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편이 외과의사가 되었는지, 스무 살의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의 행동양식에 조금은 적응이 되었구나 하는 나의 생각은 그것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 왜 의대에 갔냐, 하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밑입술을 깨물고는, 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강제로 보드카를 삼키게 했을 때 같은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고통스럽지만, 이미 목구멍 안으로 들어온 이상 받아넘겨야 해, 소화시켜내고, 이겨내야만 하지. 나는 그 표정을 그렇게 이해했다.

   남편은 성실하게 대학생활을 했다. 성적표를 A+로 도배했고, 술자리는 자주 나가지 않았지만 교수들과의 관계는 좋은 것으로 만들었다. 돌아와서는 두 시간 정도 공부를 했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곤 등교를 했다. 남편은 책을 읽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다. 남편이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는 했던 자신의 꿈은, 어느새 남편의 삶에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이때 가졌던 유일한 취미는 요리였다. 남편은 주말이 되면 삼시세끼를 모두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 간식도 만들어주었다. 메뉴는 항상 새로운 것으로 정했다. 내가 여태껏 살면서 먹은 음식의 가짓수의 8할 정도는 남편의 자취방에서 먹은 것일 테다.

   남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메말라갔다. 눈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혈색은 항상 좋았고, 체격은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로 인해 더 다부져져갔지만, 그의 영혼이 그러했다는 이야기이다. 남편이 어린 시절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투명한 갈색 눈동자에서 몽글거리던 총기, 열정, 야망들은 서서히 그 빛이 퇴색되어갔다. 남편의 두 눈은 홍채에 먹구름이 낀 듯 흐리멍텅해져 갔고, 시멘트로 메꾸기라도 한 듯 감정 하나 제대로 담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기능하고 있을 뿐인 의대학부생일 뿐이었다.

   남편이 3학년 과정을 밟고 있는 해의 장마철에, 그때 보았던 남편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번개가 유독 많이 떨어지던 날이었다. 나는 문득 새벽에 눈을 떴고, 남편은 집 안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는 누군가가 바락바락 악을 써대고 있었다. 나는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거기에는 벌거벗은 남편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 빗속에서 남편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질러대었다. 거기에는 벌거벗은 남편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 빗속에서 남편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질러대었다. 손찌검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제자리에서 펄쩍거리고, 무릎을 꿇고 흐느끼기도 하다가, 벌렁 누워서는 소리를 질러대며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쿵쿵 갈겨대었다. 남편은 절규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너져서 절규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무슨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어댔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남편은 그때 언어를 뱉는다기보다는 감정을 뱉어내고 있었다. 신내림을 받은 이가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는 것처럼. 남편은 꼬박 한 시간을 그러다가, 도어록을 열고 터덜터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 남편은 분명 앞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을 안아주었다. 비에 젖은 남편은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고, 스티로폼처럼 부피에 비해 속없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그런 남편의 상태와는 별개로, 남편의 실력은 명성이 자자한 것이 되어갔다. 남편은 대학 내에서 의술의 신처럼 떠받들어 지고는 했다. 담당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화타의 재림이라던가. 그 말인즉슨, 무언가 빙의라도 한 것처럼 실습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과정들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방법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그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처럼 말이다. 교수가 남편에게 배운 적이 있냐고 묻자, 남편은 그저 덤덤히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보여서 행동했을 뿐입니다. 라고.

   교수에게는 자신감처럼 느껴졌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어딘가 슬픈 구석이 느껴졌다.

   외과의사가 되고 난 다음의 남편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안전바를 내리지도 않고서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험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번 어려운 수술만 했다. 가망이 없는 환자를 찾았고, 위험 부담이 높지만 치료 효과는 확실한 방법만 사용했다. 그리고 데이터나 수치를 우스운 것으로 만들며 수술을 성공시켜 나갔다. 남편의 명성은 물에 물감을 풀 듯 번져나갔고, 전국의 산송장들이 남편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남편을 예수나 석가모니를 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환자가 아니라 신도였다. 그리곤 남편은 기꺼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한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기적을 베풀었다. 남편이 수술하는 걸 지켜본 이들 중에서는 이런 말을 한 의사도 있다.

