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경기장에 들어섰다. 경기장은 규모가 큰 8층짜리 건물로 서울의 대형지부였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방송할 수 있고 대형 세트장도 갖추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전용 방송채널이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방송국이 따로 없었다.

강찬이 안내판을 보고 6층에 있는 선수 대기실에 갔다. 그곳은 187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탈락자들이 모여있었다. 그만큼 대기실의 크기도 매우 커야해서 한 층의 절반이 임의로 대기실로 만들어져있었다.

기본적으로 이곳 대기실은 선수 외에는 출입불가였기 때문에 태오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그러므로 강찬은 유일한 안식처인 연재를 찾아다녔다.
강찬이 이 방 저 방을 다 돌아다녔다. 방은 성별이나 지역 구분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어있어 강찬은 일일히 하나하나 다 찾아봐야 했다.
3번째 방에서 수색에 나서던 그 때 강찬은 연재를 찾을 수 있었다. 연재는 강찬을 보고 얼굴이 풀어지면서 손을 흔들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여기, 여기."
목소리는 첫만남보다 확연히 풀어져있었다. 딱 일반적인 사람들이 친구랑 만날 때의 톤이었다.
강찬이 그걸 보고 바로 빠른 걸음으로 연재에게 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네. 그동안 잘 지냈지?,"
"응. 혼자라면 또 몰라도 동료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둘은 끝없이 대화를 했다. 대전 경기장 때의 어색함과 차가움은 증발해버리고 반가움과 유대감과 평안감만이 남아있었다.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둘이서만 상황을 해쳐나가야 했던 지라 그 둘은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던 것이었다.

그렇게 대충 20분쯤 지났을까,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알립니다. 패자부활전 선수들은 지금 즉시 8층 세트장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패자부활전 선수들은 지금 즉시 8층 세트장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도 많은 지라 천장에 달린 스피커로 시작을 전했다. 강찬과 연재가 서로에게 응원하면서 세트장으로 향했다. 204강전이 끝나고 연재가 강찬의 뒤에서 걸어갔다면 이 날은 나란이 걸어가고 있었다.


8층 세트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맨 처음으로 정식으로 텔레비전에 방송되는 경기여서 카메라들이 아주 많았다.
세트장의 뒤에는 세로 5단 가로 5단으로 이루어진 계단형의 25개의 단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널찍한 바닥이 있었다. 바닥에는 수많은 네모칸들이 있었는데, 세로로 27줄에 가로로 7줄이었다. 네모칸들 안에는 방석과 화이트보드와 보드마카가 놓여져 있었다. 정면에 놓인 커다란 스크린 앞에 사회자를 위한 단상이 있었고 그 양 옆에는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매우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강찬과 연재는 세트장에 들어가면서 주최측에서 랜덤으로 정한 선수들의 자리배치도가 적힌 종이를 받았다. 강찬은 28번으로 앞쪽 중간부분이었고 연재는 91번으로 강찬의 11줄 뒤에 있었다.
"파이팅."
"너도 잘해라."
강찬과 연재가 서로에게 응원을 남기고 자기 자리에 착석했다.

모두가 자리배치도에 적힌 대로 앉았다. 그걸 확인하고 진행요원이 큐사인을 보냈다. 카메라가 켜졌고 사회자가 단상 위에 올랐다.

사회자가 말했다.
"제2회 전국학생제육력대회의 패자부활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번 경기는 이번 대회에서 최초로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송출됩니다. 187명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들은 단 15명! 누가 32강전에 오를 수 있을 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대회 방식은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퀴즈대회입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문제를 듣고 거기 있는 화이트보드에 정답을 써주시면 됩니다. 그럼 대회를 빠르게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상 뒤에 있는 스크린이 팟하고 켜졌다. 그리고 글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강찬과 연재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첫번째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이 지역은 비옥한 황토와 긴 일조량 덕분에 양파의 수확이 타 지역보다 빠릅니다. 그래서 장마철이 오기 전 밭에서 뽑아두고 양파를 햇빛에 말릴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단단하고 품질이 좋은 양파가 나오죠. 지리적 표시제에서도 최초재배지역인 창녕과 함께 이곳의 양파가 등록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어디일까요?"

선수들에게는 살짝 어려웠지만 할만한 문제였다. 어떤 재료가 어느 지역에서 나야 가장 좋다는 것은 제육력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중요한 부분이다. 재료가 마력의 질을 가르기 때문이다.
강찬과 연재는 빠르게 정답을 썼다. 다른 선수들도 정답을 써내려갔다. 시간이 지나자 사회자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정답이 공개되었다.
"정답은 무안군입니다. 탈락하신 분들 정말 아깝습니다."
사회자가 서산이랑 남해를 정답으로 쓴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 서산과 남해도 양파의 품질이 좋지만 지리적 표시제에는 등록되어있지 않았다. 해당 선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 첫번째 문제 탈락자는 총 17명! 탈락하신 분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탈락자들이 바로 체념했다. 그 때 그들이 있던 바닥이 열렸다. 탈락자들이 깜짝 놀라며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밑은 볼풀이어서 안전했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고스란히 방송으로 담아냈다.
참가자들이 조금 더 긴장했다. 틀리는 순간 바로 가차없이 대결장에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자, 그럼 바로 2번째 문제 가겠습니다. 이것에는 마늘, 파 등이 포함되어있죠. 불교에서 먹지 목하게 하는 5가지 음식인 이것을 뭐라고 할까요?
오신채가 정답인 2번 문제 탈락자들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41번 문제까지 진행되었다. 팽팽한 경쟁 속에서 남은 사람은 28명이었다. 강찬과 연재도 죽을 각오로 문제와 덤비고 있었다.

"41번 문제. 대파가 약재로 쓰일 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강찬과 연재를 포함한 남은 선수들이 머리를 짜내어 정답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에 써서 들었다.
모두의 떨림과 함께 사회자가 말했다.
"정답은 총백입니다. 다량의 대파를 썰어넣은 뜨거운 국물을 마셔 초기 감기를 치료할 때 쓰이죠."
다행히 강찬과 연재는 정답을 맞추었다. 탈락자들이 볼풀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번 문제로 25명이 남았다.


사회자가 말했다.
"자, 25명이 남았으니 이제 패자부활전 2차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뒤로 이동하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모두가 뒤에 있는 단상에 한명한명 이동했다. 모두가 단상에 서자 단상 앞쪽에 달린 스크린에 선수들을 구별하기 쉽도록 출신지역과 이름이 떴다.
"1차전이 골든벨이었다면 2차전은 장학퀴즈입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정답을 맞추면 100점이 올라갑니다. 첫번째로 주최측에서 내는 문제 10개를 맞춥니다. 그런데 여기는 또 특별하죠. 두번째로는 학생 여러분들이 번갈아가며 문제를 2개씩 내주시면 됩니다. 총 50문제겠죠. 정답을 맞추면 100점이 주어집니다. 물론 출제한 문제에 오류가 있으면 바로 자동적으로 다른 참가자들에게 100점이 가게 됩니다. 6000점 만점인 이 경기의 합격자는 누가 될 것인지? 지금부터 패자부활전 2차전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학생참여단계였다. 선수들이 자신은 알지만 남은 모를만한 지식을 짜내느라 머리를 더 빨리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패자부활전의 수준은 더욱 더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