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은 이상하다. 일은 아직도 누가 더 하고 있고. 의무도 누가 더 짊어지는데.

가져야 되는 권리는 똑같이 얻길 원한다. 사실 이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권리를 보면 그것이 엄청나고, 부러워하고, 대단해 보이니까.

마치 유치원생 시절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쥐고 휘두른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이를 휘둘러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 아이는 적어도 그 막대기를 놓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다. 네가 가진 그것이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아이처럼 그것을 내려놓아라.

또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라. 아이가 사과를 못하면 부모가 그 아이를 훈육하고 다음날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이 만도 못하는구나.

적어도 네가 가진 것이 남에게 보여줄 때 피해를 끼친다면 그것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하다못해 가졌더라도 그것이 해롭다는 사실을 세상이 보여주었다면 그것을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버리기 싫다면 적어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라. 그래야 그것을 보고 거를 수 있으니까.


하물며 사람이란 존재는 훈육이란 필터로 여러 번 걸러지면서 더 나아지는 존재다.

훈육의 범위는 부모부터 내가 모르는 누군가. 최대한 상사까지 잡지만 더 멀리 나아간다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

그런 것이 해롭다는 사실이 일관되게 보여졌음에도 그것을 넣어 남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이는 보상을 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긁힌 상처 정도는 사탕으로 용서가 됐지만, 성인이 되면 기본적으로 돈이 들어가게 된다.

어린 시절의 세상은 부모님이 보호했지만 어른이 된 시점의 세상은 내가 직접 방패를 들어야 한다.

많은 곳에 암처럼 퍼진 존재여. 피해를 끼쳤다면 죗값을 받아야 한다.

방사선을 쬐어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처럼 네가 수 많은 곳에 죄를 저질렀으니. 이제는 그 값을 치루어야 할 때다.

제 아무리 모순을 안아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선 그것을 버려야 된다. 각오는 되어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