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breaking/83864948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잠결에 느껴지는 지독한 악취에 잠을 깼다.


"으, 무슨 냄새가……?"


순간 입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잠결에 잠깐 잊고 있었지만, 분명 체화하면 여자가 되는 단약이었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누가 들어도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운기조식을 취해 내력을 일주천해 보니 몸의 기운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


경지가 오른 만큼 체격은 줄어들었지만 기운이 더욱 응축된 듯했다.


단전에서 태풍이 소용돌이치는 느낌. 단전에서 내력이 끝없이 퍼져나왔다.


'이게, 무도신선의 경지인가……."


그래서 몸이 바뀌는 만큼 몸이 무슨 이상이 있을까 싶어 우선 온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깨어나 확인해보니 딱히 몸에 이상이 느껴지거나 감각이 없어졌다거나 하는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정말로 이게 내 몸이라고?'


자세히 살펴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지만 정말로 여자가 됐다.


가늘고 새하얀 손.


낭창낭창하게 뻗은 팔다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청색 머리카락.


'진짜 여자가 됐네.'


상태창을 조작하던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체화해줘서 다행이지, 내가 직접 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수도 있었는데 잘 됐다.


'잘된 거 맞나?'


순간 한숨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무림에선 싸울 때만큼, 아니 어쩌면 싸울 때보다 경지를 돌파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싸우다 죽는 사람보다 경지 돌파에 실패해서 미쳐버리거나 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무림인이라고 허구헌날 싸움만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무사라는 존재 자체가 많은 수련자원을 필요로 하기에 육성하기도 힘들고 잃을 것이 많은 경우가 많으니.

그나저나 이 몸에 적응하려면 또 한바탕 수련을 해야 할 텐데.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나가 봐야겠다."


마침 저기 문 앞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아마 내가 수련한다고 문 앞을 지키는 무사가 있는 모양이다.



빙설화가 수련하던 수련장 앞에서 두 말단 무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아, 소궁주님이 들어가신 수련장에 진법이 생긴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언제 나오시려나?"


"그러게나 말일세. 참, 어떻게 된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대체 그 결계는 대체 뭔지. 혹 뭔가 잘못되신 건 아니겠지?"


"쉿, 조용히 하게. 그러잖아도 요새 분위기가 좋지 않네. 저 서쪽 마교 놈들이나 남쪽 독문 놈들이 설친다는 소식에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


"크흠, 그래야겠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잠깐."


성일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그러나?"


"진법이 없어진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내가 한 시진 전에 확인했는데 변한 건 없었는데…… 잠깐."


"자네도 느꼈나?"


그 수수께끼의 진법에서는 강력한 힘이 퍼져나왔기 때문에 수련장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강해졌는데, 그런 기운이 사라져 있었다.


"소궁주님이 출관하신 건가? 한번 같이 가 보세."


"그러세나. 정말 소궁주님이 출관하신 거라면 다행인데……."


 

내가 수련장 문을 열자 무사 둘이 마침 수련장 안으로 들어오려던 건지 문 앞에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련장 입구를 지키던 무사였다.


'이름이 아마 성일이었던가.'


갑자기 문이 열려서 놀란 모양인지 성일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저께서는 누구십니까…….?"


"아, 성일 맞지? 나야 설화."


"우리 빙궁 소궁주께서는 남자십니다만……?"


"아, 나 여자가 됐어."


내 말을 들은 두 무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음, 이거면 믿으려나?"


나는 주머니에서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패를 꺼내 보였다.


대대로 북해빙궁 소궁주에게 주어지는 패였는데 그 패에는 '북해빙궁 소궁주 빙설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패를 보여줬는데도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혹, 소궁주님과 혼약……."


아니 그게 무슨 소리니 성일아.


"아니, 나 맞다니까. 애초에 나 혼자 들어갔는데 내가 여자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 하나를 만들어서 나오겠어? 이상한 생각 그만 하고. 난 궁주님이나 뵈러 가야겠다."


"아, 알겠습니다, 소궁주님."


"그런데 내가 폐관에 든 지 얼마나 지났지?"


"폐관하러 들어가신 지는 꼭 일 년 째입니다만 한 달 전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라니?"


