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너가 세상으로 나온지 딱 일 주일이 됐단다 정말로 축하한다.

병실에 누워있는 너희 엄마 내 하나뿐인 아내와 너가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는 삶은 계란을 급하게 먹은 것 마냥 가슴이 미어지고 가벼운 감기라도 온 것 같이 기분 좋은 열이 머릿속에 핑 돌았단다. 정말로 내가 아버지가 됐구나. 항상 아버지라고 불러보기만 했지 내가 된 적은 막상 없었기에 상당히 낯선 기분이 드는구나. 아버지는 지금 일을 마치고 너를 보고 오는 길이란다. 너를 보기만 해도 떨리는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구나. 요즘에는 오가는 전철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어버린단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가끔 느끼고 입안에서 기이한 신음소리가 맴돌고 정말 제정신이 아니란다. 너가 태어나고 아버지는 참 이상하구나. 어쩌면 너가 커가는 동안 이 이상함이 계속 될지 모르겠다 생각하니 참 행복하구나. 너무 행복해서 지나가는 불행한 이에게 내 행복을 다 나눠주고 싶을 정도란다. 그래도 부족함이 없단다. 앞으로 너로 인해 더욱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에

물론 너희 엄마를 처음 만났을때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너희 엄마는 아버지에 비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아름다운 여성이란다. 그런 여성과 사랑을 하고 울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상처주고 다시 아물고 결혼하고 결국 너를 만나고 했던 과정들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워서 아버지는 평생을 바치기로 했단다. 엄마에게 부디 잘 하렴. 아버지가 이미 너희 엄마를 많이 울렸기 때문에 너만큼은 엄마를 울리지 않았으면 한다.

명심하렴. 엄마를 울리면 분명히 너의 눈에도 눈물이 나올 거란다. 사랑하는 사람에 마음을 아프게하면 더 아픈건 아프게 만든 본인이란다.

깊은 밤 방금 너의 손을 만지고 오는 길이다. 손이 정말 작더구나. 아버지도 옛날에는 그랬단다. 너와 처음으로 손을 만지기전에 너무 손을 씻어서 다음날 출근 카드에 지문이 안 찍혀서 조금 난감했단다. 지문이 닳을 정도로 손을 씻었구나 싶더라.

버지는 사실 오늘 울었단다. 다 큰 남자가 참 못났지 싶더구나. 너희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너의 작은 손을 잡았을 때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감정이 눈물로 나오더구나. 아버지는 아주 못생기고 엉망이 된 얼굴로 울었단다. 너희 엄마는 옆에서 그런 나를 보고 너무나 예쁘게 웃었단다. 아버지는 이런 모습을 너한테 안 보여서 참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너가 너의 자식을 보여주었을 때 아버지는 또 그런 못생긴 얼굴이 돼서 엉엉 울지도 모르겠구나.

그 때는 늙어서 더 볼품이 없겠지만 빨리 그날이 기대 되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너랑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구나.

학교 갈 때 손을 잡아주고 잠을 잘 때 배를 쓰다듬어 주고 친구랑 싸우면 위로도 해주고 너가 살아가면서 즐거운것들, 관심 있는것들을 같이 나누고 너가 보고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팔을 걷어붙여 도와주고 싶다. 물론 이런 아버지가 너는 얼마 안가 귀찮아질지도 모르겠구나. 어느 정도 시기가 오면 너는 친구 혹은 이성친구, 너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 이끌려서 아버지나 엄마는 안 보이는 시기가 반드시 올 꺼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버지도 그랬기에 잘 안단다. 그저 그런 시기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언제 오나' 싶을 정도로 조금씩 천천히 왔음 싶은게 아버지의 바램이다.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쯤에 아마 너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리고 불만 많고 아픈 청춘을 보내고 있을테고 아버지는 그런 불만을 다 받아주기에는 이미 많이 늙고 초라해졌을지 모르겠구나. 혹여라도 이 편지를 읽고 아버지에게 무슨말이 하고 싶지만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면 말은 필요 없단다.

언어라는건 그저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니 그저 늙은 아비의 손을 한번 잡아주렴.

나는 너의 손을 처음으로 만진 오늘을 기억하며 그날로 돌아가 그 때의 너희 엄마의 미소와 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진 너의 손을 보며 천천히 기억 속에 젖어들고 싶구나.

그저 사랑한단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