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내 문제를 한 가지 꼽자면, 술만 좀 많이 들어갔다 하면 기억이 없어지는 거다.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줄어든 술자리는 강제로 같이 사는 동거인까지 생긴지라 그냥 없어지다시피 했고, 리돌이 기억하는 주사는 아마 집 아래서 기억을 잃었다는 그 한번이었을 거... 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하나 생겨 엄청 늦게 들어갔던 그 때에도 리돌은 안 자고 있었다는 말인가아악.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에 리돌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다만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빨리 말의 방향성을 돌리는 것 뿐.


 “아, 그러니까, 중요한 건! 달나라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사느냐고오오옼!”


 민망함에 내 목소리의 높이는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노래방 전문 용어로 ‘삑사리’가 나 버릴 정도로. 리돌은 그런 나의 3단 고음을 듣고서는, 살풋 미소를 한 번 짓고서는 대답하였다.


 “네, 달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동시에 깨우고, 동시에 자십시오.”


 리돌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치는가 싶더니, 약간 젖은 듯한 눈으로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잠깐의 정적 후,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습니다.”


 “아버님?”


 “네, 아버지.”


  아마 고향에 대한 걸 입 밖으로 내밀었더니, 아버지가 떠오른 모양이다. 하지만 달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밤하늘에 떠 있기는 하겠지만. 

 리돌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살짝 상기된 듯한 표정과 함께.


 “모든 다른 사람들이 일하게 될 동안, 아버지는 집에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님만 다른 일을 했다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모두 같은 일을 하는 동안?”


 리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했듯이, 제 아버지는 과학자입니다. 아버지는 거의 자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을 가져왔을 때, 아버지는 그들을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얘기만 들으면 아버지가 무슨 못된 마녀인줄 알겠다. 미녀와 야수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내가 중력 역 회전기와 재 조립 기계를 만들었다.”


 “그 너가 쓰는 권총같이 생긴 거하고 니 침대 말야? 그걸 아버님이 만드셨다고?”


 리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집에서 나에게 가르쳤습니다.”


 “잠깐, 잠깐.”


 나는 손을 뻗어 잠시 리돌의 말을 끊었다. 간만에 이 녀석이 말을 길게 하고 있는지라,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나부터 정리를 좀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말하는게 잘 이해가 안 되었다는 거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서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왜 거기에서 ‘그래서’ 가 나오는겨? 아버님이 너는 이것만 있으면 평생 놀고 먹어도 되니까, 학교 따윈 갈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셨어?”


 “이런 식으로. 아버지는 당신이 특별했다는 말을 계속했고, 위대한 일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하다는 게 널 말하는거냐, 아니면 아버님을 말하는 거냐?”


 나의 질문에 리돌은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특별하시겠지.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만 봐도 어디 드라마에서 나오는 철없는 부자집 딸내미마냥 행동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그런데 리돌은 갑자기 뜬금 없는 소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뭔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거야?”


 “내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달의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저는 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저 같은 특별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고 저는 거의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뭐, 니가 특별하기야 하지.”


 나는 반쯤은 빈정대는 투로 이야기했고, 리돌은 그걸 또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살짝 미소를 보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이 녀석의 가장 큰 장점은 대단히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대단히. 리돌은 미소를 띄운 얼굴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달에 같은 나이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는 이 벌레들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 물론 자식교육은 부모님이 하시는 거지만 ‘교육’은 전문가의 손에 맡기시는 것이 맞습니다. 보세요, 당신의 따님이 이역만리까지 와서 무슨 말을 하는 지를. 자기가 왕따래잖아요. 뭐, 적절한 교우관계야 나라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요. 같은 나이때 친구들을 벌레라고 만나지 말라니?! 

 생각해 보니까, 이거 지금 리돌이 쓰는 번역기도 그 아저씨가 만든 거 아냐? 아직까지 이 장치의 번역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제조 당사자의 심적 상태가 반영이 된 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이 아저씨 안 되겠네, 이거. 

 잠깐, 지금 보니, 지금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리돌의 아버지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물론 그 양반이 지금 지구상에서는 절대로 이루어 낼 수 없는 엄청난 기술로 딸을 중무장시켰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엄청난 기술들이 모든 면모 하나 하나를 따졌을 때 나를 하나 하나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그렇게 작정하고 만드신 건 아닐 거고, 굳이 책임을 묻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것도 줄줄이비엔나로 맘에 안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쉽게 말해, ‘리돌의 아버님’ 이란 분의 이미지는 수직하강하고 있다. 최소한 내 머릿속에서는 말이지.

 어쨌든 이제야 알겠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소위 말하는 ‘못 배운듯한’ 행동을 계속 하고 다녔는지. 지금까지 만난 사람 1. 그 외에 사람 만난 적 일절 없음. 교육은 특수 영재교육이랍시고 가졍교육만 받음. 그것도 대단히 삐뚤어진. 그리고 그걸 교정할 새도 없이 지구에 떨어져 버린 거다. 그 후, 제 2의 교육담당이 된 건, 노량진 거주중인 성민재씨.

 나는 굉장히 복잡다단한 심경을 담아서 리돌을 쳐다보았다. 연민, 동정, 회한 등등이 비빔밥처럼 섞인 표정으로. 리돌은 그 나의 그 표정을 보더니, 미간을 찌뿌리며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보입니까?”


 “그냥... 널 육하원칙에 따라서 가르칠 생각을 하니까.”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여기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항목은 마지막이다. 왜. 왜. 왜? 도대체 내가 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도 모자라서 대체 왜?!

 예전에도 한 번 작심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곱씹어보니 다시 또 열이 오른다. 급작스러운 감정의 기복에 따라 실시간으로 내 복장이 터져나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돌은 내가 내뱉은 말 하나만 신경을 쓴 모양이다. 독야청청 달나라 아가씨의 얼굴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당신은 저를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니께, 시방 너희 아버님이라는 분 부터가 문제인 거여. 전생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우째 이래 내가 고생을 해야 된디야... 너 우냐?”


 갑자기 뭐야?!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 앞에 있는 커다란 빨간색 두 눈동자 가득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혹시 처음에 사투리로 이야기한 부분에서 욕으로 알아들은 건가? 

 리돌은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고서는 간신히 입을 뗐다. 굉장히 분에 찬 듯한 표정으로.


 “취소하십시오.”


 “응? 뭘?”


 “취소하면 네 아버지가 문제입니다.”


 느닷없는 우리 아버지 거론?! 아, 혹시 방금 리돌네 아버지가 문제라고 한 그 부분에서 울컥한 건가? 시간차도 두지 않고? 효심이 지극한 건 알겠는데, 너무 반응이 즉발적인 거 아냐?!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벙쪄있는 동안, 리돌은 침대에 반쯤 걸쳐진 내 상체를 마구 가격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을 쏟으며, 마치 아버지의 원수를 상대하듯.  

 그런데, 가슴 속 가득차 보이는 울분에 비해서 본인이 가진 능력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주먹이 날아오긴 하는데... 내가 도대체 뭘 맞는지 느낌조차 오지 않는다. 덕분에 무슨 모양새는 침대 위에서 사랑싸움을 하는 것 처럼 되어 버렸다.