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비가 심하게 오는 어느 날, 뱃사공은 손님들을 데리고 노를 젓고 있었다.

거센 비와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천천히 노를 저으며 앞으로 가고 있었고, 나룻배 뒤에서 가만히 수첩을 들고 있는 여성 또한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곳은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뜻을 펼치라고 존재하는 곳이지."


삿갓을 쓴 뱃사공은 유토피아라고 적혀있는 폐허를 가리키며 조그만한 수첩을 들고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중년의 여성은 수첩에 적혀있는 순박하게 생긴 여자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읽다 뱃사공의 말을 듣고 수첩을 닫고 비아냥 거리기 시작했다.


"허, 뜻을 펼치기엔 너무 허름하고 엉망이지 않아? 아무리 자신의 생각을 펼치려고 하더라고 기본적인 기반이 있어야 다니지.

기본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그만한 희생을 감수하지도 않나보네."


"별 말은 없지만... 인정하지. 저 곳은 자신들의 사상만 펼치다가 집도, 돈도, 가족도 그 모든 걸 태워버린 멍청이들이 가는 곳이니까. 저 안으로 들어가는 조건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지우고 들어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서명을 한 뒤에 들어가는 거니... 자네도 모든 걸 태우고 들어가는 것인가?"


중년의 여성은 뱃사공의 말을 듣고 자신의 목에 걸린 명찰을 들어 흔들었다.


"전혀, 내가 들어가는 건 특수 상황이니까. 나는 어떠한 여자를 찾으려고 한다. 동방에서 남자를 죽이고 도망친 여자다. 비겁하게도 자신의 능력으로 길목 하나하나에 설치해둔 감시 카메라를 고장내며 도망쳤지. 우리가 자금지원청에 가서 단체로 울고불며 겨우 따온 지원금을 가지고 설치해둔 그... 그 비싼!"


중년의 여성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다 수첩이 구겨지는 걸 보고 손을 풀었다.


"흠흠... 어쨋든, 그 여자가 이곳으로 도망쳤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것이다. 물론 전부 허가를 받았으니 걱정말고 끝까지 안내하도록. 그대가 이곳에서의 가이드 역할도 같이 해준다고 하여 고용한 거니 말이야."


"저기... 예주 팀장님? 비도 심하게 오는데 오늘은 내린 다음에 쉬었다가 가면 안될까요?"


한 쌍의 날개로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쌍의 날개로 몸을 가리고, 남은 한 쌍의 날개로 비를 막고 있는 천지연은 앞에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있는 천아랑을 바라봤다.


"몰랐는데, 얘 뱃멀미가 있었나봐요.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기 전에 죽게 생겼는 걸요."


한예주가 뒤돌아 천아랑을 바라봤을 때, 그는 상당히 속이 안좋아보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바로 토할 듯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첨언, 지금 주인님의 상태는 영...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저 또한 제 실력을 내지 못할 거 같습니다.]


천아랑의 뒤에 있던 책은 비에 젖기 싫었는지 조금만 모습을 보이며 말했고, 한예주는 책을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정말로 말을 잘하는 구나. 자아가 있는 건가? 아니면, 주입된 정보들로 알맞는 말을 하는 건가. 궁금해지는 걸?"


[부정, 그러한 정보는 제게 없습니다. 제가 의식이 있는지 인공지능처럼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이번으로 35번째입니다. 기록 저장되었습니다. 질문, 아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여자는 진압팀이 갈만큼 위험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진압팀 두분이 주인님을 데리고 가는지 궁금합니다.]


"그야 천아랑, 이녀석은 조사팀의 일원이니 증인으로 데려온 것이고. 그 여자는 매우 위험하다. 아까 들었다시피 비싼 감시 카메라를 원격으로 고장냈어. 고장나기 직전의 특징은 빛이 과하게 나는 거였지. 즉 광원 종류나 고전압 종류로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 진압팀이 가는게 맞지. 하지만, 그 여자는 파괴된 경로를 따라간다면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거야."


[반박, 수첩에 능력 정보도 함께 들어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니! 수첩에는 더욱 결정적인 정보가 있다. 그녀는 '언랭크드'소속이야. 최신 능력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더군. 아마도 언랭크드에 가입되어있어서 그런 걸꺼야. 그 망할 것들때문에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거도 엉망이 되었어. 이런 일 때문에 등급제가 필수도 있는 거야. 자유를 위해서 필수불가결적으로 희생되어야만 한다고."


[긍정, 이해 되었습니다. 저는 이만 젖기싫으니 다시 숨겠습니다.]


책이 다시 숨자 천지연은 비를 막고있는 날개를 약하게 톡톡치면서 날개를 털었다.


"자유를 위한 희생이 무조건 옳은건 아니겠죠?"


"글쎄다. 무조건 옳은 건 없으니 말이다."


"그...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하네만, 거의 다 왔네. 그러니 몸을 조심하는게 좋을거다. 너희들에게 말이지."


바로 그 순간 대포를 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몇 초뒤, 거대한 바위 하나가 넷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흠... 저런거도 개인의 사상에 포함되나? 저런거까지 포함된다면 개인적으로 탄압하고 싶어지는데."


천지연은 가만히 하늘을 보다 일어나 왼손을 뻗고, 오른손으로 창을 던지는 자세를 잡았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잖아요. 듣는 귀도 많은데 그러다가 팀장님 승진에 발목이 잡히면..."


말하다 손에 창이 생긴 걸 안 천지연은 그대로 바위를 향해 던졌고 창은 빠르게 날아가 바위를 산산조각 내고 사라졌다.

바위조각들이 전부 배를 피해 바다에 빠진 걸 본 지연은 살짝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하아... 잡히면 안되잖아요?"


"음... 언제나 봐도 창던지기 실력은 녹슬지 않나보네. 역시 팀장님이 잘 가르쳐줬나봐."


"아버지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생각하면 안되니까요."


"알겠다. 그나저나 이 파도에 과연 약골녀석은 멀쩡할까?"


천지연과 한예주는 동시에 천아랑을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그는 배의 뒷편에서 토하고 있었고 천지연은 날개에 토사물이 묻는 것이 싫은 지 옆에 있는 책을 품에 안고 슬쩍 옆으로 피했다.


"여기서 토하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데... 뭐 이미 토를 했다면야 별수 없지. 조금 속력을 낼테니 꽉 잡으라고."


"예? 지금 이 속도에도 속이 뒤집어질거 같은데 더 빨리 간다고요? 아침에 먹은 거도 다 토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돈 더 주는 일 하라고 할때 무턱대고 알겠다고 하지 말껄. 아...."


뱃사공은 더 빠르게 노를 젓기 시작했고, 계속 날아오는 바위를 부수거나 피하며 부두에 도착했다.

배가 도착하자마자 선글라스를 쓴 경호원과 그의 뒤로 보이는 안전망 사이사이에 낯선이를 반기거나 경계하는 시선들이 보였다.


"어서오십시오. '유토피아'에."


"이곳이 정말로 유토피아가 맞는 거지?"


멀리서 봤을 때도 폐허같던 곳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분위기를 띠자 한예주는 사상가들의 천국으로 불리던 유토피아가 맞는 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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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usual 외전으로 보면 되는데 진짜로 외전으로 넣을지는 고민 좀 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