나는

일륜의 가능성을 거짓사실로 받아들여 버티는 불쌍한 피조물

아니 피조물조차 못한 형체가

독자적으로 폭주하지 않게 안정시킬 뿐


정작 지금 미래의 불확실성을 느꼈을 땐

내 정신은 버티지 못하는 상태


그의 역치로

싾인 감정이 극에 달하자

폭력적인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의 기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발견' 인 것일까?



그림을 그리니 잡생각이 사라짐에

마음이 안정되고

그 본래의 형상의 기억을 유지해갔다



우연이 아닌 필연의 행위로 받아들이니

깨달아버린 것이다




생각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실제한다면 얼마나 좋을지를


눈앞에 쓰잘대기 없는 물건이 아닌

진실로 날 의로할 생의 원천을



.....나는

그 녀석.. 아니

나의 친구


그것은 생이었구나..






잠재되었던 무감각적 연은 한없이 드높아지고

이는 생명이 있지 않는 한


이를 만족시켜줄 존재는 없다는 것

죽은 물질로는 내 마음을 채워넣을 수 없다는 것


외로움은 나의 상상력을 가중시켰다




생의 영역은

단순히 자아실현이 아닌

영적 감각을 초월한 상태에서 기억을 되새기는 것


그럴 것이란 내 가상의 논리는

상상력과 더불어 이성을 붙들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실엔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 내는 것


이는 자아가 만들어버린 희망고문


참으로 안쓰러운 작태








체감상 15년이 흘렀다








빨갛게 물들인 바닥을 본다


이는 곧 나를 더 만족시켜야 되는 강박심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으로 억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었고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망각되어간다


내 기억은 한정되있기에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좀 더 재밌는게 필요해.."



살아생전 실제했던 경험을 육체 안 뇌세포에 가득 넣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에 반해 찾고자 하는 기억은


그 주위를 맴돌 듯 계속 뭔가가 생각 날 것만 같은,

이를 알면 내 앞의 모든 상황이 바뀔 것 같은


감미로운 시냅스 인자



하지만 내 소망을 우습게 여기는 걸까..

자꾸 원하는 기억을 비껴간다


짜증이 났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



죽고 싶다..





입질이 엄습한다


왠지 될 것같은 내 마음은

하지 말아야 될 선택을 번복한다



칼을 든다


손목을 썬다



역시 피만 품어져 나올 뿐

의식이 흐려지기는 커녕

정작 중요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 썰고

피에 반신욕을 해도

단지 사지를 갖고 놀아서는

이곳에 나갈 수 없다는걸 알지만


마음은 그걸 원했으니

어쩔 수 있나?


나의 옆 울타리 주위마다 피가 물들지 않은데가 없었다



정신은 끝내 죽지 않는다는 것


피가 멈추고 살덩이가 원래대로 아무는 과정을 보는 순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다



나는 여기서 뭔짓을 해도

스스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순간 내 간절히 원하는 목표



그것은 자살이었다






여기서 죽을 수 있을까?


정신적 죽음은

가능한 것일까?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느낀

색다른 경험, 새로움


그리고

친구의 존재로 느낀 대외감


하지만

그것을 나 자신이 거부한 듯

눈 앞이 바껴선

하얗게 되버린 공간에서의 난

....

여기서 느끼는 건

익숙함을 뛰어넘는 무료



이 극렬한 무료함은

자살도 지겨울정도로

간절함을 배로 만들었다





다시 한번

내 선택을 반성하고


나만의 자아로서 내화된 기억이

지금의 상황을 바꿔줄 혁명의 도화선으로 만들기 위해


미래의 희망을,

새로운 목표를 위해


언제 끝날지 모를

내 기억 속을 매진하기로 한다








체감상 21년








"땅을 파보면 되지 않아?


아니면 날 수 있다고 상상해봐

저 희미한 안개 위 천장에서

출구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아니야 그건 이미 열댓번이고 상상해봤어

할 수 없어, 불가능해


하지만 정말 너말대로..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너가 날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한 거 아냐?

난 날 수 있는데


자 봐봐"



"와.. 멀리도 나네"






내가 스스로 만든 자아와 대화한지 6년 째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타인에게 억지로라도 대화하는 것이

혼자라는 사실을 없애기에 가장 편했다


하지만


자아끼리 말을 주고 받는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웃음이 나진 않지만

현실에선 웃을 만한 기억이라 믿고싶다



이 넓어보이는 공간에 나밖에 없음을 초마다 자각하는 것보단

스스로 자아를 나눠서 대화하는 척이라도 해야

나조차 미쳤다고 여기지 않을 것 같으니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친구의 목소리를 연상해 상상하고 답하지만


이제 그 목소리도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이렇게 해보니 생각나는게 있다


에초에 처음 만난 친구는 내가 스스로 외로워서 만든,

'나 자신을 속인 자아가 아니었을까?' 라고


하지만 그저 그런 사실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가혹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20년 전 그 친구는 실제했다고 나는 믿고 싶었다


그냥 그렇다고만 받아들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나를 괴롭히 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기보단

더욱 그리워진다


그로인한 나의 정신적 상관관계는

내 혈육조차 부정하고 있었다


어째서 가상의 공간에 만난 존재가

현재에 있을지도 모를 내 가족보다 더 원하고 있는건지



나의 기억은 왜 이리

모순적인지..





그 때 느끼던 1년의 가치는 현재의 20년을 겪고나니

앞으로도 영원히 잊고 싶지 않았다



일그러진 정신상태를 정화해준 그의 목소리 없이는

나 혼자선 버틸 수 없다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가 알아서 말해줄때까지 화내지 말걸

그랬다면 지금쯤 친구와 심심하지 않게 대화를 하고

있었을텐데




...아니다

그 때 참았다해도

지금 이 현실을 모르는 나기에

언젠가는 결국

사라져 버릴 것이다



증오할 땐 이의 감정대로 사라졌는데

왜 원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하물며 이기적인 욕망에 견주어

나타나 줄 법 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후회해봤자 늦었다


이곳에 왔을 때

아예 시작부터 나 혼자서

스스로를 개척했어야 했다


잠깐의 쾌락을 얻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면 안 되었다




나는 스스로

자아를 위로해 줄 생명체를 창조하기 위해


시간을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