  「의술은 분명 과학의 영역인데, 나는 오늘 마술을 보았고, 신학의 영역에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온 것 같소이다.」

   이 기간 동안 남편은 내 주변사람이 아니었다. 외지의 것이었고,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근 오 년 가까이 집에 들어와서 잔 적이 없다. 남편은 완전히 병원에 부속되어있었다. 동료들의 말로는 하루에 잠을 세 시간 이상 잔 적이 없음에도 피곤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수술 도중에 위급한 상황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수술 시간은 언제나 말도 안 되게 짧았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남편이 의학 드라마 주인공이었으면 참 엄청나게 재미없는 드라마였을 거라고.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은 단 열 명의 환자만을 더 치료하고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병원에 했다. 엄선된 열 명의 나사로들이 병원으로 왔고, 살아서 돌아나갔다. 남편은 명성의 정점에서 방점을 찍고는, 집에 돌아와서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도 않고 잠만 잤다. 쥐어 패도 꿈쩍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완전히 방전되어 있었고, 나는 죽지 않게끔 하루에 세 번씩 물을 입에 가져다주었다. 그것만큼은 깨어있는 것처럼 잘 받아마셨다.

   그리고 남편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두 눈을 보고 나는 직감했다.

   예전의 남편이 돌아왔다는 것을.

   그러나 남편의 방향은 예전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눈을 떴을 때, 남편은 무언가 굉장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 아픈 데 있어?」나는 물었고,

  「만들어와.」남편은 그 때까지 써본 적도 없는 강압적인 말투로 내게 명령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답답하다는 듯이 앞머리를 움켜쥐며, 신경질적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야, 밥 만들어 오라고. 말귀 못 알아들어?」

   나는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오 년 만에 집에 겨우 붙어있게 된 것도 있고 그 동안의 생활에 나름의 노고가 있어 투정이라도 부리려는 건 아닌가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화를 꾹 밀어 넣고 부엌으로 가서, 말 없이 식사를 만들었다. 남편은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듯 식탁에 앉아서,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는 나를 아랫것 보듯이 바라보며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밥을 하는 동안 검지로 식탁을 툭툭 건들면서 꾹 밀어 넣었던 내 화를 슬슬 건드리기도 했다. 나는 남편의 앞에 밥을 내놓았고, 남편은 한 숟가락을 먹더니 내 그릇까지 집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대로 그것을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내 스위치는 탁하고 올라갔고, 과다한 전력으로 인해 이성의 퓨즈는 툭하고 끊어졌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건데 이 새끼야.」

  「안 보이냐? 쓰레기 버리고 있잖아.」

  「지랄하고 싶어서 집 기어들어왔냐? 오자마자 왜 개지랄 떠는 건데? 병원에서 떠받들어주니까 이젠 부탁하는 법도 잊어버렸는가보지?」

  「여긴 내 집이야. 기어야 하는 건 너지. 내 집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 거고.」

   나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비웃으면서 말했다.

  「왜, 아니꼽냐? 꼬우면 나가. 그러면 되잖아.」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이빨만 벅벅 갈며 남편을 노려보자, 남편은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하긴, 너한테 그런 배짱이 있을 리가 없지. 넌 그저 끌려다니기만 하는 겁쟁이니까.」

   그렇게 말한 뒤 등을 돌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분노와, 그보다 앞서는 의구심들이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그 때에는 어떻게 해도 ‘왜?’라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좀체 빼낼 수 없었다. 남편에 관한 것에는 그것으로 어떠한 정답도 도출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남편은 왜 나에게 그런 말투로 이야기를 했는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 왜 나를 보며 그런 태도를 갖추었을까? 예전부터 숨겨왔었던 본심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마음에서 내가 퇴색되어서, 이제는 싫증난 것으로 변했는가? 일주일 동안 집에서 잠만 자던 사람이 무슨 볼일이 있어서 집을 나섰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문의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현기증이 나서 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몸을 눕히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 산소를 공급했다. 그리고는 내 의문들을 이런 생각들로 덮어씌워나갔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너가 제일 잘 알잖아. 의도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 서서히 드러날 거야. 남편을 견뎌. 너의 남편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거야. 생각하려 하지 말자. 너의 남편은 생각으로 닿을 수 없는 그런 영역에 위치해 있으니까. 나는 나의 의문들이 의식을 침범할 수 없게끔 꼭꼭 밀봉해놓은 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멀찍이 던져놓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내 삶은 이렇게도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구나. 나는 남편은 흔들만한 그 무엇도 쥐고 있지 않은데. 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 오랫동안 잡아두고 있었다. 동굴 속에서 어렵사리 피워낸 모닥불처럼.

