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 순천에는 눈꽃이 휘날렸다. 그토록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며칠 전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 전화를 건 사람은 아는 스님이었다. 속세에 있었다면, 내가 삼촌이라고 불렀어야 했을 그 분께. 전화를 받자마자 삼촌은 내가 맞냐고 물어보셨다. "건형이니?" "네, 맞아요. 어떻게 알고 연락하신거죠?" 일부러 가시 돋치게 말했다. 이 남쪽의 소도시와 그렇게 인연을 끊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어리고 여렸던 내 마음에 그렇게 못을 박아놓았던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삼촌은 웃으시면서 말했다. 
"허허, 네 중학교 친구가 여기 절에 다녀서 물어보게 되었어.." 
"누구요? 은태요?" 
"그랬던 것 같구나.." "
"은태가 알려주데요?"
"처음에는 그 아이도 안된다고 했지. 네가 유일하게 전화번호 남기고 떠나간 사람이라고. 그런데 내가 간곡히 부탁하니까 알려주었어.."
"아, 그래요? 그래서 전화하신 목적이 뭐에요?"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했단다.."
"전화로 하세요. 바빠요."
"아니, 이건 꼭 직접 해야만 하는 말이야... 바쁘겠지만 여기로 한 번만 와주려무나.."
난 가기 싫었다. 여기를 탈출하려고, 이 생지옥을 탈출하려고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겨우 서울에 정착했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서 유년기 때 삼촌과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부 좋은 기억 뿐이었다. 나에게 유일하게 좋은 기억을 선물해준 사람인데, 안 가면 안될 것 같다는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난 결심했다. 가기로.

그렇게 도착한 순천은 많이 변해 있었다. 아파트도 많이 올라와 있었고, 전보다 더 복닥거렸다. 어릴 때 그 지옥이 아닌 것만 같아서 한창 혼란스러울 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도착했니?" 
"네, 지금 역이에요."
"난 선암사에서 지내고 있으니 그곳으로 오려무나." 
"알았어요."
그리고 눈 덮인 선암사 돌다리를 지나자마자, 마치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닌 것처럼 진풍경이 펼쳐졌다.

-다음편에 계속 
(그동안 글에 추천은 계속 누르고 있었는데 글은 처음 써보네요 ㅎㅎ 처음 써봐서 미숙하지만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