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머금고 오늘도’는 정류장서 돛대에 불을 붙이자마자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돛대를 버려야 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그림 하나만 가진 채 구상하기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구정물이 담긴 컵과 마실 물이 담긴 컵을 같이 두고, 눈으로 손을 쫓고 있는데도, 마실 물을 찾는 손이 구정물 담긴 컵을 집으려 하는 기이한 상황을 접하고 나자, 이 두 개를 어떻게든 잘 이어 붙이면 뭔가 이야기를 짜맞출 수 있을 거란 (가당치 않은) 생각에 본격적으로 줄거리를 짜기 시작했다.


남주인공의 이야기는 아마 학부 때부터 가져왔던 의문을 그린 거라 생각한다. 학부 때, 한 해에 네다섯 명의 학생들이 연달아 목숨을 끊었는데, 이를 두고 학교 측이나 학생 측에서 전혀 다른 해석 또는 해결책을 내놓으며 싸우는 모습을 보니,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 싶기보다는, 죽고 싶어 죽은 사람을 두고 왜 우리가 싸우는 건지, 왜 남의 죽음에 이렇게 큰 무게를 두려 하는지, 남의 죽음을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에 이용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지, 그런 점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작품 안에서 누군가가 죽는 장면을 넣고는 독자 또는 관객의 눈물을 짜내는 대목을 접하면, (설득력이 충분히 있을 경우)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한 편, 죽음을 이용해서 독자 또는 관객에게 강제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비겁하다 싶어, 울고 난 이후에 기분이 영 찝찝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이니,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죽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보다는,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이전에도 이름이 공교롭게 같은 세 사람이 다 같이 자살하러 가는 이야기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자기 감정에 북받쳐 쏟아내는 넋두리 때문에, 죽은 사람은 하나인데 사후세계에 나타난 사람은 수십 명으로 불어나, 저승사자가 도대체 누구를 데려가야 할 지 아연해 하는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가졌던 의문을 표현해보려 했으나, 작위적인 상황 설정으로 인해 이야기가 이야기답게 풀어지지 않고, 그저 내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에 머물러버리곤 했다.


이 글이 보다 내 의문을 잘 표현했냐 아니냐에 대한 대답은 내가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의문이 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남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치기 어린 반항을 하는 것인지, 그에 대한 대답도 사실 아직 자신 있게 할 수가 없다. 다만, 가족의 죽음조차도 어떤 이에게는 그저 처리해야 할 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작중의 남주인공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을 이용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주인공이 무척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지 아니면 존재하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사람을 죽일지, 그것을 두고 고민했었다. 후자의 그림이 더 좋아서 그대로 진행했는데,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 남자가 겪을 심리 변화에 무관심 보다는 슬픔, 분노, 억울함 쪽으로 훨씬 무게가 치우쳐질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남주인공은 자신에게 닥친 이 장례식이 너무나도 귀찮아서,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의 짜증을 억누르는 사람이었기에, 적어도 나는 지금의 결과에 만족한다.


처음에는 남주인공의 시선에 집중하여 일직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으나, 글을 연재하던 플랫폼이었던 ‘브런치’에서 마침 빨간머리 앤을 모티프로 하는 새로운 글을 공모한다기에, 이야기의 균형감을 갖추는 관점에서도 여주인공의 시선 또는 이야기에도 무게를 실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 중학교 때 나름 빨간머리 앤을 재미있게 읽었던 추억을 보태어, 설 선생의 이야기도 좀 더 자세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에게 셜리라는 성을 붙일 수는 없어서 설 씨를 빌려 왔다.)


여주인공의 모습은 우레탄 방수 처리된 시퍼런 초록빛 옥상 위의 옥탑방에 사는, 붉은 머리를 가진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화가인지, 그림 배우는 사람인지, 아니면 미술 선생님인지 조차도 정하지 않아서, 세 가지 경우를 다 묘사해보고는, 미술 선생님을 내가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정했다. 글 쓰는 것도 어떨 때는 힌트 얼마 없는 스도쿠 푸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경우의 수만큼 다 찍어보고 “답”을 찾을 때도 있다.


