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 생선의 비율이 높은 편이고, 나라에 과일이 많아서 칼라만시나 라임과 같은 새콤한 맛을 즐겨 이들을 요리에 많이 쓴다. 다만 스페인 식민지 시절 기독교의 영향으로 동남아에선 이례적으로 돼지고기도 매우 즐겨 먹는다. 그나마 사정이 넉넉한 가정이라면 돼지를 가축으로 키울 정도라 햄이나 소시지를 집에서 만들기도 하고, 축제 때 잡아다가 연회 요리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래서 햄과 소시지의 품질이 매우 좋은 편이다.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소, 닭고기에 대해선 만족도가 떨어지지만 돼지고기는 만족도도 높고 한국보다 맛있다는 평이 많다. 물론 무슬림이 많은 민다나오 섬 일부 지역에서는 그리 즐겨 먹지는 않는다.

따라서 햄(초리조, 하몽 등)이나 치즈, 올리브까지도 기본이요, 아도보와 같은 본격 스페인 요리가 식탁에 올라오는 건 일상에, 미국의 영향까지 직격으로 받은지라 패스트푸드 문화까지 성행하고 있어 흔히 생각하는 동남아 음식과는 괴리감이 있다. 다만 생선 요리에 한해서는 그나마 본연을 유지하고 있는데, 확실한 것은 간이 강할수록 원조가 아니라고 한다. 필리핀 원조 생선 요리에 가까울수록 담백한 맛을 내세운다고. 일례로, 우유처럼 진하다고 밀크 피시라고 부르는 방구스라는 생선도 고등어 10배 희석한 맛이다(정확히는 말린 방구스, 말려도 겨우 10분의 1).

하지만 적도 인근의 열대 지역 국가들이 다 그렇듯 다른 대다수 요리는 짜든가, 달든가, 짜면서 느끼하든가, 달면서 느끼하든가 넷 중 하나이다. 이는 현지인들의 식사 구성이 많은 밥과 적은 반찬이기 때문인데, 저렴한 레스토랑일수록 반찬에 비해 많은 밥을 내기 위해 더 짜게 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량진 해산물 시장 같은 곳에 현지인과 외국인의 주문 구성을 관찰해보면 외국인 둘이 먹을 해산물 양을 현지인들은 6명 정도가 많은 밥과 함께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고급 레스토랑이나 한식집 같으면 한국인이라고 간 조절을 잘 해주겠지만, 그런 곳에 자주 갈 일이 있을 리가. 아무리 물가가 싸도 '레스토랑은 레스토랑일 뿐'이다. 또한 조미료를 많이 쓴다.[1] 그러므로 조미료는 그냥 본인이 알아서 잘 조절해 주는 것이 좋다. 필리핀에 장기 체류 하면서 가장 건강한(?) 식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그냥 집안 가정부를 통한 음식을 먹는 것이나, 재료를 직접 사와서 요리를 해먹는 수밖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서양의 문화가 고루 섞인 덕택에 떨어지는 인지도에 비해 메뉴도 생각보다 다양하다. 하지만 코코넛 식초와 땅콩 기름으로 대표되는 필리핀 요리는, 동남아에서도 동북부 한구석에 있다 보니 인도의 영향이 적어 향신료 사용량이 모자라 향이 풍부한 타 동남아에 비해 비교적 간소해 보이기도 하다. 그나마 지역별로 본다면 서남부 지역 요리가 이 지역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아랍, 태국의 영향을 짙게 받았기 때문에 향신료를 많이 쓰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