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멀쩡한 놈보단 소신 있고 행동력 있는 미친놈이 훨씬 낫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남자와 비교하고 나발이고, 남편이 나를 볼 때 그러하듯 내 시야에도 남자란 남편 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갔으므로, 남편의 그러한 반응을 충분히 즐기다가 나는 열다섯의 생일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 생일날, 나는 친구들을 모두 뒤로 하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남편의 손목을 잡아끌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남편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내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이 나에게 말하던 것처럼,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처럼 말이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나보네.」남편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지 꽤 됐어.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말하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오늘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뭐든지 알고 있는 건 아닌가보지?」

  「필요한 것만 알고 있는 거야.」

   근 일 년만의 대화였고, 고작 두 번째 대화였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고, 오래된 연인처럼 발걸음을 맞춰 길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거나, 느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발 가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공원에 들어서서, 사람들이 좀체 지나다니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남편을 마주보았다. 남편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나를 원하던 그 눈빛이었고, 내 심장은 빠르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입이 바짝 말라서 첫마디를 떼기가 무거웠다.

  「…오늘 내 생일이거든.」나는 그렇게 말하곤, 남편의 두 눈을 쳐다보기가 어려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것도 몰랐군.」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우리 집 전화번호도 알고, 우리 집 주소도 알고, 내가 너를 좋아할 거라는 것도 알았으면서 내 생일은 왜 몰랐던 거야?」

  「너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아니지, 하지만 앞으로 날 계속 만나려면 꼭 알아둬야 할 거야.」

  「계속 만나려면, 이라는 건가.」

  「그래, 보통은 중요한 거라고. 너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계속 옆에 두기 위해서라면 말이야.」

  「알았다. 오늘을 기억해 두도록 하지. 절대 있지 않겠다.」그리고 남편은 뒷머리를 긁으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한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사과를 한 것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완전히 남편에게 빠져들었음을, 어떻게 해도 남편에게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이 남자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주어야 할지 너무 잘 알고 있구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지 하는 것 말이다. 나는 내가 남편에게 방금 받았던 것을 좀 더 머릿속으로 곱씹고, 내가 남편에게 하려고 준비했던 말을 꺼내었다. 나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그래, 그러면 됐어. 그건 그렇고, 나 너한테 선물 받고 싶은데.」

  「선물 말인가? 지금은 준비한 게 없어서 줄 수가 없겠군. 지금이라도 사러가는 건 어떻겠어? 너가 가지고 싶은 거라면 사줄 수 있도록 하지.」

  「너가 준비했는지 아닌지는 이미 너가 말했잖아. 애초에 그런 물건 같은 걸 바랬던 것도 아니야.」

  「그렇다면?」

  「내가 네 여자라는 걸 확인시켜줘.」

  「확인시켜 달라, 그거면 되는 건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람이 잔잔히 불어와 공간을 감싸 안았고, 은은한 침묵 속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적당히 녹아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멎자, 남편은 나에게 한 발 짝 성큼 다가와 나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깊이 키스했다. 남편의 몸은 믿을 수 없이 단단했고, 이질적으로 포근한 것이었다. 남편의 온기는 서서히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나를 덥혀주고, 시간은 꿈같은 것이 되어 내 몸을 궤 뚫었다. 내 팔은 스스로 움직여 남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순간을 온전히 내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일상의 궤도를 벗어난 그 시간은 너무나도 짧고, 너무나도 영원한 것이었다. 나와 남편이 얼마동안 그렇게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남편이 입술을 떼었을 때, 그때야 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눈을 떠서, 나를 보는 남편을 마주보았다. 그 맹수 같은 눈빛을 깊이 응시했다.

  「너에게 약속 하나를 할게.」남편은 나에게 무늬를 새겨 넣듯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모두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남자가 될 거고, 너는 나를 이야기 할 때면 항상 언급하게 되는 여자가 될 거야.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줄게.」그렇게 말하고 남편은 내 얼굴을 찬찬히, 깊게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나를, 이 시간대에 자신 앞에 있는 나를 자신의 어딘가에 저장하려는 듯이. 그리고는 내 두 눈을 들여다보며, 내 영혼에게 닿을 정도로 애절히 말했다.

