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8/06/12 GMT 10:12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오늘은 인류의 우주 개척 역사에, 그리고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날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던 무모하면서도 위대한 항해를, 지금 디스커버리의 승조원들은 시작하려 하고 있다.


산업 혁명 이후로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며 우리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듯이, 기술은 우리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다. 공장에서 제품 하나가 새롭게 나올 때마다 굴뚝에서는 미세 먼지가 쏟아져 나와 파랬던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였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분해되지 않고 망망대해로 흘러가 거대한 쓰레기 섬을 만들고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땅 깊은 곳에 묻혀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이미 지구 온난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동안 우리가 홀대했던 환경이 어느새 우리에게 시퍼런 칼끝을 겨누고 있었다. 이것이 너희들의 오만과 무식, 그 용납할 수 없는 우월감의 결과이다. 너희는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고 있다. 창조주 자연이 너희에게 명령하오니,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가라. 


지구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인류는 그제서야 끝없는 싸움을 멈추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쳤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생화학 무기와 핵무기, 탄도미사일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서둘러 환경을 보전하면서 우리가 파멸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노력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지만 희망을 배신할 때는 있다. 과학자들이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져오던 시뮬레이션을 돌려오면 결과는 한결같았다. 대재앙은 지연되겠지만, 결국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인류가 무엇을 하던, 이제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최대로 잡아봤자 1000년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과가 발표되자, 모든 희망은 없어지고 이제 우리 모두는 멈출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망각행 고속열차에 탄 것만 같이 인간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무질서해져 환경이 우리를 심판하기 전에 자멸의 길을 걸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한 과학자가 인류의 미래를 창조해냈다. 그가 만든 것은 소위 말한느 "워프 드라이브" 엔진으로, 공상 과학 영화나 소설에 자주 나오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기존 동력 기관으로는 광속의 벽에 부딪쳐 외계 행성에 다다르기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워프 기술의 개발로 시공간에 균열을 만들어 불안정한 웜홀을 생성, 아공간으로 들어가 항해한 후 목표 지점에서 다시 웜홀을 생성하여 빠져나오면 실제로는 아무런 물리 법칙도 위배하지 않았으나 우리 시공간에서 보면 광속을 넘어선 속도로 항해를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민주 국가 연합은 각 국가의 우주 연구 기관을 합쳐 재빨리 DCSEF (Democratic States Confederate Space Expeditionary Forces - 민주 국가 연합 우주 탐사대) 를 창설하여 워프 드라이브를 장착한 외우주 항행함의 설계에 들어갔고, 25년이 넘는 노력 끝에 지구 저궤도상 우주 정거장에서 건조된 것이 바로 1세대 외우주 항행함 "SEFS 디스커버리" 였던 것이다.


저궤도 스테이션에 도킹한 디스커버리는 거대했다. 새하얀 선체는 햇빛을 사방으로 반사하며 위용을 뽐냈고, 동체에 달려 있는 2개의 원통 모양의 워프 드라이브는 후면에서 파란색 빛을 내뿜으며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쾅쾅. 누군가 선체를 두드리는 소리에 사령탑에 앉아있던 함장은 그제서야 의식의 흐름에서 벗어나 현실로 복귀했다.

"함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로저."

드디어 올 것이 왔군, 하는 생각과 함께 함장은 의자의 콘솔을 두드렸다.

"컴퓨터, 휴스턴과 암호 통신 채널을 열어."

"처리 중... 완료. 함장님, 이제 말씀하시죠."

"휴스턴, 여기는 디스커버리다. 보급품의 적재와 승조원들의 승선 모두 완료되었다. 지시를 기다리겠다."

통신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다, 디스커버리. 최종 점검을 진행할 때까지 대기하라."

"로저."


그 시각, 휴스턴 DCSEF 본부


와이어는 통신 화면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계단을 올라가 관제 센터의 사령 타워로 향했다. 수백 명 규모의 외우주 항행함을 발사한다는 초유의 사태에 관제 센터는 본래 운영 정원을 훨씬 넘어선 인원이 들어서 있었다. 맨 앞의 대형 스크린에는 디스커버리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와이어는 왼팔의 콘솔을 조작해 전체 방송을 실행한 다음 말했다.