   그 날 새벽 늦게 돌아온 남편은 밤새도록 화장실에서 토사물을 변기 위로 쏟아내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그 때까지의 자신을 비워내기라도 하듯이. 나는 남편이 토악질을 해대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은 토악질을 멈추고는, 긴 시간동안 자신의 몸을 씻어내었다. 그리고 침대로 들어와, 나를 뒤에서 껴안고는 조용히 흐느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남편의 숨에서는 독한 술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깊은 고독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날 밤, 짙은 물안개 속을 걷는 꿈을 꾸었다. 물안개가 너무나 짙어서, 마치 먹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먹구름 속에서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다면 딱 이렇겠구나 싶었다.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그저 앞으로 걸었다.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고, 이윽고 뛰기 시작했다. 숨이 차올랐고, 폐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뇌에게 외쳐댔고, 다리는 고통으로 타올랐다. 나는 뛸 수 없을 때까지 뛰었다. 거기에 답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조차도 몸에서 차차 지워져갔다. 나는 끝내 달리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그러자 내 몸은 서서히 바닥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물컹하고 끈적거리는 것들이 아가리를 벌리곤 내 다리를 서서히 빨아 삼켰다. 나는 발버둥 쳤다. 그리고 발버둥 칠수록 내 몸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들은 더 끈적하게 나에게 들러붙었다. 살려줘. 나는 목이 터질 듯이 구원의 비명을 질러대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가서 닿지 못하고, 공허한 것이 되어 물안개 속으로 스러져버렸다. 내 몸은 완전히 잠겼고, 그러고도 더 깊게 잠겨들었다. 시야는 어두워지고, 이윽고 몸의 감각들도 불이 꺼지듯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남편은 내 얼굴 위로 방향제를 분사해대고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서서,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검지를 꾹꾹 눌러대었다. 뿜어져 나온 방향제는 내 얼굴 위로 흩날리며 내려앉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손으로 얼굴을 털어내었다. 손에는 방향제가 흠뻑 묻어있었다. 입고 있는 잠옷의 목부근이 흥건히 젖어있는 것으로 보아 한참을 뿌려댔던 모양이었다. 나는 손을 휘둘러 남편이 들고 있던 방향제를 후려쳤다. 방향제는 남편의 손을 떠나,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남편은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태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데?」내가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자, 남편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냄새 나, 너.」

  「냄새? 하. 냄새라고 했냐, 너?」

  「어, 썩은 내 나. 너한테서.」

  「뭐가 불만인데, 너?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너한테?」

  「불만도 없어, 잘못도 없고. 그냥 너한테서 나는 냄새가 견딜 수가 없을 뿐이야.」

  「개 헛소리 하지 말고, 이 새끼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냄새가 난다는 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닐 텐데.」

  「너 왜 그러냐고, 왜! 집에 오 년 만에 쳐 기어들어 와서 아내한테 한다는 게 이딴 유치한 짓 밖에 없어? 너 아무 이유 없이 움직이고 그러는 사람 아니잖아, 어?」

  「그렇다면?」남편은 나에게 돌을 던지듯 그 질문을 던졌다.