  「사랑해.」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입술 위에, 나는 입술을 포개었다. 깊게, 더 깊게, 가능할 수 있는 한 깊게. 눈을 감고, 남편이 나에게 깊숙이 다가온 것처럼 남편에게도 내가 깊숙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까처럼 길게 할 필요가 없음을 나는 인지했다. 나는 곧장 입술을 떼었다. 남편은 나를 보면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선물은 만족스러웠나?」

  「응.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 후에 나는 남편과 다음 날이 찾아올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고, 상가를 돌아다니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근처에서 항상 볼 수 있었지만, 다르게 흘러가던 서로의 시간을 우리는 힘을 들여 정성껏 조율해 나갔다. 나는 그 때 알 수 있었다. 누구와 살아가든 사는 것은 비슷한 것이나, 그 살아가는 것에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은 다른 것의 성질을 가지게 될 수 있음을.나는 그렇게 열다섯 살에 남편의 여자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열일곱 살이 되자, 남편은 하나둘씩 자신의 인연을 제거해나갔다. 자기 몸에 두르고 있던 폭풍을 거두고,자신의 삶에 걸쳐져 있는 무수한 인연들에 가지치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열 살 때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의 자신이 백일몽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남편은 조용히 일반 군중들 속에 녹아들었다. 남편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는 세달 만에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정도가 되었고, 그마저도 나를 제외하면 데면데면한 수준이었다. 아니, 일부러 그런 수준을 유지했다. 딱 적당할만큼만 자신의 시간을 투자했다. 내 친구들은 꽤나 오랫동안 내 앞에서 남편의 변화를 안주거리 삼아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그들이 나에게「걔는 갑자기 왜 그런다니?」라고 질문을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나도 몰라, 걔 원래 그래. 알 수가 없는 애야.」

   뭐라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라고 꼬치꼬치 캐물어댔지만, 나는 거기에 답변해줄 만한 어떠한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애들이나 나나 가지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나는 남편에게 질문하지 않아도 남편이 어떻게 답변을 할지 알고 있다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 남편은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그 대답은 그들이 납득할 만한 것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내 친구들에게 남편의 유통기한은 1학년 중간고사 때까지가 끝이었다.

   남편이 그렇게 자기 주변을 조용한 것으로 바꾼 것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집중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확보한 것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성적을 유지하고 나와의 관계를 단단한 것으로 다듬는 데에 쓰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창작에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남편의 첫 날갯짓이었다.

   남편은 개인신상정보를 최대한 숨길 수 있는 구글 아이디를 만들어, 자신의 블로그에 소설을 개시했다. 그리고 소설에 관심이 있을 법한 사이트에 링크만을 남기고, 꾸준히 연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해의 관심이라는 관심은 모조리 남편의 소설로 쏠리게 되었다.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일간 베스트, 인스티즈, 여성시대. 소설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의 게시판을 남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나갔다. 기말고사 때 즈음엔 전용 게시판도 따로 생길 지경이었다. 그 분야의 유명인들은 남편의 소설에 대해 의무처럼 언급을 했고, 남편의 소설은 세포가 분열해 나가는 것 마냥 급속도로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이윽고 사람들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에 포커스를 맞춰나갔다. 소설을 읽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사항인 것처럼. 남편의 이메일로는 출판사에서 보내는 메일들이 수시로 날아들었고, 개중에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이들도 있었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이 자신이라며 사칭하는 사람이 가짜 증거물을 만들어 내면서 인터넷을 활보해댔고, 남편의 소설에 기초해 만들어진 유행어도 사용되고는 했다. 그리고 남편은 어딘가에 댓글 하나 남기는 일 없이 묵묵히 매주 두 번씩 자신의 블로그에 소설을 개시했다. 오직 그 뿐이었다. 그리고 열일곱에서 열여덟로 넘어가는 날, 남편은 연재를 멈추고는 홀연히 인터넷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들을 지우고, 단 한 개의 글만을 새롭게 올려놓고는 말이다. 남편은 단 한 줄만을 적어두었다.

 

     ‘마지막 마침표는 결코 스스로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이다. 사람들은 남편이 벌인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왜곡하려 했다. 남편은 사람들의 입에서 죽은 것이 되었고,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 되었고, 누군가를 죽인 것이 되었다. 많은 소문과 많은 억측들이 맞물려서 맥락을 이루었고,그 맥락들은 사실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저장해두었던 남편의 작품을 퍼뜨리면서, 이미 작품 속에 작가가 자신이 도중에 사라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거나, 남편이 남겨둔 마지막 한 줄을 근거로 들어 우리의 반응이 소설의 연장선이며, 작품의 주제의식과 가장 맞닿아있는 것이라는 추측을 내세우기도 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작가의 친한 친구이며, 자신이 지켜보았던 작가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창작해 내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남편과 남편의 작품은 사람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창작되고, 소비되었다. 남편은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전개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삶을 조용히 유지하기만 했다. 남편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것이 되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추측해본다.

   열여덟 살 4월, 남편은 다시 한 번 날갯짓을 한다.

