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과 이한서가 결계가 있던 자리를 넘어 지하철로 갔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찾아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검열이었다.
"아저씨, 혹시 여기에 뭔가 이상한 일 있었지 않았어요? 뭔가 특별한 힘이 있다던가 그런 거요."
"글쎄다. 나도 무슨 힘이 있긴 하다만 너희가 말하는 건 저거인 것 같다."
검열이 조종석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서는 코더가 관리자 옵션으로 쇼크를 먹은 장의민 기관사를 치유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 힘은..."
"쉿! 그건 묻지 마!"
이민이 검열의 힘을 물어보려던 것을 혜움이 다급하게 막아세웠다. 이민이 갸우뚱하며 소곤소곤 물었다.
"왜?"
"알면 다쳐. 너도 저렇게 되기 싫으면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민이 개거품을 물고 기절해있는 기관사를 보며 본능적인 소름과 오한을 느꼈다. 이민이 여기까지 데려다 준 검열을 한 번 쳐다보았다. 검열은 아까 그 질문이 나오자마자 옆머리를 긁으면서 시선은 어느새 저 멀리에 가있았다. 이민은 정체 모를 불안을 느끼면서 이런 데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검열이 알려준 대로 코더에게 갔다.
"장 기관사님! 정신 차리세요! 왜 그러세요!"
"정신 차려요! 으아, 이거 안 먹혀서 못 해먹겠네!"
개거품을 물고 쓰러진 장의민 기관사의 옆으로 상태창 같이 생긴 것을 조작하는 고등학생인 코더와 여자 기관사 김수빈이 보였다. 이한서가 코더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 그거 어디서 났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알아서 뭐하게?"
"그게, 혹시 이걸로 이 시국을 끝낼 수 있을 까 해서요."
"그래서?"
"이게 어디서 났고 뭐하는 건지만 알려주세요."
관리자 옵션에 한껏 집중해있던 코더가 친절하게도 답했다.
"신길역에서 갑자기 지지직하면서 감전에 걸렸어. 그리고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봤더니 이런 게 떴고. 아마 살인체스랑 관련 있는 것 같아. 살인체스를 한 동료들도 다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코더의 설명이 이어졌다. 살인체스가 무엇이고 관리자 옵션이 무엇이고 종로3가역에 온 이유는 무엇이고 등등등... 이한서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놓으려고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코더의 설명이 끝나자 이한서는 볼일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지하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절대신과 통신했다.

"우와, 이게 뭐야?"
이민이 관리자 옵션을 보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혜움이 슥 둘러보았다.
"신기하네. 나도 이런 게 있었으면 영감이니 뭐니 하는 고생을 안 해도 될 텐데 말이야. 참 탐나는 물건이야."
혜움이 관리자 옵션을 좀 더 들여다봤다. 코더는 혜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장의민 기관사를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데에 온 신경을 다하고 있었다.
혜움이 자세히 들여다보자 IP 주소같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주소는 이 관리자 옵션을 코더에게 전해준 곳이었다. 혜움이 그곳을 파보더니 마침내 그 관리자 옵션의 근원지를 알아내었다.
"나무라이브 시? 여긴 또 어디야?"
혜움이 그 IP 주소에 대해 더 파보았다. 관리자 옵션 마지막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혀있었는데, 그걸 해독해보니 메시지가 나왔다.
"갑자기 왜 그래?"
이민이 혜움에게 속삭였다. 다행히 김수빈 기관사와 코더는 듣지 못했다.
"이 관리자 옵션의 근원지를 알아냈어. 그리고 이걸 보낸 사람은 확실히 우리 편이야."
"뭐? 그게 누군데?"
"이름은 밝히지 않았어. 대신 달에 있는 어느 도시의 과학자라고만 나와있지. 여기 있는 게 메시지인데, 암호로 되있어가지고 내가 해석해서 얘기해줄게."
혜움이 편지의 내용을 모조리 일일이 읽어내려갔다. 이민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무라이브 시에 사는 과학자를 찾아가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말인가?"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가냐가 문제인데... 오, 마침 저기 오네. 우리들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 만한 도우미 님들이."