화가일 경우 내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 독자가 빠져들 수 있는 디테일을 제공할 수 없었고, 그림 배우는 사람일 경우 등장인물이 평일 대낮에 미술학원 다니는 것을 묘사하자니, 옥탑방서 자취하는 독신 여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생활비는 어떻게 버냐는 의문이 들자, 갑자기 장르가 하루키 식 판타지 소설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다니던 미술학원 선생님이나, 중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총동원해서, 주인공을 미술학원 선생님으로 묘사했다. 나중에 미술을 전공하신 독자 분의 도움으로 좀 더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는 달리 모든 면에서 임기응변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아이들과 잘 지내는 그 모습조차도, 내가 기억하는 친근한 미술 선생님을 묘사하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나온 것이지, 처음부터 ‘여주인공은 아이와 잘 지내는데도 정작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는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 이런 식으로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빚은 사람이 아니다. 앤이 모티프인 만큼 겉모습은 당차고 밝지만, 속 생각 또한 굉장히 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은 있었다. 심지어 흡연 여부조차도, 남주인공의 돛대를 알아보는 장면을 묘사하고 나니, 비흡연자가 그걸 눈치채기에는 문제가 있다 싶어 급하게 만든 설정이었다.


그러다 선천적으로 빨간 머리를 가진 30대 초반의 담배를 피우는 독신 여성은 한국에 살 때 어떤 잔소리를 들으며 살 지에 궁금해졌고, 이에 대해서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기대되는 모습에 벗어날 경우, 유난히 그것에 대해 (어떨 때는 무례할 정도로) 입을 대는 사람을 만나기 쉬운 보수적인 곳이기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여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려고 노력했다. 잔소리가 싫기는 하지만, 잔소리 하는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려 노력하는 쪽으로.


다만, 남자인 내가 여자의 속생각을 면밀히 묘사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껴, 혼자 있는 장면이 많아서 속생각이 서술로 직접 자주 묘사된 남주인공에 비해, 설 선생에 대한 묘사는 주로 옆에 대화할 사람을 두어 대화로 표현하도록 했다. 심지어 속에 든 생각조차도, 그녀로 하여금 자신과 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싶은 남주인공을 옆에 앉게 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려 했다. 그렇게나마 여주인공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려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주인공이 품고 있는 고민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한 것 같아 불만족스럽다. 여자의 몸에 대해 사회가 거는 제한이 왜 생겼고, 그게 왜 아직까지 지속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발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하면서 나 자신도 공부할 기회를 얻어 매우 기뻤다. 처음에는 남자에게만 집중한 이야기라, 여자는 어쩌다 만난 사람 정도의 비중이었다. 어쩌다 만난 인연에 남자가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적어보니, 그야말로 흔해빠진 여성을 구원의 존재로 여기는 여성 우상화 소설이었다. 새롭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읽어서 구역질날 이야기는 쓰질 말아야 했다. 그건 스스로 답보 또는 퇴보했다는 뜻이니까. 빨간머리 앤을 모티프로 삼아 이야기를 수정하여, 내 인식을 좀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개인적으로 기쁘다.


그리고, 담배. 사실 비흡연자로써 담배 태우는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는 데에 부담감을 느꼈었다. 피워본 적도 없는 데다가, 가게에서 사 본 적도 없고, 피우고 싶다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묘사하려니, 자연히 영상매체에서 나오는 흡연 장면들이나,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나오는 사람의 모습, 길가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담배 피우는 사람 앞에 서서 나눴던 대화와 같이 간접적인 자료들에 의존해서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야만 했다. 간접적인 자료이니, 읽는 사람을 흡입할만큼 디테일이 살리지 못할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돛대를 남긴 사람의 심정은, 잘은 모르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마지막 한 숟갈만 남긴 상황과 비슷하겠거니 유추했고, 긴장을 풀려고 신경질적으로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마도 니코틴의 각성효과로 인해서, 긴장이 풀리기는커녕 더 심화될 것이라 상상하며 묘사했다. 담배를 물고 있다가 눈 앞의 상황에 놀라 입을 벌렸다가 꽁초를 떨구고, 그게 아까워서 잠시 눈길을 주는 장면은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 4’에 나온, 겟코 보고 놀란 솔리드 스네이크의 모습에서 빌려왔다.


