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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어가 아직 해가 다 지지않는 초저녁에도 네온사인이 빛나는 상가구역.

 새롭게 재개발 된 상가구역에서는 유명 옷 브랜드나 음식점, 카페, 대형마트 등의 본래 없었던,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게들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말이 많았던 재개발이었지만 그로부터 약 5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가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것이겠지.

 

 사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도 본래 재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가의 한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한정 단기 알바를 하는 입장이다.

 상가구역의 유명 브랜드의 커피점에는 오늘도 사람이 넘친다.

 그 중에 한명인 여성은 커피 한 잔을 주문한 채, 벌써 3시간이나 전부터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작은 소설책에서 눈을 떼지않고 있다.

 자리가 없어 그냥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분명 알 리가 없지만 묵묵히 책을 읽는 단발머리의 여자.

 내가 이 매장의 주인이었다면 내보냈을지도 모르지만, 일개 알바가 그런거에 상관할 바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같은 알바생 녀석의 말에 의하면 도시에서는 저게 보통이라는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역시 도시 사람은 철면피로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너무 시골 사람이란 것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나간다.

 

 ‘오늘도 꽤나 사람이 많네.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 탓일까’

 

 크리스마스 특별 할인 행사라는 쓸데없는 행사 탓에 사람이 넘치는 카페의 알바생은 기분이 말이 아니다.

 예쁜 여자라도 오면 모를까, 라는 생각을 한 나의 마음속을 신이 들어준 것일까.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베이지색의 코트를 걸친 긴 생머리의 여성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여성이 내 앞에 서서 주문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아, 네!”

 

 멍때리다가 주문을 못 듣는 멍청한 일은 없이 주문을 받고 계산을 마친다.

 자리가 없는데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은걸 보면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걸까.

 설마 남친?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동벨을 가져가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아는 사람을 찾았는지 가게의 안 쪽으로 들어간다.

 그 상대는 3시간 전부터 앉아 소설을 읽던 여자였다.

 둘은 친한 친구였는지, 약 30분간 대화를 나누고 가게를 떠난다.

 그 뒷모습을 보며 다음에 길에서 만나면 꼭 말을 건네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나가던 도중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안녕, 하나. 아직 10분 정도 남았는데 일찍 왔네?"

 

 소설을 읽는 도중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고개를 든다.

 어느샌가 테이블 반대편 의자에 베이지색의 코트를 입은 여성, 아니 남성이 앉아있었다.

 만약 처음 봤다면 알아보지 못 했을지도 모를 미모의 남성.

 어제도 느꼈지만 역시 이건 미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아.

 

 “오늘도 여전히 미소녀인걸"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신한을 바라본다.

 분명 어이가 없어하는 얼굴이다.

 

 “그보다 어제도 말했지만 하나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하나은이었던가?"

 

 "응, 특별히 나은이라고 부르게 해줄게"

 

 하나은.

 원래 이름인 하나에서 은을 붙였을 뿐인 이름.

 외자 이름인 탓에 언제나 성을 붙여서 하나라고 불리는건 그렇게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너가 하나면 동생은 둘인가, 라며 재미있지도 않은 개그를 치는 녀석들에는 치가 떨린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나는 외동딸이다.

 그리나 사실 이름을 바꾸길 결정했던건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4반.

 눈 앞에 있는 신한이라는 남학생, 즉 한이를 처음 알게 된 곳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반인 이유가 이름을 바꾸길 결정한 이유가 된 이유는 이러하다.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어느날, 3학년의 어떤 여선배에게 불려간 학교 뒤에는 여러명의 선배들이 몰려있었다.

 

 “아, 왔다. 왔어”

 

 나의 등장과 함께 우루루 몰려오는 선배들, 그리고 드라마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이지메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한 구도로 나를 둘러싸더니 누군가가 말했다.

 

 -너, 뭔데 우리 한이랑 이름이 비슷해?

 

 그래, 선배들이 한이를 부르던 한아의 한아가 내 이름인 하나랑 발음이 같다는 이유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그 뒤의 야야기는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의 덕분에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걸 눈 앞에 있는 한이가 알 리가 없겠지.

 별로 알 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왜 바지야? 치마 입고 오랬잖아.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가니까”

 

 회상을 끝내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한이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어느새 식은 커피를 홀짝인다.

 

 "가발 쓰고 오기도 싫은데 치마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고는, 울리는 진동벨을 들고 카운터로 향한다.

 그 뒷모습은 누가 봐도 여자다.

 의외로 바지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 한이를 보는 도중, 커피를 내주는 알바생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건 이미 반했는데?”

 

 누가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한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알바생.

 하지만 남자다.

 한이는 남자다.

 중요하니까 두번 생각해보았다.

 어쨌든 돌아온 한이를 맞이한다.

 

 "뒷모습을 보니 바지도 나쁘지 않네, 누가봐도 여잔데?"

 

 내 말에 한이는, 시끄러워, 라고 한마디 던지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는 불편한지 가발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가발은 꼭 써야 되냐? 너네 집에 가서 써도 되잖아. 밖에서 그림을 그릴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안돼. 오히려 치마를 입지 않은 분 만큼 의뢰비에서 깎아도 될 정도 아냐?"

 

 "아니, 의뢰의 내용은 모델이지, 여장 자체가 아니잖아"

 

 흠, 좋은 정론이지만 정론이라고 들어줘야 되는건 아니란다, 한아.

 

 "뭐, 지나간 일은 됐고. 근데 궁금해서 묻는건데 나를 여장시킬게 아니라 그냥 여성 모델을 쓰면 되는거 아니야?"

 

 어제의 일이라도 떠올렸는지 그렇게 말하는 한이.

 새삼스럽게 묻는 한이의 말에 웃을 뻔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한다.

 

 "아니,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싶은게 아니고 너의 여장 모습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 얼굴을 하고 남자로 사는건 전 인류의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아? 라고 덧붙인다.

 실제로 방금 전의 알바생도 그렇고,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남자들 중에 한번도 안 바라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남자는 둘째치고 여자들도 쳐다볼 정도의 미모.

 적어도 10명 중 8명은 쳐다보지 않을까.

 아, 물론 그 중에 한명은 나.

 그런 최상급 미모의 한이와 지난 2년 10개월간의 대화를 나누고 카페를 나온다.

 나오기 전에 한이에게,

 

 “그러고보면 알바생이 너 계속 쳐다보던데, 반한 거 아니야?”

 

 라고 말하자, 그는 잠깐 알바생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지으며 말했다.

 

 “에이, 설마. 바보도 아니고 가까이서 보고도 남자인걸 모르겠냐”

 

 그 말에, 글쎄, 바보는 누구일까, 라고 생각하며 웃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