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닿지않는 마굿간의 한 귀퉁이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쌓인채 지금막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열달이 넘게 지어미 뱃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녀석은 바닥에 널브러진채 식어가는 김을 피워올리며 연신 바둥거리고 있다.

헌데 다른녀석들이라면 진즉 일어서서 어미젖퉁을 찾을법 하건만 어째 녀석은 통 일어설 생각을 하질 않는다.

어미는 지친몸으로 자식을 연신 핥아대며 주둥이로 일으켜 세워보려 노력하지만 어미마음을 모르는지 꺾일듯이 바들거리다 금새 기운없이 고꾸라진다.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집주인 을씨 뒤에 숨어서 그 커다란 눈동자만 연신 굴리고 있는 딸아이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모르는 눈치다. 


-쯧!


말들을 관리하는 연은 미간은 좁히며 연신 혀를 차댔다.

가장 애착이가던 말의 새끼인지라 그만큼 기대가 컸건만. 결과물은 썩은지푸라기다. 생각할수록 안타까워서 연의 이어진 눈썹들이 연신 꿈틀거린다.

뒤에서 이를 조용히 보고있던 을씨는 가슴께까지 내려온 수염을 쓸어내리며 연에게 나직이 물었다.


-쓸 수 있겠는가?

-맥아리가 없고 눈깔도 멍한것이 이놈은 그른것 같습니다요. 어미는 근방에서 견줄놈이 없건만 자식놈이 이꼴이라니! 도대체 귀신의 농간이 아니고서야...


뱉어내는 연의 말에는 안타까움보단 분노의 감정들이 진하게 섞여있다.


-살려놔봤자 밥만축낼테니 정붙기전에 죽여야겠습니다.


연도 태어난 녀석에게 작게나마 동정심이 일지않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키워놔봐야 쓸모도 없는 주제에 다른놈들보다 곱절은 손이갈 녀석을 돌볼 여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저놈을 매일 보며 속이 곪지않을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바람막이 삼아 도망가는 심정으로 녀석의 죽음을 택한것이다.

그러자 여태까지 을씨뒤에 숨어만있던 딸아이가 급히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안돼요! 그건 너무 불쌍해요!

-작은아가씨!


얼마전까지 애지중지 키우던 아기새가 죽은지 얼마 안되었기에. 그때의 슬픔이 되살아나는것인지 이미 두눈엔 눈물이 그득 맺혀서 흘러넘칠 준비가 끝난 상태다. 누가보아도 연민의 정이 느껴질터.

하지만 연은 이 작은아가씨가 얼마나 꾀를 잘 부리는지 알고있기에 얼핏 애절해 보이는 눈물로 약해질뻔한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작은아가씨 이녀석은 약하게 태어나서 키워놔 봐야 저기 영산이나 개월이 보다 강해지기 힘듭니다요. 이녀석이 차지할 자리를 다음에 태어날 강한녀석에서 양보하는게 당연한 겁니다.


영산과 개월은 을씨 소유의 말들중에 가장 허약한 말들이다. 물론 여기서 아무리 허약하다한들 밖에 내다놓으면 다른가문의 말들보다 딱히 못난점은 없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길...


연은 아차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같으면 아가씨가 최후의 보루로 꺼낼 말을 이번엔 다짜고짜 꺼내버린것이다. 그만큼 둘러말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온다.

이 꾀많은 아가씨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을씨의 눈치를 살짝 본다. 그러자 을씨의 진한 검은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이것은 그 다음 이야기를 해보라는의미. 연과 작은아가씨가 올라탄 저울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 태어난다는것은 뜻이 있음이기에 그 뜻을 가볍게 여기어 생명을 경시해선 아니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저 아이가 약하게 태어난것 또한 죄가될수 없습니다. 그것을 무시해 저 작은 생명을 버린다면 소녀는 스스로의 부끄러움에 하늘볼 낯이 없을것입니다. 


연은 [그럼 아씨가 요전번에 작대기로 호쾌하게 때려잡은 각다귀생명은 말똥같은거유?] 란 말을 목젖으로 겨우겨우 눌러막은채 하나로 이어진 눈썹으로만 항변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 말의 실천이나 의미보다 최종 결정자인 을씨의 마음을 자기쪽으로 움직이는것. 입가의 수염너머로 보이는 팔자주름 만으론 알기힘드나 눈가가 엷게 호선을 그리는것을 보아 금방의 발언이 흡족한게 분명해 보였다.

입에 침과꿀을 잔뜩 발라도 하기힘든 그런말을 술술 뱉어내는 작은아가씨가 얄밉지만서도 언제나 남을위해 저런말을 꺼낸다는것에 화를 낼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번경우엔 눈엣가시같은 망아지새끼 때문이지만.

 


음 나머진 나중에 이어서 쓰겠습니다...ㅌㅌ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