"여기는 대체 왜 풀어진 거에요? 무효화의 목걸이인가?"
검을 차고있는 소년 루티온 레나이스가 걸어오면서 중얼거렸다.
"무효화의 목걸이는 아닌 것 같아. 살짝 흔적이 남아있잖아."
비트립 병단의 단장인 비트립 폰 하인리히의 말이었다. 그 말대로 결계 부근은 가장자리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있었다. 무효화의 목걸이는 1단이 몸만 방어하는 것이고 2단이 10m 내의 마법을 무효화하는 것인데, 그 사이가 없었기 때문에 범위 상 가장자리가 비어있을 수가 없었다. 검열된 문장
"그보다도 저 앞에 뭔가 이상하게 생긴 건 뭐에요? 역시 지구는 기술이 발달한 곳이라더니 그 말이 맞나 보네요."
루티온의 소꿉 친구인 산체 레보였다. 레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루보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그녀의 목에는 은빛의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저건 지하철이라고 한다더라. 땅 밑을 다니는 아주 빠른 마차라고 생각하면 돼."
비트립 단장이 자신의 지식을 한껏 활용해 답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안쪽에 누군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거기 누구냐!"
비트립 등 4인이 경계태세를 하며 검술에서의 준비자세를 했다. 누군가가 오고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메시지창을 바로 닫은 이한서는 갑자기 닥친 검에 쫄아 어버버했다.
"그, 그 검 치우지 모, 못 해? 이, 이게 뭔진 모르겠지만 쏴버릴 테니까."
이한서가 공격용으로 준비해둔 파괴자를 꺼냈다. 원래 성희의 소유였던 것을 이민이 빼앗아서 준 것이었다. 그러나 비트립 병단은 삼 왕국 측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인 파괴자를 보자 적군으로 판단했다.
"오, 오지 말라고! 오면 쏜다!"
이한서가 얼떨결에 파괴자를 쐈다. 이한서는 의도치 않은 공격에 어리벙벙했다. 파괴자의 빔은 다행히도 루티온의 학교 친구인 코스타 린톤의 미러쉴드에 맞고 튕겨나갔다. 이한서는 살고 싶다는 본능에 의해 피했다. 반사된 파괴자의 광선이 비상표시등에 맞더니 이내 소멸시켰다.
"뭐야 이거?"
이한서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생명의 위협에 한 발 더 쏘려 했다. 그러나 루보가 이미 그녀의 무효화의 목걸이로 반경 10m의 모든 마법과 이능력을 무효화시킨 상태였다. 파괴자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플라스틱이 부딪히는 듯한 청명한 소리만 날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루티온이 이내 검을 이한서를 향해 내리쳤다. 그 검은 플라즈마 소드라는 검으로,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힘이 있었다. 다시 말해 닿는 순간 저세상으로 간다는 말이었다.



"으, 윽..."
"의식이 돌아왔다! 이제 조금만 더...!"
장의민 기관사의 의식이 서서히 들어왔다. 코더의 조작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내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뭐야, 이거 왜 안 돼?"
"장 기관사님, 정신 차리세요!"
코더의 관리자 옵션이 갑자기 사라졌다. 루보의 무효화의 목걸이 때문이었다. 장의민 기관사는 이에 바로 꼴까닥하며 쓰러졌다. 김수빈 기관사가 바로 어깨를 두드리며 의식을 확인했다.
"뭐야 이거?"
코더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밖에서는 뭔가 엄청난 광선 소리가 들렸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얜 또 어딜 간 거야?"


