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론적으로 뭘 원하는 거야?"


 간신히 나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한 사람과 한 마리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말하는 고양이가 가져다 준 충격에 정작 이야기 자체는 하나도 진전이 된 것이 없지만, 처음에 내가 물어보려고 했던 것, 그리고 대답해 줄 말은 변한 것이 없다. 나는 모든 이론적인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하며 조심스럽게 나비와 리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너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인간이여."


 나비는 나와 리돌이 마주앉은 식탁 위에 올라 앉아서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어갔다.


 "일단 첫 번째는, 내가 너희들과 같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군을 모시는 나를 위해서 일정량의 식사를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전부다."


 생각한 것 보다는 간소한 조건인데? 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비에게 되물었다.


 "정말 그게 다야?"


 "그렇다."


 "그... 집에 무슨 캣타워를 들여놓아 달라던가, 아니면 니가 살 공간을 마련해 달라던가 그런 건 필요 없는거야?"


 나비는 가슴을 쭉 펴면서 대답하였다.


 "캣타워와 같은 인공 구조물은 우리와 같이 실전에서 훈련하는 고양이들에게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것. 그런 아이들 장난감 같은 물건은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는 주군의 옆에서 이 분의 안위를 돌보아야 하는 몸이지만, 안타깝게도 일신상의 이유로 이 집에서 머무를 수는 없다. 그리고 원래는 주군께서 나에게 직접 봉록을 내려 주셔야 되는 상황이지만, 이미 주군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신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 그래서 주군의 경제적인 여건을 책임지고 있는 그대에게 이 몸의 몫을 같이 계산하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사이에도 리돌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 계속해서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나비는 그 손짓에 화답하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근엄하게 나에게 자기 입장을 강요하고 있고.


 "내가 왜?"


 갑작스러운 나의 대답에 나비를 쓰다듬던 리돌의 손이 멈추고, 둘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알아야 겠다는 눈빛이 나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내려 이죽거리고서는 말을 이어 나갔다.


 "첫 번째 조건이라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모시는 주군이라는 아가씨에 대해서도 어차피 지금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못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거절이다. 네가 이 집에서 살 장소에 대해 내가 먼저 물어본 건, 그런 부분에서 내가 해 줘야 할 부분이 없기 때문에 미리 못박아 두기 위해서였어. 그리고 니가 리돌을 주군으로 섬기고 어쩌고 하는 것도, 어차피 너희 둘만, 아니,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걸 나한테 강요할 수가 있나? 왜 내가 니 생각에만 맞춰서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지 말해 볼래?"


 리돌은 마치 이런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처럼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나비는 그저 미간을 찌뿌리며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대충 이런 반응까지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리돌은 아마 아무 생각도 없이 이 녀석을 데려왔을 것이다. 말이 통하고, 귀여우니까. 하지만 이 녀석이 데려온 것은 여리고 보호해야 줘야 할 아기고양이가 아니라, 말을 할 줄 알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적 생명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리돌이 아니라 나비와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리돌이 이 녀석을 데려온 것은 집에서 길러도 되냐고 물어보려 한 것일 거고, 그것에 대한 내 대답도 이미 모두 정해져 있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도 이미 집 계약조건 안에 애완동물을 키우면 안된다는 것이 명시가 되어 있었고, 나도 지금 이미 덤(?) 하나를 달고 있는 상황에서 덤이 데려온 덤 까지 같이 산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침묵을 지키는 둘을 대신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아까 너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때는 엄청나게 놀랐지. 당연히. 그런데 조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너는 사람하고 동일한, 지성을 가진 생명체란 말이지. 보통의 새끼고양이라면 불쌍한 마음에 밥은 먹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넌 아냐. 생각을 할 줄 아는 녀석이 자신의 생활을 다른 사람한테 내맡기려면, 그만큼의 조건을 걸고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보는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계속 겪다 보면 말이 된다. 정확하게는, 말이 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간내가 리돌을 만나면서 겪은 경험치는, 오로지 화법으로만 집중되어져 버렸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설득할 일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어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비는 못마땅한 눈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다, 갑자기 눈을 흡뜨며 일갈하였다.

 "무엄한 것! 여기 계시는 이 분이야 말로 이 세상에 없는, 다시 없는 존귀한 분인 즉. 자고로 귀빈을 모시는 곳이라면 적어도 그 종복에게도 응당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 당연한 법! 그런 당연한 이치를 어찌 그리 어리석은 인간의 잣대로 거절하려 하느냐!"


 ...아무리 내 말이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논리적으로 풀어가려고 했던 내가 잘못인 거겠지, 그치?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였다. 그런 다음에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식탁 위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너 혹시 한글도 읽을 줄 아냐?"


 "모른다."


 "그럼 지금 화면에 떠 있는게 뭔지도 모르겠네?"


 "모른다."


 "혹시 보건소라고 들어봤냐?"


 이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지금까지 근엄하던 나비의 표정이 순식간에 미소로 풀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흐흐' 하면서 실없는 웃음을 보내기까지. 나 역시 '흐흐' 하고 웃어 주었다. 그 소리에는 아무 뜻도 없지만,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내포한 웃음이 잠시 오고 간 이후, 나비는 한숨을 쉬며 리돌을 돌아 보았다.


 "주군이시여."


 리돌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던 중이었다. 이 녀석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신에게 화제가 돌아갈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비를 쳐다 보며 대답하였다. 동작은 놀랐지만, 언제나처럼 단조로운 목소리로.


 "네."


 "처음 당신을 모실 때 부터 봉록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고, 이 한 몸 분골쇄신하여 닭이 울 때 부터 금성이 뜰 때 까지 주군의 곁을 지켜야 하는 것이 가신의 올바른 도리입니다만, 저 간악한 지구인이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니 제가 지금 아무리 노력해 본들 주군을 모시는 참된 길로 나아갈 수 없음이 실로 안타깝습니다."


 나비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눈에서 불꽃이라도 튀길 듯이 나를 째려보았다. 쇼를 한다, 쇼를 해. 지금이 15세기 프랑스냐?


 기사도 넘치는 새끼고양이는 말을 이어 나갔다.


 "주군께서 저를 온전히 거둬주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저도 익히 알고 있는 바. 그렇다면 바로 옆에서 당신을 보좌할 수는 없지만,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이라도 주군을 알현하고 존안을 뵙는 것으로 가신으로서의 본분을 갈음하려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비는 리돌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 인사를 받는 리돌의 표정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보였다. 잠시동안 안절부절하지 못하던 리돌은, 아직까지 고개를 들고 있지 않은 나비에게 같이 고개를 숙이며 그 아름다운 충성의 맹세에 화답하였다.


 "미안합니다. 나는 그 중 어느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줄 수 있습니까?"



 

 "나비는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 왜 데려왔냐고요오오."


 나는 말 끝을 길게 늘어트리며 침대 위에 내 몸을 떨어트렸다. 나비는 방금 전에 리돌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 소위 식빵자세라고 하는 꿇어앉은 상태에서 고개를 내려 고양이 식으로 절을 올렸다. 작별의 안타까움을 구구절절이 읊어대면서. 약 5분여에 걸친 석별의 대서사시가 끝나고서는, 나비는 나에게 '다시 보자, 인간이여.' 라는, 참으로 어디 대사 같은 딱 한 마디를 남기고서는 우리 집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방금 말한 대로 진이 빠져서 침대에 자빠져 있고, 리돌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나는 리돌에게 아직 듣지 못한 대답을 독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