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취기가 올라 기분이 들떴고 직장사람들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마구 떠들어대는, 늘 그래왔던 회식자리를 끝내고 택시에 올랐다. 


간신히 의식을 부여잡고 목적지를 부르자 택시기사는 늘상있는 일인양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눈부신 간판이 쭉늘어진 밤거리의 모습과 시끌벅적한 소리는 문이 닫히자마자 뚝 끊겨져 버렸다. 안과 밖 엄중하게 나눠진 경계 속에서 묘한 신비로움 느껴져 택시 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옅은 조명으로는 백미러에 비치는 기사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된 뒷머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몹시 조용히 그러나 최소한의 운행을 위한 엔진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기류처럼 감싸고 있었고, 한동안은 누가 먼저 입을 떼는 일은 없었다. 그저 나아가는 차의 관성을 느끼며 시트에 기댄채 고개를 아무렇게나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너무나도 고요해서 금방 흥미를 잃고 잠이 들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충격을 받아 한쪽으로 몸이 강하게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황급히 고개를 들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택시는 도로를 부드럽게 나아갔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핸들을 급하게 꺾을 일이 있었나보다. 


불쾌하다고 하면 불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조용히 가다가 갑자기 그러니 의아한 기분부터 들었다. 사고가 날 뻔했다면 오히려 화가 나는건 운전대를 잡고있는 당사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오히려 정중하게 말을 건네왔다.


"죄송합니다. 괜찮은신가요?"


운전하는 모습만큼이나 무척이나 점잖은 목소리였다. 반면에 이쪽은 아직까지도 술기운이 올라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택시기사는 대답을 재촉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자신의 맡은바 일을 다하며 전방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 괜찮습니다."


갑자기 입을 열어서 그런건지 취해서 그런건지 쉬어빠진 목소리가 어색한 흘러나온다. 민망스러워 입을 다물려던 찰나에 택시기사는 되물었다.


"많이 취하신거 같네요. 목적지까지는 데려다 드리겠지만, 아무래도 몸도 가누기 힘드신거 같은데 집에 전화라도 해보시는게 어떠세요?"


지극히 당연한 권유였지만 흔쾌히 대답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속에서 느껴지는 울렁거림과 이루 말할수 없는 울적함이 올라와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숙이는 척을 했다. 누구나 술을 마시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변한다. 쉽게 기분을 들뜨는가 하면 사소한 계기로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자칫하면 시트에 구토를 한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듯한 모습과 상황. 그런 모습에도 택시기사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단정한 뒷모습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게슴츠레 눈을 뜬채로 그 뒷모습을 자세히 응시했다.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듯한 모습에 한참을 쳐다보다가. 이내 말을 꺼낸다. 그나마 편하게 말을 꺼낸것도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그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자삽니다, 저."


분별력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건만 입에서 나온 말은 되는대로 지껄여댄 주정에 가까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 그러나 한번 내뱉어 버리니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걸까. 고개를 시트에 기대며 가만히 회한에 잠긴채 대답을 이어나간다.


"네, 저 혼자 산다고요. 근데 말이죠. 요즘은 혼자 지내는게 너무 힘드네요. 아주. 아주."


"혼자 사신지 꽤 오래 되셨나봐요?"


"오래되다 마다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니 졸업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갑자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살짝 무안해져 애써 익살을 부리며 말해보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다. 가시가 돋힌 말은 가차없이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3학년때 말입니다. 부모님이 멀리 여행을 떠나셨어요. 아주 멀리."


그럼에도 술술 나불거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수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경청하는듯한 그 자세는 몹시나도 그리운 사람의 버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가지말라고 억지라도 부렸다면... 아니, 차라리 같이 따라갔다면 이렇게 괴롭진 않았을까요?"


당시엔 그저 어린 마음에 혼자 있고 싶어서 은근히 권해드리기까지 했다. 즐겁게 여행준비를 하며 계획을 정하시는 두 분의 일 같은건 더 이상 자기 일이 아닌양 관심마저 가지지 않았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마침내 고개를 숙이며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주 꼴사납게 숨까지 제대로 쉬지못해 멎어가고 가슴이 미어질정도로 꺼이 꺼이 눈물을 흘려댔다. 응어리를 게워내는 것처럼. 그리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누구한테 사과한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 표정은 여전히 알수는 없었지만 무뚝뚝하지만 다정했던 그 모습이 떠올라 더욱 더 서글퍼졌다.


"자신을 책망하지 말아요."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만 같은 인자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평범한 위로의 말이었지만 어설픈 동정같은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초연하고 담담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기분탓인지 조금 처진 그의 어깨에선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도착했습니다."


뭐라도 말을 하려던 찰나에 잘라내듯이 그가 말했다. 택시는 멈춰있었고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착했나보다. 단절된 차 안. 지독하리만치 검게 선팅된 차창을 지그시 바라보자 익숙한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만큼은 아무리 눈을 찡그려본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눈에 새겨넣고 싶었지만 눈가에 고인 눈물 때문인지. 인상자체가 한없이 옅어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저기..."


"이제 혼자 갈수 있을거에요." 


여전히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미소짓고 있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이제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란다."



습기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제일 처음 비춰진 것은 택시의 실내등이 아닌 침대 옆에 있는 스탠드였다. 셔츠 윗부분의 단추 두세개만 풀려 있는걸로 보아 옷을 벗다가 취해서 잠이들어 버린 모양이다.


"택시의 실내등?"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 맥락없는 단어에 의아함을 느끼면서 다시금 저도 모르게 눈을 훔쳤다. 손등이 축축해져 온다. 영문도 없이 서글퍼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