"으아아아악!"
이한서가 플라즈마 소드에 맞으려던 찰나 옆에서 누군가가 날아오며 옆으로 밀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민이었다. 이민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혜움이 아니었으면 이미 이한서는 목과 머리가 깨끗하게 단면으로 잘려 대가리와 몸뚱아리가 서로 사맛디 아니했을 것이었다.
"여러분, 우리 말로 합시다. 네? 우리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희는 아군이라고요?"
이민이 비트립 병단의 적의를 풀기 위해 얼굴에 최대한의 미소를 지어냈다. 비트립이 물었다.
"그럼 쟤가 가지고 있던 건 뭐지? 쟤는 왜 그 총을 갖고 있는 거지?"
"제가 노량진에서 금발의 미녀한테서 그 총을 빼앗았어요. 그리고 무기가 없던 얘한테 준 거고요."
"그래서 그 총은 뭔가?"
"이름은 모르겠고, 뭔가 엄청난 빔이 닿은 물체를 없앤다는 것만 알아요."
"진짜냐?"
"진짜라니깐요."
비트립 단장은 생각에 잠겼다. 적을 이름이 아니라 외형으로 묘사하고, 이쪽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무기의 이름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톤과 눈빛에서도 억울함이 절로 새어나왔다. 이한서도 검이 목에 가자마자 당황하면서 내뱉은 말이 '이게 뭔진 모르겠지만'이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2개였다. 진짜로 연기를 잘 하거나, 아니면 진짜 억울한 경우이던가.
비트립은 두 번째 경우일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 일단은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일단은 믿어주지."
그 말에 루티온, 루보, 코스타가 검을 거두었다. 이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한서도 그제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슬레이어 왕국 비트립 병단의 단장 비트립 폰 하인리히다."
"저는 대한민국의 이민입니다. 소속은 없습니다."
그렇게 다른 이들도 서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둘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주전쟁이 시작된다고 해서 마법사인 이스밀라의 텔레포트를 타고왔다고 했다.
"그럼 저희 텔레포트 시켜주실 수 있으세요?"
"뭐하게?"
"나무라이브 시에 가려고요. 거기서 과학자를 찾으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대요."
"나무라이브 시? 달에 있는 도시 말이야?"
"네. 거기에 가야해요."
비트립 단장이 뭔가 놀라면서도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라이브 시도 하위 행정구역이 있지. 채널이라고 하는데, 어떤 곳으로 가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지지. 그래서 넌 어디로 가야 하는데?"
"그게 어디더라... 아, 맞다. 사회 채널이네요. 사회채널 맞아요."
그걸 들은 비트립 단장의 표정은 더욱 선명해졌다. 뭔가 꺼리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거기? 거기 엄청 위험한 곳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요."
"하... 알았다. 그래서 그건 어디서 알았냐?"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이민은 조종석으로 들어가 코더의 관리자 옵션을 보여주려 했으나 쓰러져있는 장의민 기관사를 보고 1차로 놀라했다. 그리고 원인을 알아내 무효화의 목걸이를 끄고 관리자 옵션을 켜자 2차, 그리고 메시지를 해독하자 3차로 놀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루보가 치유의 만년필로 장의민 기관사의 신체적 질병을 말끔히 해결해주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정신적인 부분은 치유가 되지 않았기에 장의민 기관사는 정신적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
비트립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소녀 마법사인 카일라와 이스밀라, 그리고 이스밀라의 동생 갈릴레오였다. 비트립은 그들에게 부탁해 나무라이브 시 사회채널로 순간이동을 부탁했다. 
이스밀라가 승락하자 비트립은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아야 좋으니 어느 정도 가도 좋을 만한 사람들을 같이 데려가기로 했다. 작아지는 능력의 검열과 그의 파트너 검열은 군중들의 호응 속에 반강제로 이루어졌고, 장의민과 김수빈 등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코더 또한 당연히 들어갔고, '오늘 머루가 죽는다.'는 불길한 예고를 들은 것을 떠올리고 따로 있을 순 없다고 판단해 살인체스의 4인방도 따라나섰다. 자신에 중학생일 뿐이라고 생각한 염유현은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준비 됐죠?"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큰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러더니 이내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모두 나무라이브 시로 간 것이었다.


*


"뭐? 나무라이브 시에?"
성녀 하이렌이 보고를 받고 놀란 눈치였다. 보고를 한 캐롤라인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종로3가역에서 갑자기 반응이 사라져서 봤더니 나무라이브 시로 텔레포트했던 거였습니다."
"나무라이브 시라면 그 자가 있는 곳이지."
"그 자라면?"
"검열의 아버지 말이다. 우리의 뜻을 거스른 과학자 말이야. 그 분의 기술을 가져온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파괴자를 쓸 수 있는 거긴 하지만, 우리의 사상에 반항했으니 용서받아서는 안 될 놈이지."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지금 나무라이브 시로 많은 병력이 이동했다. 종로3가역이랑 용산역 쪽은 많이들 딸리겠지. 그러니까 공격은 적어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무라이브 시 쪽은 확실히 문제지. 만에 하나 정말로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고로 거기를 확실하게 정리하도록 해라."
"예."
"텔레포트 준비해. 바로 움직일 거니까. 검열 인력사무소에 맡겨놓은 거는 이쯤 되면 거의 다 됐어야 했을 텐데."
"그건 걱정 마십쇼. 아주 순조롭습니다."
"그러냐? 그럼 텔레포트부터 하자고. 아주 그냥 거기서 조져버리는 거야."

그렇게 미르 등 슬레이어 왕국의 인사들과(엑셀시온 왕자는 아직도 드워스터 레나랑 교전중이다.) 검열, 검열, 전청아 등등의 정예부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좋다. 이제 나무라이브 시를 공산주의 혁명의 발판으로 삼자! 이 세계는 우리들의 사상으로 정의로워질 것이다!"
그렇게 텔레포트 기계가 작동했다. 성녀 하이렌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나무라이브 시로 순간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들이 처음 본 것은, 출입기록에 적히지 않은 그들을 향해 곤봉 비슷한 것을 휘두르는 경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