"비행 감독이다. 발사 준비 최종 점검을 시작한다."

"알았다, 휴스턴."


저궤도 스테이션의 관제 담당자가 대답했다.


"시스템이 준비됐는지 점검한다. 준비 여부를 알리도록. 카운트다운?"

"카운트다운 준비 완료."

"계시 담당."

"준비."

"QAM1."

"준비."


중앙 대형 스크린에서는 이제 푸른 지구를 배경으로 도킹을 해제하는 디스커버리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디스커버리 양날개의 DCSEF 마크는 그날따라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QAM2."

"준비."

"QAM3."

"준비."

"FSC."

"준비."


이 자리에는 민국련의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온 귀빈들이 모여 있었다. 그 때문에 관제 센터의 사령 타워 역시 평소보다 붐비고 있었다. 발사 최종 점검을 진행하는 와이어의 바로 뒤에는 워프 드라이브를 개발하고 DCSEF의 추진 기관 연구소 소장이 된 카일 박사가 앉아 있었다. 그의 발명이 지금 이 순간을 가능케 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디스커버리의 항해가 실패한다면 이 책임은 온전히 그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이 계획에 투자한 그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지구에서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꼭 성공해달라는 그의 심정은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 소망은 디스커버리의 승조원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추진 엔지니어 1."

"준비."

"추진 엔지니어 2."

"준비."

"PTO."

"준비."


그 시각, 타임즈 스퀘어의 대형 전광판은 모두 디스커버리의 모습을 송출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발사 최종 점검을 하는 와이어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임즈 스퀘어를 가득 채운 인파는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평정과 질서를 유지한 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ACC."

"준비."

"LWO."

"준비."

"AFLC."

"준비."

"PTC."

"준비."

"워프 드라이브 감독."

"준비."

"아공간 통신."

"준비."

"모든 시스템 수치 정상. 여기는 저궤도 스테이션 발사 관제, 발사 준비 완료."

와이어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여기는 비행 감독, 예정대로 발사 시퀀스를 진행한다."

"로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15......14......13......12......11......"


전 세계의 모든 방송국들 역시 이 화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열띤 토론을 진행하던 패널들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모두 조용히 디스커버리의 모습을 보고 있었고, 이를 시청하는 전 세계의 모든 이들 역시 숨죽이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0......9......8......7......"


디스커버리의 함장은 의자 팔걸이를 꼭 잡으며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시여, 부디 이 항해가 성공하기를, 우리가 모두를 구원할 수 있기를, 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기를.


"6......5......4......"


"워프 드라이브 가동."


"3......2......1......"

워프 엔진 뒷면의 파란 불빛이 점점 강해지며 선내의 진동 소리 역시 점점 커졌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그 소음에 디스커버리의 승조원들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디스커버리, 출항."


디스커버리는 저궤도 스테이션에서 벗어나 안전거리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워프 드라이브가 활성화되자, 디스커버리는 마치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이것이 성공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관제 센터의 사령 타워 역시 침묵에 빠졌고, 와이어는 몇 초 후에 겨우 그 침묵을 깨는 데 성공했다.


"여기는 휴스턴, 디스커버리 응답하라."


통신 채널은 침묵을 지켰다. 1초, 2초, 3초, 4초. 시계의 초침이 움직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관제 센터의 모두는 닥쳐오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5초, 6초, 7초. 제발, 제발 응답해줘. 제발 성공했다고 빨리 대답해 줘. 하지만 야속하게도 통신 채널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8초, 9초, 10초.


"여기는 휴스턴, 디스커버리 들리나?"


11초, 12초, 13초. 관제 센터에서는 이제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미 몇몇은 포기한 듯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14초, 15초, 16...


"여기는 디스커버리, 잘 들린다. 이쪽 통신 장교의 착오로 응답을 보낼 수 없었다. 발사는 성공이다."


그 순간, 세계의 모두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