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습니다. 민재."


 그 바로 다음날이었다. 조금 특이사항이 있어서,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할 듯 싶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집 안에 있고, 리돌은 문 밖에 서 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일반적인 경우 문 밖에 리돌이 서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 녀석이 나와 같이 먹을 것을 사러 슈퍼에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가 지금까지 이 녀석이 나가는 것을 본 적이 한 번인가 두 번 밖에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녀석이 오늘 아침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벽 댓바람부터 어디를 가겠다고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였고, 나는 졸린 기운에 그냥 그러라고 하였다. 집 밖에 나가지도 않는 녀석이 자기 발로 나가면 좋은거지 생각하며. 그리고 그렇게 오전이 지나가고, 오후가 지나갔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 까지도 리돌은 돌아오지 않았고, 잠시 찾아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기 시작할 때, 땅거미가 질 무렵에서야 리돌은 집으로 돌아왔다.


 품 안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서.


 리돌은 굉장히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마치 고등어와 같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제발 그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지 말아줘. 너, 고양이 니 녀석도 임마. 지금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까. 확실히, 리돌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먹어야 된다, 무엇을 입어야 된다 라는 지구 생활의 기초만을 알려준 것은 맞다. 하지만 아직 가르칠 것이 태산 같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직 심화과정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라던가, 아니면 살고 있는 집의 공과금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등등. 특히나, 반려동물에 관한 것은, 아예 떠오르지조차 않았던 항목인데, 갑자기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다. 리돌의 품에 안겨 있는 조그만 생명체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는 것.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보던 전개인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겠지? 그렇지? . 

 일단 사태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한 초석으로, 나는 1단계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이건 뭐니?"


 나의 어이없는 질문에 대답한 것은 리돌이 아니었다.


 "이 몸을 '이것'이라고 부르지 마라, 미천한 지구인놈!"


 마치 만화나 게임에서 악당의 수장들이 낼 법한 대사가... 고양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것도 대사에 어울리는 엄청난 중저음으로! 


 "으악! 고양이가 말을 한다!"


 나는 완전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내 눈 앞에서 리돌이 날았을 때 보다. 달나라 사람을 집 안에 있는 것보다 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제 왠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던 모양이다. 갑자기 무게중심이 등 뒤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하지만 현관턱에 발목이 걸려 넘어지는 그 순간에도, 나의 시선은 그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에서 떨어지지가 않고 있었다. 고양이는 무척이나 더러운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리돌의 품에서 땅에 손을 짚고 자빠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랐는가, 인간이여. 이 지구상에 말을 할 줄 아는 생명체가 인간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 거냐.역시 그대도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바가 없구나. 그 어깨 위에 얹고 다니는 것을 조금이라도 활용할 줄 아는 놈들이 이리도 없단 말인가."


 말은 또 왜 이렇게 잘해? 그렇게 이야기하고서, 그 고양이는 나에게 하악질을 해 댔다. ...고양이로서의 본성은 그대로인 듯 해 보인다.


 "그게 귀여워, 민재?"


 내가 물어볼 말을 자꾸 앞질러서 말하지 마라. 듣는 사람 성질나니까. 내 복장을 터트리며, 리돌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하악질을 해대며 나를 백안시하던 고양이 녀석은, 순식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골골골 엔진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도대체?

 자, 일단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먼저 들어야 된다. 대화를 위해서는, 일단 진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심호흡을 하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두뇌의 10% 정도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인간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냐고오!! 말하는 고양이는 영화에서나 나오던 거 아냐?!


 이런 나의 심리상태를 반영하여 입 밖으로 튀어나온 첫 대사는 첫 만남에 이루어야 하는 친선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편이었다.


 "저, 저 괴물은 뭐야아!"


 "이것은 괴물이 아닙니다. 고양이."


 "그렇다, 인간이여. 나는 괴물이 아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녀석이, 말을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데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말을 유창하게 하는 존재를 옹호하고 있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는 그저 불안에 찬 눈빛으로 고양이와 리돌을 번갈아가며 쳐다 볼 뿐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던 리돌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고양이를 방 안에 내려놓고서는, 살풋 웃으며 아직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세우십시오, 민재."


 ...무언가 굉장히 걸리는 발언과 함께. 

