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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선주민족인 켈트계 갈리아족의 음식문화로 시작한다. 갈리아족의 음식문화는 의외로 투박했다. 기본적으로 수렵으로 식생활을 해결하던 그들은 직화구이를 선호했다.[10] 그 다음에 들어온 이주민들도 그대로 갈리아족의 조리법을 따라 갔다. 후에 로마 카이사르에 의해 갈리아 지방이 복속당하고, 로마 군단병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육우의 방목이 이뤄진다. 더불어 로마에 의한 문명화가 진행되어 대규모 농장이 운영되어 점점 식재료가 다채로워지기 시작한다. 주식이 곡물이 된 것도 이 시기. 로마가 멸망한 후 프랑크족이 갈리아 지방을 점령하면서 게르만식 음식 문화가 더해지고, 후추 등 동방의 향신료도 접하게 되어 "향신료 먹으려고 고기 굽는" 중세식 요리의 기본바탕이 완성되었다. 14세기부터 싱크대와 작업대의 구분 및 소스의 사용이 시작되어 연회도 화려해졌지만, 16세기 초반까지는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요리와 큰 차이점이 없었다.

프랑스 요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 이후인데, 1553년에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오를레앙 공작, 즉 후일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고급 식문화를 들여오면서 프랑스 요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전글에서는 당시 이탈리아의 음식문화가 별반 차이 없었다며 폄하했으나, 당시 이탈리아는 무역으로 부를 축적해서 유럽에서 가장 사람꼴 갖추고 살던 곳이었고, 음식문화 또한 활발한 교류로 매우 발달해 있었다. 특히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에서 시집온 만큼 감각이 남달랐다. 이렇게 발달하기 시작한 프랑스 요리가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고 귀족문화가 발달하면서 더더욱 발전하는데, 17세기 중반 이후로는 식도락에 관심이 많아 직접 요리를 만드는 귀족들도 역사에 다수 등장하고, 대귀족의 요리사들은 지금까지 남아 전해 내려오는 요리책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서로 누가 더 호화로운 요리를 만드느냐 하는 허세배틀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식재료를 물로 삶는 요리법이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고 양을 늘리려 드는 저급한 짓거리라며 퇴출된 것도 바로 이 시기. 물론 이때 요리 발달은 근본적으로 상류층 요리에 한했기 때문에 각 지방에서 먹는 요리는 여전히 투박한 면이 많았다.

이후 길드의 해체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왕실 및 귀족들이 죽거나 쫒겨나자 일자리 없는 요리사들이 개인 레스토랑[11]을 개업하여 상류층이 즐기던 요리를 시민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미식문화의 발달에 기여했다. 레스토랑의 개업 자체는 대혁명 이전인 1765년에 최초로 일어난 일이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기존의 주점 등을 밀어내고 요리계의 중심이 된 것은 대혁명이 계기였다. 유명한 요리사들은 신흥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에게 고용되어 요리 문화를 계속해서 발달시켰고, 다수의 요리사들은 직접 레스토랑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고전 요리는 19세기에 앙투안 드 카렘에 의해 극치에 달했다. 또한 외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프랑스 요리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