   이번에 남편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작정하고 드러낸 ‘척’을 한다. 드러낸 척이라고 굳이 말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신분을 자신의 것인 것처럼 뒤집어 썼기 때문이다. 남편은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25살 여성을 자신의 가면으로서 선택했다. 계정에는 그 여성의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 집 주소가 모두 등록되어있었다. 닉네임도 가명이나 필명이 아닌 실명을 사용했다. 프로필에도 그 여성의 사진을 등록해 놓았다. 이번에는 조용히 소설만 개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댓글에 대한 답변, 작품의 모티브와 그것이 가지는 의미 등을 모두 작성해 주었다. 남편의 소설은 이번에도 화제의 중심이었으며, 곧바로 계약에 들어갔다. 인세는 온전히 남편이 뒤집어쓴 그 여성의 차지가 되었다. 그 여성은 올해의 신인이 되었고, 발굴해낸 보석이 되었으며, 힘든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역경을 극복해낸 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남편은 자신의 자취를 홀연히 감춘다. 자신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올렸던 모든 기록들을 지우고, 그 계정의 프로필 문구를 이렇게 바꾸고는 말이다.

 

   ‘커튼 콜이야, 아가씨. 무대의 장막은 걷혀야 하는 것이야.’

 

   남편이 이번에 일으킨 폭풍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화살이 그 여성에게로 빗발쳤다. 어떻게 된 것이냐 묻자, 그 여성은 힘겹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자신은 원래 취미로 가끔 소설을 쓰던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메신저로 연락을 해왔고, 원고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아? 내가 보여줄게. 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는 자신에게 몇 가지의 개인신상정보와, 지속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찍어서 보내기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여성은 왠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그 누군가가 보내준 원고를 읽어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이건 틀림없는 대박이다. 그 여성은 아버지가 넘겨준 부채 때문에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할 정도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잃을 게 없다. 밑지는 것도 없는데 한 번 믿어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그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곧바로 활동을 개시했다. 출판 제의가 오자 계약을 할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고,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연재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출판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일은 완전히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계약은 파기되었고, 그 여성에게 잠시 동안 남편이 선물해주었던 새로운 삶은 파도를 만난 해변가의 모래성처럼 맥없이 스러져갔다. 그 여성에게 접촉한 누군가가 과연 누구냐에 대한 수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 그 여성의 요청으로 조사해본 결과로는 오스트리아에서 그 누군가가 여성에게 처음으로 접촉을 시도했었다고 했다. 아이디 접속 기록을 확인해보니, 파리, 베를린, 워싱턴, 보스니아 등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접속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추적하기가 쉽지 않으며, 굳이 추적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사이버경찰청에서는 의견을 표명했다. 적어도 그 누군가는 그 여성에게 피해를 주려고 접근한 것이 아니었으며, 개인신상정보도 서로의 동의하에 준 것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을만한 근거 또한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피해를 주려고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목격했던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방법 중에서는 가장 잔인한 것이었다. 결국 그 여성은 자살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제야 그 여성에게 쏟아지던 화살은 멈추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다음 과녁은 그 누군가로 옮겨갔다. 왜 그런 선택을 남편이 했었는가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관심을 겨누는 과녁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언젠가 남편에게 이 일에 대해서 너무 심했던 게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선택했었던 건 내 작품에 관한 것뿐이었어. 그런 방식으로 연재를 하는 게 적절한 그릇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나는 나를 드러낼 수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건 너도 알다시피 전혀 논리적인 게 아니지. 나는 그저 적당한 그릇을 선택했고, 결말을 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때 내가 썼던 소설보다는, 그 여자가 선택했던 그 삶이 더 좋은 작품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쩌면 남편은 이 때 있었던 일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남편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열아홉 살에는 어딘가에 자신의 작품을 펼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노트에 손으로 직접 소설을 써내려갔다. 10월까지는 꾸준히 써내려가더니, 그 이후로는 노트의 빈 공백만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저 멍하니 말이다. 남편은 종이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자기를 가로막은 벽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수능을 마치고 난 다음, 나는 남편에게 지금까지 쓴 것이라도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노트 세 권을 나에게 건네었고, 나는 그 날 밤에 그것을 모두 읽었다. 여전히 훌륭했고, 여전히 결말이 없었다. 나는 다음 날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왜 항상 결말에만 오면 이야기를 쓰지 않는 거야? 일부러 그러니?」그렇게 묻자 남편은,

  「나는 결말을 낼 수 없는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지.」라고 답변했다.

  「언제부터?」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나중에 완성하게 될 절정의 작품에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아예 결말 자체를 낼 수 없나 봐. 그래서 익명 속으로 숨은 거야. 내 이름을 걸고는 그런 걸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럼 나한테 부탁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필요한 이유가 그거 때문 아니었어?」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실험작들에 쓰일 만큼 너를 값싼 것으로 여기지 마. 미완성된 이야기를 ‘끝내는 것’ 자체는 누구라도 할 수 잇어. 너만이 해야 하는, 너만이 할 수 있을 때가 오게 될 거야. 반드시 올 거야. 그 때까지 나를 따라와 주면 돼. 무엇인지는 몰라, 어떤 날인지도 몰라. 다만 너만이 거기에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확신해?」

  「확신해.」

   그리고 스무 살에, 남편은 의대에 진학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외과의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