담배의 이미지가 내가 처음에 의도했던 것보다 작품 전체를 좀 더 진하게 드리우고 있어서, 다 쓰고 나니 좀 놀랐다. 그저, 방금 불 붙인 돛대를 버려야 하는 그 이미지 하나만 들고 시작한 이야기인데, 쓰다 보니 파트 전체에 담배 이야기로 가득했다. 마지막 장면조차 여자가 무엇을 하러 계단을 부리나케 내려갔는지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알아서 상상하라는 식으로 초점을 일부러 담배에 고정시켜버리니, 완전히 담배소설이 되어버렸다. 그 지경이 되니, 결국, 그 때까지 정하지 못했던 소설 제목을 담배 이미지가 담긴 것으로 지어서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인터넷 좋은 세상이라, 검색을 통해 예전부터 가졌던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담배를 사고 나면 왜 사람들이 담뱃갑을 어딘가에 두들기거나, 흔드는지 이유를 몰랐었다. 검색을 좀 하고 나니, 장초가 빽빽이 들어가 있으면 그렇게 충격을 좀 줘야만 한 개비씩 꺼내기가 좋아진다는 설명을 읽었다. 검색을 계속 하니, 담배 맛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배우고. 경험하지 않아도 남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조금 신기했다.


인터넷 이야기를 하니, 배경이 되는 도시, 대구에 대한 사전 조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대구 출신이라 대구에 대한 이미지는 이야기를 통해 많이 쌓은 상태였지만, 마지막으로 대구를 직접 방문한 것이 거진 20년 전이라 최신 정보에는 전혀 밝지 않았다. 대구에 버스정보 안내기기가 설치되었는지, 미술학원 선생님들이 신경 쓸만한 학생 미술대회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황금동의 현재 모습은 어떤지 그 모든 것은 뉴스, 블로그, 그리고 지도 검색을 통해 얻었다. 시간적 배경은 버스 안내기기 오류가 발생한 2016년 봄(5월)으로 설정했다. 오류가 발생한 날이 미술대회 개최일과 앞뒤가 맞지 않지만, 이야기에 큰 영향을 끼칠 요소는 아니라 생각해서, 적당히 무시했다.


등장인물에 말투에 따라 인물의 나이,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처음 묘사했던 남자의 말투는 거의 60대 초반을 맞이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주었는데, 사실 싫지 않았다. 여자는 말투만 봐서는 대충 40대 후반이었고. 다만, 50 또는 60대를 맞이하는 사람은 무엇을 고민하며 살 지에 대해 명확한 이미지를 잡기가 힘들어서, 말투를 젊은 사람같이 살짝 다듬어서 나잇대를 둘이 엇비슷하게 40대 초반, 30대 후반으로 내렸다. 갑자기 만든, 미술학원 원장선생님의 말투는 살짝 방정맞고 오지랍 넓은 면을 잘 표현해, 썩 마음에 들었는데, 내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학부형 모임에 다녀오시고는 전해주신 이야기들을 잘 기워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독선적인 도덕주의에 빠져 폭주기관차처럼 서사를 끌고 가던 예전의 버릇에서 벗어나, 등장인물이 자연히 내는 목소리에 좀 더 집중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확인하여, 쓰고 나서 퍽 기뻤던 소설임과 동시에, 아직도 내가 보다 다양한 사람의 심정 또는 마음을 짚어내는 데에 미숙하여 등장인물을 다채롭게 배치하지 못했다던가, 한 개인의 고민을 보다 세밀히 그리지 못했다는 점 또한 확인하여, 나라는 인간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음을 다시 깨닫는 기회이기도 했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 다음에는 보다 많은 사람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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