나는 리돌이 뻗은 손을 잡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문제의 고양이는, 살짝 올린 꼬리의 끝을 이리저리 흔들며 우리 집을 관찰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가난한 집에 살고 있구나, 인간이여."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목소리만 들으면, 무슨 왕이나 귀족이 평민의 집에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 새삼 다시 느낀 건데, 이 고양이 지금 말하는 목소리하고 외모하고 너무나도 괴리감이 느껴진다. 어째서 리돌하고 관련된 사람, 아니, 생명체들은 모두 이 모양인 걸까. 설마 나도 그런 걸까? 같은 부류이기에 이 녀석들한테 선택당한 건가?

 내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던 사이, '그 고양이'는 마치 한숨을 쉬듯이 리돌에게 다시 말을 건네었다.


 "어째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서 기거하고 계신 겁니까, 나의 주군이시여."


 리돌한테는 존대말?! 아니, 그보다, 주군?! 내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고양이를 쳐다보는 그 와중에도, 이 둘은 그러든가 말든가 자기들만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 부서진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당신은 이런 저급하고 좁은 곳에 계실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꼭 부서지고 낡아야만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예를 들어서."


 그러면서 고양이 녀석은 나의 식탁을 앞발로 짚었다.


 "보십시오. 이 식탁은 인터넷에서 2만원이면 구매 가능한, 아주 싸구려 물품입니다. 주군께서 쓰셔야 할 가구는 최소한, 이탈리아 장인의 숨결이 들어간 앤틱하고 고급진 가구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여, 그대는 어떻게 자신이 모시는 분에 대한 경의도 없이 집안을 이렇게 방치해 둘 수 있단 말이냐.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면서 다시 하악질을 나에게 날려댄다. 내가 리돌을 모시고 사는 건 아닌데. 리돌은 그러지 말라는 듯이 고양이를 다시 껴안으며 말을 받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나비. 나는 불편합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그것보다, 지금 당장 물아봐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나는 터져 나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리돌에게 물어보았다. 


 "잠깐, 이름이 나비야?"


 그러자, 그 이름의 소유권자는 굉장히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을 하였다. ...보통 고양이들이 저렇게 표정이 풍부했었나? 불현듯 다큐멘터리를 더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이름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가, 인간이여."


 아, 참, 이 녀석 말할 수 있었지. 방금 전에 그렇게 문화적 충격을 받아놓고서는, 다시 원래의 상식대로 상식 밖의 녀석들을 대하고 있었다.


 "아, 아니. 별로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너무 매일 듣던 이름이라서."


 너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고양이한테서 그런 이름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서 말이지. 나비는 다시 한 번 하악질을 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어떤 생명체를 막론하고 이름이란 하사받는 것. 내가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리돌 님께서 친히 나에게 내려준 성스러운 단어이기에, 어떻게 불린다 하더라도 이 몸은 개의치 않는다. 설령 그것이 바둑이라 하더라도."


 아무래도 개와 관련된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 녀석에게는 굉장히 무례한 일인 듯 싶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멍멍이라던가, 도꼬메리쫑이라던가 하는 단어를 주워 섬기고 있던 그 사이에, 리돌은 자신에 품에 안겨 있는 나비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민재는 저의 친구입니다, 나비. 너무 강하게 굴지 마십시오."


 "하지만 나의 왕이시여. 저는 당신을 모시는 가신으로서, 당신의 주변에서 해가 될만한 것들을 모두 배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나는 그것은 필요 없습니다. 나비, 내 친구가 되어 주세요."


 나비는 고개를 저었다.


 "설령 그것이 주군께서 원하신다 하더라도, 고양이에게는 고양이로서의 인의가 있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군신관계로는 제 마음이 편하지가 않단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사람이고 누가 고양이인지 모르겠다. 이 녀석, 왜 이렇게 어려운 단어들을 많이 써 대는 거야? 분명히 생긴 건 태어난 지 두 세달밖에 안 된 녀석인데, 말하는 건 사극에서 사람 여럿 썰어 넘긴 백전노장의 말투다.

 리돌은 난감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나비를 계속해서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쓰다듬을 때는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내다, 나를 보면 바로 하악질을 해대는 나비를 보고 있자니, 나는 문득 하늘이 보고 싶어졌다. 그 곳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리돌도, 저 말하는 고양이도. 하지만 내 눈 앞을 가로막은 것은 하얀 천장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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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하루 늦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