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저편에서> 프롤로그 III: 한 걸음 앞으로, 한 걸음 깊게 (One Step Forward is One Step Deeper)


우리가 외우주를 향해 첫 발걸음을 디딘 지도 거의 250년이 다 되어 간다. 2488년, 지구 저궤도 스테이션에서 출항한 디스커버리는 예정대로 세이건-173 행성계로 워프 이동에 성공, 탐사 활동을 시작했다. 세이건-173 행성계나 그 옆에 있는 세이건-176 행성계 등은 태양계와 놀랍도록 비슷해서 인류의 정착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2492년, 정기 보고 도중 갑작스레 디스커버리와의 교신이 끊겼고, 그 이후 어떤 노력을 해도 디스커버리를 찾을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4개 국가군은 모두 디스커버리의 수색 작업을 위해 각국의 최신예 외우주 항행함들을 세이건-176 행성계로 보내 합동 작전을 펼쳤지만 결국 디스커버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합동 수색대의 가장 큰 성과는 세이건-176 행성계 공역에서 디스커버리의 탈출 포드 2개를 발견한 것이 전부였으며, 포드 2기는 모두 비어 있었다.


한편 각국의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와 환경의 파괴를 막기 위해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범유라시아 공화국은 해수면이 상승하자 바닷물을 몇천 톤씩 전기분해하기 시작했고, 민주 국가 연합은 화성의 토양과 지구의 박테리아를 동원해 오염되지 않은 토양의 제조를 시도했다. 남대서양 연맹은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급증하자 대형 비행정에 이산화탄소 흡수 필터를 장착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다음 바다에 던져 넣었다. 아라비아 해 연맹은 오존층에 구멍이 뜷리자 인공적으로 오존을 합성해 성층권에 살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모두들 자연의 심판에 맞선 필사적인 저항을 하고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시곗바늘은 느려질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었다.


100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26세기 말에 각 국가군은 미래는 우주에 있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였다. 어느 국가군이 우주의 패권국이 되어 미래를 주도할 것인가에 대해 경쟁이 심화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범유라시아 공화국의 워프 드라이브를 장착한 전투함 "선저우"를 개발 중이라는 사실이 아라비아 해 연방의 정보원에 의해 폭로되자, 각 국가군은 범유라시아 공화국을 강력히 규탄하였고, 이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27세기 초까지 몇십 년간 긴 토론 끝에 우주에서의 평화와 인류 공통의 문제점 해결, 과학의 진보 등을 위해 각 국가군이 지는 의무에 대한 내용을 담은 "취리히 조약"이 체결되었다. 


또 이때 외우주 항행함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기존의 우주 정거장으로는 외우주 항행함의 운용이 어렵게 되었는데, 새로운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자니 이미 예산은 부족하고, 그냥 쓰자니 갈수록 설계를 맞추기가 어려워지는 진퇴양난에 빠진 네 국가군은 지구 저궤도가 아닌 라그랑주 점 중 하나에 공동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여 JSS (Joint Space Station) 가 건설되었다.


이렇듯 외우주 탐사에 미래를 걸고 인류는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외우주 탐사에서 실제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이주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작음을 알고 있었던 인류는 화성 테라포밍 작업도 개시하여 만에 하나 외우주 탐사 성공보다 지구의 종말이 먼저 다다를 경우 임시 피난처로 화성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우주 이주를 위한 라그랑주 점에의 스페이스 콜로니 건설도 제안되었지만, 콜로니보다 꽤 작은 JSS의 건설에도 천문학적인 자원과 인력이 투입되어 단기적 경제 침체를 겪은 각 국가군은 이내 그 제안을 기각하였다.


한편, 워프 드라이브의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였는데, 2680년대에 제안된 새로운 워프 드라이브 연동 시스템은 기존 워프 드라이브가 사용하던 아공간보다 한 단계 깊게 들어가 이론적으로 소요 시간을 기존의 20~30%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단, 이 시스템은 외우주 항행함의 건조 비용을 수직 상승시켰는데, 그 이유는 기존에는 워프 엔진 2개를 연동시켜 사용했지만 이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재설계된 워프 엔진 4개를 연동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쿼드 워프 드라이브" 시스템 이론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군은 이를 탑재한 외우주 항행함 건조를 망설이고 있었다.


민주 국가 연합은 수년 간의 고뇌 이후 쿼드 워프 드라이브를 탑재한 실험용 외우주 항행함 1척의 건조를 결정하였고, 실험함의 테스트 결과에 따라 추가 건조 여부를 차후에 결정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건조된 8세대 외우주 항행함이 바로 SEFS 됭케르크다.


됭케르크의 건조가 결정된 순간부터 민국련 정부는 반대 세력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저궤도 스테이션에서의 테러 시도, 민국련 수상의 암살 시도, DCSEF 본부로의 폭발물 배달 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결국 됭케르크의 건조는 예정대로 진행되어 JSS에서 취역 행사를 벌였다.


JSS의 가장자리인 1번 도킹 베이에 연결된 됭케르크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최신예 함 답게 주위의 다른 우주선들을 초라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4직전 세대 함인 7세대 외우주 항행함과 비교해도 확실히 큰 됭케르크는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개의 빛나는 워프 드라이브의 균형 잡힌 배치는 그 확연하게 다른 실루엣 때문에 이질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현재의 문물이 아닌, 미래에서 온 느낌을 보고 있던 모두에게 주었다. 


디스커버리가 워프 드라이브를 탑재함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새로 썼던 것과 같이, 됭케르크도 우주 개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기술적 진보이자 쾌거였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때와는 달리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지도 않았으며,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절박한 상황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관련 실무진과 업계 종사자들을 제외하고 거의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됭케르크의 건조가 결정된 이후 막대한 건조 비용 때문에 민국련의 경제가 휘청이며 국민들이 더 이상 우주 개발 따위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 까닭이다.


하지만 됭케르크의 승조원 모두는 비록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이제부터 해나갈 일들이 인류에게 중요한 일들이며, 의미가 있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화려한 무대는 우리의 것이 아니야, 그래도 지금부터 할 일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더라도, 아무도 지지를 보내지 않더라도, 저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혼자 남겨지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낼 거야, 라고 모두는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관제탑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JSS 관제탑, 됭케르크, 출항을 허가합니다. 언제든지 진행하십시오."

그 순간, 됭케르크의 승조원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우리의 독무대다, 라고.

"여기는 됭케르크, 출항 허가 확인했다. 워프 드라이브 1번과 2번, 가동!"

4개의 워프 드라이브 중 위쪽의 2개가 파란색 불빛을 내뿜음과 동시에 됭케르크는 사라졌다. 

"1단계 워프 진입 성공했습니다!"

기관실 수석 엔지니어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계획대로 진행한다, 피어스 중위, 항로 설정은 완료됐나?"

"네, 함장님. 이론대로라면 목적지 도착 5초 전에 2단계 워프를 종료, 5초 후 1단계 워프를 종료함과 동시에 도착할 겁니다."

"좋다. 워프 드라이브 3번과 4번, 가동!"

아랫쪽 2개도 불빛을 뿜음과 동시에, 됭케르크는 한 단계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