"갑자기 소궁주님께서 폐관 중이셨던 수련장 앞에 이상한 진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빙궁의 누구도, 심지어 궁주님조차 들어갈 수 없는 진법이었습니다.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진법가들에 진법이라면 제일 가는 제갈세가의 진법가들도 모셔오다시피 해서 데려왔는데도 못 없앴습니다."


내가 단약을 먹은 게 한 달 전인가 보네.


신단은 신단이라 이건가.


"아, 실은 그때 내가 경지를 돌파했거든. 아마 그 여파로 그런 진법이 생긴 모양이네."


"가, 감축드립니다, 소궁주님! 열 여섯에 삼화취정(三花聚頂)에 오르셨군요! 정말 천고의 기재다우십니다!"


음, 역시 폐관하면 경지 하나 오르는 게 상식적이긴 하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운이 좋다니까.


……좋은 거 맞나?


'망할."


"삼화취정은 아닌데."

"네?"


"무도신선에 올랐거든."


"무, 무도신선에 오르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정말 그 전설로나 전해지는 경지에 오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한 번의 폐관으로 경지를 네 번이나 돌파하셨다니!'


"아무튼, 아버님은 어디 계시지? 빨리 출관했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궁주님이라면 궁주전에 계실 겁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궁주님이 얼마나 근심하시던지. 아마 여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겁니다."


"그래. 나중에 봐."


나는 재빨리 아버님이 있을 가주전으로 향했다.



가주전으로 다가가니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무거웠다.


여러 시비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나도 모르게 느껴졌다.


무선에 올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무사들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가장 강한 기운을 가진 무사들이 대전에 모여 있었다.


'대전에서 회의라도 하는 건가.'


그때 마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게나. 혹 총관 말대로 그저 경지를 돌파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빙궁에서 천하제일인이 나온 지도 초대 성주이신 선조님을 제외하면 한 명도 없었지. 조사께서 궁을 세운지도 벌써 800년이나 지났네. 설화 그 아이가 우리의 숙원을 해결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음? 내가 경지를 돌파했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


나는 급한 마음에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님,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경지를 돌파했다는 걸."


내 얼굴을 본 아버지께서 의아한 표정으로 한참 뜸을 들이셨다.


'아, 나인 줄 모르고 계시는 건가?'


"소저께서는 어디서 오신 분이시기에 이 빙궁 가주전까지 들어오셨소? 아버님이라는 건 또 무슨 소리요? 게다가 그 옷은 설화 그 아이의 옷인데, 설화와는 아는 사이시오?"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아버님 저 설화예요."



내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 갑자기 화난 표정을 지으셨다.


"장난치지 마시오. 소저. 설화는 내 아들이라오."


"제가 여자가 됐거든요, 하하……."


나는 다시 예의 그 패를 꺼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그 패를 보고서야 내 말을 조금은 믿으시는 눈치였다.


"소저, 아니 네가 정말 설화란 말이냐?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렇다니까요."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지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대체 왜 여자가 된 게냐. 경지는 또 얼마나 올랐느냐. 너에게서 내공이 하나도 느껴지지가 않는 걸 보니 어째 나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에휴.


나도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닌데.


"음, 수련 중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천운이 따라서 네 경지나 돌파했는데 이상하게도 깨어나 보니 여자가 되어 있더군요."


"네 경지나 돌파했다니?"


"네. 저 무도신선이 됐어요."


"허참, 무도신선이라니. 전설 속에서나 전해지는 경지라니. 그리고 그게 여자가 된 내 아들이라고?"


"그런데 무슨 회의를 하던 중이셨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장로가 말했다.


"아, 서쪽 신장 마교 놈들과 남쪽 운남의 독문 놈들이 설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어오기도 했고, 소궁주님이 폐관에 든 사이에 한 달 전부터 이상한 진법이 생겨나서 어떻게 할지 방침을 정해야 하기에 모여서 대책을 논의중이었습니다."


그냥 내가 해결하면 될 거 같은데.


"아, 문지기에게 들었습니다. 아마 그때 제가 경지를 돌파하는 바람에 기운이 넘쳐서 그런 진법이 생긴 모양입니다. 어, 음, 뭐 마교 놈들이 아무리 설쳐봐야 천마가 저보다 아래 경지이니 그냥 제가 해결하면 되겠군요. 독문 놈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자 아버지께서 어딘가 허무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