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가, 남편 

 

  나는 남편의 그 맹수 같았던 눈빛을 기억한다.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남편은 항상 먹잇감을 뒤쫒는 맹수 같은 눈빛이 되고는 했다. 꿈이 눈앞에서 엉덩이를 보이며 달아나는 먹잇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남편에게 이끌린 것은 순전히 그 눈빛 때문이었다. 그 눈빛을 내 두 눈으로 마주하고 있노라면, 나는 마치 예수에게 선택받은 사도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의 꿈의 선로를 함께 여행한다면, 퍽 만족스러운 인생이 되겠구나, 적어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겠지 하는 확신이 내 몸에 심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열다섯 살 쯤부터 남편에게 인생을 던질 것을 굳게 결심했고, 다른 어떤 수칙들보다 내 의식 속 깊이 새겨두었다. 그렇게 나의 꿈은 남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되었다. 어찌 보면 침식당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남편의 꿈은 작가였다. 정확히는 소설가. 남편은 다섯 살 때부터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책만 읽어댔다. 무엇을 다루든, 무슨 말을 얘기하든 그저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시댁 식구들 말에 의하면 제대로 된 발음을 뱉어내는 것보다 어떤 글을 읽어나가는 것이 훨씬 앞섰다고 했다. 다섯 살 짜리가 책을 옆에 한 가득 쌓아놓고, 하루 종일 꼼짝도 않고 읽기만 해나가는 것은 부모나 교사 입장에서는 보기 좋은 모습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그건 그저 단순히 미친놈이었다. 딱 한 번인가, 남편이 책을 빼앗아서 도망된 남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남편은 조용히 숟가락을 집어 들고는 그 녀석을 쫒아가서 정수리를 사정없이 찍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남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손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되찾아온 책을 읽어나가는 다섯 살짜리 남자애를 생각해보라. 그게 미친놈이 아니면 뭐가 미친놈인가.

   그렇게 책만 읽던 남편은 정확히 열 살이 되자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나온지는 십 년이 되었지만, 진짜로 태어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듯이 말이다. 쉽게 말해서 껍질을 깨부수고 나왔다. 남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정점이 되려했다. 그리고 정점이 되었다. 모든 시험에서 모든 답을 맞췄고, 자기 주변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는 어떤 종목이든 가리지 않고 가장 운동을 잘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모두에게 첫 번째가 되어주었다. 남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남편은 기계적으로 가뿐히 해내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중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그 시기에 자신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누군가 예전부터 정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이 올 때면, 남편은 항상 일관되게 작가라고 적어서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왜 작가가 되고 싶니, 선생님이 남편에게 질문하면 남편은 항상 똑같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으레 선생님들은,

  「모르겠다고? 이유도 모르겠는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거니?」

라고 물어보기 마련이다. 그러면 남편은,

  「왜 작가여야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작가여야만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기억될 겁니다. 내 작품과 내 삶은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을 가지게 할 것이고, 많은 해답들을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되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대답하고는 하는 것이다. 물을 때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대답했다.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일도 없었다.이유를 모르겠다는 대답과는 정반대로, 말투는 굉장히 조리있고 명확해보였으며, 신념에 가득한 것이었다. 다른 가능성이라던지, 일말의 의심 같은 것은 남편의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남편의 눈빛은 그 대답을 할 때면 그 어떤 것보다도 날카로운 것이 되었으며, 그 초인적인 기세라고 해야 할지, 범상치 않음에 압도된 선생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을 자리에 앉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고백을 받았던 것은 열네 살, 여름방학이었다. 7월 중순의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남편의 전화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 집의 전화기를 울리게 했다. 나는 요컨대 그 때까지 남편과 전화를 하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이 몸에 휘감고 다니는 폭풍은 유독 나만을 피해갔고, 나에게 있어서 남편이란 그저 계속해서 같은 반에 걸리게 되는 희한한 녀석에 지나지 않았었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여보세요?」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편은,

  「집에 있구나. 있을 줄 알았지.」라고 말했다.

   어이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첫 마디였다. 밑도 끝도 없이 전화해서는 집에 있다는 걸 왜 굳이 확인하는 거지? 따로 조사라도 한 건가? 얘가 왜?

   그러나 내 의문 같은 건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어서 나에게 통보를 이어나갔다.

  「20분 뒤에 너희 집 앞으로 나와. 그럼.」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20분 뒤에 나오라던 남편은 10분 만에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쟤가 왜? 무슨 이유로 나를 찾아왔을까? 왜 우리 집 번호를 알아냈고, 왜 우리 집 주소를 찾아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왔을까? 저 애가 무엇이 아쉬워서 나를 찾아 온 거지? 창문 밖을 내다볼 때마다 남편은 버림받은 애완견마냥 우리 집을 쳐다보았고,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남편을 보러 나가게 되었다.

