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는 유달리 눈이 많은 해였다. 그때는 3일이면 함박눈이 도시를 하얗게 덮곤 하였다. 내가 살던 집은 한적한 도시 근교에 있었다. 그래서 눈이 무릎에 쌓이게 올 때면 버스가 끊기는 일이 잦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과외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골목엔 아무도 없고, 그저 내 발소리만 들리었다. 문득 저 앞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는 쪽을 흘긋 쳐다본 나는 까무러쳤다. 담장 아래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아직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몸을 떨고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옷차림이 심상치 않았다. 몸에 맞지 않게 큰 검정외투에 하얀색 원피스가 삐져나와 있었다. 눈이 바스러져 소복이는 소리에, 그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하얗고 순진한 얼굴을 한, 스무살이 채 안돼보이는 앳된 여자였다.   

 

" 아저씨 도와주세요"  

 

여자가 희미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달리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근처엔 큰 병원이 없다. 눈이 깊어 구급차가 오지도 못하였다. 여자는 다리를 다쳐 걸을 수 없었고, 손과 얼굴엔 이미 동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등에 업고 뛰었다. 정신없이 뛰자 곧 집에 도착하였다. 여자의 몸이 차가웠다. 나는 곧장 두꺼운 이불로 여자를 덮고,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다행히 동상은 미미해 보였다. 발목이 부은걸로 보아 접질린 것 같았다. 나는 얼음물을 여자의 발목에 얹어놓고 추위에 언 부분을 따뜻하게 찜질했다. 그렇게 한참을 붙어있었다. 여자는 깊이 잠 든 듯하다. 긴장이 탁 풀렸다.  

 

눈이 떠졌을 땐 이미 점심 때였다. 침대에는 여자가 새근새근 자고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제같은 괴이한 상황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저 여자는 왜 밤중에 쓰러져있던 것이며 다리는 왜 다쳤고 옷차림은 왜 저 모양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혹시라도 무언가 좋지않은 일에 휘말린 건 아닐까. 뭘 믿고 이 여자를 데려온건지, 내가 조금은 무모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여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붓기는 가라앉았고 동상은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다행이었다. 난장판인 집안을 정리하고 죽을 끓였다. 죽을 다 끓이고 보니 어느새 여자가 일어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2장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