  「뭐?」

  「아무 이유 없이 움직인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

  「왜 갑자기 가정질이야. 어울리지도 않게. 묻는 말에나 대답해.」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인가?」

  「그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지.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사람이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럼 뭐, 누가 아는데? 누가 너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누가 너를 지켜봐주려고 하는데? 누가 너를 기다려주려고 하기라도 하는데?누가 너를 받아들이려고 노력이라도 하는데, 어?」

  「너가 알던 나는 스무 살 때 끝났어.」

  「아, 그러세요. 끝나셨구나. 그래서, 그래서 뭐?」

  「그 때부터 너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 없게 되어버린 거라고.」

  「그래서, 너가 말하고 싶은 건 그거야? 필요해서 데려왔는데, 이젠 필요도 없고 옆에 두기도 싫으니까 꺼져 달라 이거 아니야?」

  「굳이 그렇게 말하자면 그렇지.」

  「싫어.」나는 남편에게 못을 박듯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쉽게 없어질 거라 생각하지 마. 너한테는 그저 없어도 되는 재산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내 영역이야. 내가 정리하고, 내가 가꾸고, 내가 유지한 내 영역이라고.」

  「정리, 가꾸기, 유지, 보수.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그런 정체야.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해. 무가치하다고.」

  「너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 적어도 내 손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이 공간만큼이라도. 너가 집에 안 들어와도 돼. 나한테 연락 한 통 없어도 돼. 그건 너가 너의 해야 할 일을 잘해내고 있다는 거니까. 근데 있잖아. 만약에 너가 무너지면 그 때는 어떻게 해? 그 때의 너는 무엇으로 너를 일으킬 건데? 없어. 너한테는 없다고. 앞으로 나아갈 길만 있지. 멈춰 있을 곳 같은 건 없어. 그러니까 나는 너한테 그걸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니 감정이 내 주도권을 틀어쥐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에게 결국 매달리듯 울부짖게 되었다. 나는 버림받기 싫어 주인에게 매달리는 개가 되었다.

  「그렇게 했는데 나한테 주어지는 게 고작 이런 거야? 그런 말 뿐이야? 너가 나한테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퍼붓는 의도적인 상처뿐인 거냐고, 어? 왜, 왜, 왜!」

   남편은 흐느끼는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고요한 침묵만을 남기고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나는 울다 지쳐서 그대로 쓰러져 잠에 들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골프채를 휘두르면서 집 안의 모든 것을 박살내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의자, 식탁, 장식장, 유리창, 싱크대, 그릇, 전등, 빨랫대, 세면대, 화초, 어항, TV, 컴퓨터, 오디오, 화장대, 거울. 남편은 집 안 곳곳의 구성품들을 꼼꼼히 작살내었다.나는 눈앞에서 보여 지는 그 수직적인 폭력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그것들을 선택하면서 보냈던 시간, 머릿속으로 그려대었던 남편이 집 안에 있는 풍경들을 생각하면서, 그것들이 산산이 박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물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고,껍데기만 남아서 바닥에 흩어져 자신의 무가치를 드러내었다. 남편은 골프채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누군가의 차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경적이 시끄럽게 삐익삐익 울려대었다. 남편은 거칠게 숨을 내뿜으며, 나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보였어. 너가 날 위해 준비했다던 이 공간은.」

   그 때만큼 남편이 먼 것으로 느껴졌을 때가 없었다. 남편의 그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더 없이 슬픈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라는 질문으로 남편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걸 알지만, 왜라는 질문에 남편은 해답을 주지 않을 것이지만, 그 때만큼은 남편에게 너무도 이 말이 하고 싶었었다.

왜 그런 눈빛인데. 라고.

   하지만 그 질문의 결과가 너무 뻔한 것이기 때문에,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거였어?」

   그 질문이 남편의 마음을 조금 허물었던 것인지, 남편은 잠시 눈을 아래로 내려 깔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변해주었다. 지극히 남편답게.

  「이렇게 해야만 했어.」

   나는 그 대답이면 되었다. 왜냐면 남편에게서 그 이상의 답변은 바랄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나는 거실에 남편을 남겨두고는, 무가치해진 안방에서 최소한의 짐을 쌌다. 그리고는 집 밖을 나섰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으로, 앞으로 걷는 것뿐이었다. 걷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님에도, 그러면 무언가 주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언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걸었다. 익숙한 거리를 지나고, 익숙한 가게를 지나쳤다. 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낯선 것은 낯선 것이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되어주지 않았다. 나는 이윽고 꿈속에서처럼 앞으로 나간다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