  「정확히 20분이네.」나를 보자마자 남편이 꺼낸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뭐라고?」

  「딱 20분 뒤에 나왔다고, 너 말이야.」

  「그럼 10분 만에 우리 집 앞에 나타난 게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거야?」

  「너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지. 10분 정도면 널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아냈어?」

  「그런 게 중요한가?」

  「나한테는 중요해.」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닌가? 네가 그걸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정말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닐텐데. 이미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내 앞에 있지.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무슨 일인데?」

  「너가 필요해.」

   일순간 공기의 흐름조차 정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작품을 만들게 될 거야. 근데 나는 그 마지막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려낼 수가 없어. 그 부분만 누가 잘라낸 것 같아. 근데 어느 순간 네가 눈에 들어오는 거야. 널 보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어. 내가 왜 지금까지 저 애를 알지 못했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왜 너를 보지 못했던 거야? 저 애가 바로 그 결말을 만들어줄 주인공인데! 하고 말이야.」

여기에 뭐라고 답변했어야 좋은 대답이었을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냥 알았다고 받아들여야 했을까? 무시했어야 옳았을까?

  「그게 다야?」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내가 왜 너가 그렇다면 그런거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데?」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너는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말이지.」

  「싫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편의 두 눈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너는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이미 모두 정해진 거고, 나는 너에게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는데, 너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싫다는 거야? 나는 그런 남편의 오만함에 구역질이 나서,말을 더 이어나갔다.

  「니 주변 사람들이 니 멋대로 움직이니까 너한테 무슨 명령할 권리라도 생긴 거 같아? 난 있잖아, 예전부터 너가 싫었어. 이 싸이코 새끼야. 너가 뭔 생각으로 살아가는지는, 씨발, 알고 싶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싫다고. 도대체 뭐가 다 정해져 있다는 건데?」

  「너는 그런 걸 알 수 없는 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이 등신아. 누가 얘기라도 해주디?」

  「얘기는 해주지 않아.」

  「그럼 뭔데? 꿈에서 계시라도 받냐? 예언자라도 돼?」

  「자연스럽게, 때가 되면, 여기로 들어와.」말을 끊을 때마다, 남편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치면서 말했다.

  「야, 그거 정신병이야. 과대망상증. 느그 엄마가 그런 말 안하냐?」

  「그건 당연하지. 엄마한테 이런 건 말하지 않으니까.」

  「아, 그래, 그래. 그랬으면 진즉에 정신병원에 처 박혔겠지.」

  「너가 나를 깎아봤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네, 네. 그렇게 생각하시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편에게서 등을 돌리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남편은 내 등에 대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날 거절할 수 없게 될 거야.」

   내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게 이끌리게 될 거야.」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닫히기 직전에 남편은 이렇게 외쳤다. 남편이 그렇게 목청껏 외치는 것을 나는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듣지 못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리고 일 년 뒤, 나는 남편에게 인생을 던지는 여자가 된다.

 

  거기에 별 다른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남자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시시껄렁함과, 그걸 감추려 덮어씌우기에 급급한 그들의 허세를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듯한 표정과 기세를 저마다 몸에 빙빙 두르고는, 비슷한 부류들과 모여 몰려다니는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인 마냥 행동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애들에게 꿈이 뭐냐,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뭐냐라고 물으면, 그들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혹은 아무것도 스쳐지나가지 않거나. 이따금씩 현재가 즐거우면 된 거야, 즐거운 오늘이 쌓이면 즐기는 미래가 되는 거지라며 말을 덧붙이는 남자아이도 있었으나, 그럼 너는 다음에 이어질 너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거네. 너는 계속 이대로 살고 싶다는 거니? 라고 내가 쏘아붙이면 금세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는 자리를 피하곤 했다. 다양한 남자아이들이 나의 열네 살과 열다섯 살에 나타났지만, 진부함이라는 항목으로 분류하기라도 한 듯 모두가 그런 식이었다. 내 마음을 사기위해서 뛰어 다니는 남자아이는 있었어도, 내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남자아이는 오직 남편밖엔 나타나지 않았다. 거기에서부터 나는 이미 다른 남자에게 이끌릴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남편의 고백이라 해야 할지, 명령이라 해야 할지, 예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을 발로 걷어찬 후의 나와 남편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남편의 시선을 즐기기 시작한 것 일 테다. 모든 이들이 찾는 이가 오직 자기만을 찾을 대, 자기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볼 때에 찾아오는 만족감-허영심이라 해도 좋다-은 정말 겪어본 이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때의 그 일이 있고서, 남편은 내가 남편을 흘깃 쳐다보기만 해도 자동센서라도 달린 것 마냥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는 했다. 옆에 누가 있든, 자기가 뭘 하는 도중이든 말이다. 너를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겠다. 너의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주겠노라고 내 마음의 장벽을 그렇게 두드려대고는 했다. 나는 남편의 그 점을 때때로 재미삼고는 했다. 남편 옆에 이상한 여자애가 살랑거리고, 남편이 사람 좋게 그것에 답변해주고 있을 때면, 나는 그저 남편을 지긋이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남편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는, 지금 자기의 세상에는 나 밖에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남편 옆에 들러붙은 여자애는 그저 한참을 떠들다가, 남편이 자기의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남편의 시선의 끝에 있는 나를 슬쩍 보곤, 남편을 두세 번 부르기 시작한다. 남편은 거기에 응답하지도 않고,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저 나를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 후에 나타나는 그 여자애의 속된 말로 개 빡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나의 온몸을 휘감고, 강하게 조여 오는 것이 느껴졌다. 오르가즘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나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암컷들의 우위에 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남편을 통제할 수 있다. 내가 원한다면 남편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남편이 나를 손에 쥐기 위해서 보란 듯이 던져놓은 덫이었지만, 그 덫을 피하기엔 그것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